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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G20 ‘쥐벽서’ 사건에 대한 탄원서

- tibayo85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소설가 장정일입니다. 저는 ‘G20 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정수, 최** 피고인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이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박정수는 ‘G20 홍보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여, 공공물건 훼손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음을 시인하였습니다. 비록 그는 공공물건을 훼손하는 법률을 저촉했지만, 피고인의 그라피티 작업이 개인적인 심리 배설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헤아려 주십시오.
재판장님이 더 잘 알고 계시듯, 민주주의 사회는 왕정시대와 달리 왕명이나 국명이 전체 시민의 의견을 일거에 소거시킬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온갖 자유로운 의견이 제시될 뿐더러, 그것들이 서로 상충하기까지 하는 시대가 민주주의 사회고,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그런 사회를 바람직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G20’ 행사가 선진조국 창조에 필요불가결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박정수는 언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저와 같은 작가도 아닙니다. 만약 그가 언론인이나 작가였다면, ‘G20’ 직전에 나왔던 허다한 반대론자들의 글이 그랬듯이, 매우 강한 어조로 ‘G20’을 비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언론인도 작가도 아니었기에 글이나 말로 자신의 의사를 밝힐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습니다.
대신 동네 놀이터의 공터를 미술 실험장 삼아 설치 미술을 선보인 바도 있는 박정수 피고인은, 그라피티 작업을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공범으로 고소된 최지영은 함께 공부하는 인문학 연구실의 선배인 박정수로부터 그라피티 작업을 할 것이라는 언질을 들었을 뿐, 실제 작업에는 참여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흔히 낙서라고 불리는 그라피티 작업은 왕왕 개인적인 심리 배설과 동일시됩니다. 하지만 박정수의 그라피티 작업이 명료한 의식의 산물이면서 공공의 목적을 띄고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그 일례로 그는 ‘G20’에 반대하는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그라피티 작업을 ‘G20 홍보물’에 국한했습니다. 관공서나 일반 건물에 무작위로 행하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G20 홍보물’에만 대상을 확정한 것은, 그가 감정적이거나 무정부적인 충동(반사회적)에 휩싸이지 않았던 좋은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피고인이 관공서나 일반 건물에 무작위로 자신들의 분노를 방사했다면, 용서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내용)를 정확한 용기(‘G20 홍보물’)에 최소화했던 이 점에, 피고인 박정수의 양심과 공공성이 있다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박정수 피고인의 죄와 그에게 내려질 법률적 처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당연 피고인의 죄는,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처분됨이 또한 법치주의에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법에 문외한들은, 재판장님이 법률적 처분을 하는 데 있어, 피고인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커다란 자율적인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가 다양한 의견의 사회라는 것은, 국가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지 않고 보장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이상이라고 합니다. 재판장님의 현명하신 판단과 넓은 혜량으로 박정수 피고인과 무리하게 공범으로 기소된 최**을 선처해 주시길, 두 손 모아 빕니다.

  

 
2011. 5. 6.
장 정 일

응답 1개

  1. 최영말하길

    저도 두 손 모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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