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대담> 한국·일본 비정규직 노조의 만남

- 은유

메이데이가 지났다.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곤 했던 노동자들 푸른 함성이 해마다 잦아든다. 일용직, 파견직 등 깃발 없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세태의 반영일 것이다. 아무려나, 바람은 불고 꽃씨는 날린다. 현해탄 건너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 121주년 메이데이를 맞이하여 서부비정규센터의 초청으로 일본 프리터 노조 활동가 와타나베 노부타카(43), 후세 에리코(29) 씨가 한국을 찾았다. 이대, 연대 청소노동자를 만나고 재능노조 장기농성장을 방문하는 등 4일간 일정을 마친 두 사람은 귀국 직전 김영경(31) 청년유니온 위원장과 막바지 데이트를 즐겼다. 위클리 수유너머의 주선으로 성사된 이 날 만남은 5월 2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일본 프리터 노조는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트렌스젠더·외국인·유흥업소여성 등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 계층,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다. 프리터란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성한 용어로 일용직·파견직·무직자 등 비정규직을 뜻한다. 반면, 한국 청년유니온은 실업난에 허덕이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20~30대 청년들로 구성됐다. 기존의 노조처럼 사업장별 투쟁이 아닌 불안정한 노동조건 개선의 사회적 요구와 소통에 나선다는 점에서 프리터노조와 청년유니온의 활동은 유사하다. 조합원도 각각 300여 명 정도.

두 단체의 결정적 차이는 ‘노동’에 대처하는 자세이다. 청년유니온은 ‘일자리를 달라’고 주장하지만 프리터노조는 기업에 고용당해 개성 잃으면서 일하는 ‘소외된 임금노동’에 반대한다. 와타나베 노부타카는 “일하지 않고 살아도 좋다는 기조를 갖고 있는 우리 쪽이 훨씬 불성실한 단체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프리타노조는 정규직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와타나베 도부타카: 어제 비정규직 노조원 회의에서 귀중한 얘기를 들었다. 한국은 비정규직이 정규직 고용이 목표더라. 일본은 비정규직이 정규직노동자를 굳이 목표로 삼지 않는다. 노조방침의 차이가 아니라 한일 시스템의 차이 같다. 우리는 직접 노동을 언급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을 폄하하지 말라. 위협하지 말라’고 말한다.

후세 에리코: 지난 4일간 다니면서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이 있지만 사회적 배경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재능교육 장기농성장 같은 경우 일본에서는 불가능하다. 경찰이 철거했을 것이다. 연세대, 이대, 고대 청소노동자가 서부지부 학교 내에서 공동 투쟁하는 것도 놀랍다. 한국 젊은이들이 노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더라.

김영경: 청년유니온은 작년에 만들었다. 일본 수도권유니온이 롤모델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은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언론이 노조투쟁을 왜곡해서 보도한다.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별도의 노동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강요된 이미지가 있다. 노동조합이 잘 돼 있음에도 청년에게 다가가기 힘들다. 또한 내가 노동자가 되는 것은 낙오자, 패배자가 되는 것이라 여긴다.

와타나베 도부타카: 노조와 노동자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 심어져 있다면 청년 유니온의 이미지 개선 전략은 무엇인가? 노동자 문제 청년들 알기 쉽게 전달하고 이해시킬 전략이 있는가?

김영경: 오랜 시간 걸쳐 형성된 선입견이라서 깨기가 쉽지 않다. 사실 ‘청년노동조합’이 아니라 ‘청년유니온’으로 한 것도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영어를 썼다. (웃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노조를 접할 기회가 없다. 노조가 나의 권익을 어떻게 챙겨주는지를 체험하지 못한다. 기존노조는 무겁다. 우리는 가볍게 움직인다. 먼저 찾아간다. 청년현실에 파고든다. 작년에는 편의점 최저임금 실태조사를 나서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일본은 한국 최저임금의 2-3배가 되더라. 한국 비정규직은 불안정 노동하는 사람들이다. 시급이 높아서 살아갈 수 있으면 정규직 바라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격차가 크다. 그래서 청년들이 전공과 무관하게 공무원에 매달린다. 평생 안정직장을 갈구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목표로 한다.

‘유흥업소여성 업종유니온 결성’ ‘피자 30분 배달제 폐지’ 비결은?

후세 에리코: 일본에서는 ‘청년’은 곧 젊은 남자를 뜻한다. 청년유니온은 어떤가?

김영경 : 우리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3:7 정도다. 남성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래서 우리 내부에서는 ‘공대유니온’이란 별명을 지었다.(웃음)

후세 에리코: 프리터노조는 여성이 많다. 6:4 정도. 비정규직에서 여성이 더 많고 카바쿠라(일본의 유흥업소) 업종 유니온 여성 60명이 포함돼 있어서 그렇다.

김영경: 청년유니온은 프리타노조와 성격이 비슷한 거 같다. 우리도 ‘업종 유니온’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 비정규직에서 사교육 시장, IT서비스, 텔레마케터, 웹디자이너 프리랜서 등 여성의 비율이 높다. 막상 일하는 사람들은 해고 부담 등으로 노조설립을 망설인다. 우리나라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야근수당, 퇴직금 적용을 못 받는다. 부당해고 당해도 속수무책이다. 일본은 업종 유니온이 잘 돼 있고 단 한 명의 노동자를 고용해도 법적으로 보호받는다고 들었다. 그 싸움을 프리타 노조에서 함께 했는지, 어떻게 일궈냈는지 궁금하다.

와타나베 도부타카: 일단 그런 법은 없다.(일동 웃음) 우리는 재밌는 운동,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반노조에서도 노조원끼리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만 프리타 노조는 훨씬 많다. 더 재밌는 방식의 사회참여를 유도한다. 유흥업소 여성 종업원을 위한 노조를 만들 때 신주쿠 번화가에서 주변의 안 좋은 시선을 뚫고 당당하게 집회를 열어 프리터 노조로 조직화 했다. 즐거운 이벤트를 즐긴다.

후세 에리코: 노조활동이라고 해서 비참한 노동자의 환경개선 의미보다는 권력-자본 자체를 위협하는 불온한 존재, 자기 존재를 알리고 사회 안에서 자기 자리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쇼핑, 오락으로 정치적 관심을 못 갖게 하는 자본과 권력의 의도에 놀아나지 않고 자기가 살아갈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와타나베 도부타카: 그렇다. 사회참여 측면에서 우리는 불온한 존재다. 정부와 매스컴에 반항하는 것은 물론이요 우리 안에 불온한 요소, 사회운동권 안의 불온함도 보려한다. 시민단체의 고용-피고용 관계에도 불평등이 있다. MPO(일본NGO)단체의 고용문제나 임금체불을 발견하면 그런 일에도 나선다. MPO와 프리타 노조가 삐걱거렸는데 최근에 화해해서 차도 마시고 한다.

김영경: 즐거움, 반항, 똘끼… 청년유니온 사람들 역시 재미와 즐거움 추구한다. 물론 돈이 없어 이벤트의 질은 떨어지지만(웃음). 얼마 전 메이데이 행사에는 YMCA 노래를 개사해서 댄스공연을 선보였다. 최저임금 관련해서 거리에서 서명 받는 일은 지루하다. 올초에는 피자업계 속도경쟁으로 인해 두 달 사이 2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처음으로 트위터 시위를 벌였다. 수천 명이 참가했다. 피자업체 명동과 대학로 본사에서 스크린 상영하여 ‘30분 배달제’를 20년 만에 폐지했다. 사연은 가슴 아프지만 즐겁게 투쟁했다.

후세 에리코: 꼭 묻고 싶었다. 김영경 위원장은 노조조직 안에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여성이고 젊다는 이유로 불이익 받은 적이 있는가?

김영경: 전혀 없다. 작년 일본에 갔을 때, 여성이 청년유니온 위원장이라는 사실에 놀라더라. 한국에서 리더가 여성일 경우 남성의 억압이 없느냐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국은 대학교 총학생회장도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 청년유니온을 만들 때, 조합원 숫자는 적지만 여성이 위원장을 해야 새로워 보인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위원장은 2년 임기로 총회를 통해 선출한다.

프리타노조, 반전 시위 주도

지난해 3월 출범한 청년유니온은 노조 설립 신고가 지금까지 네 차례 반려됐다. 고용노동부에서는 구직자가 조합원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청년유니온은 54명 노조원이 2명씩 짝지어 27군데 각 지역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는 항의 퍼포먼스를 벌였으나, 각 기관에선 모두 똑같은 답변이 나왔다. 구직자 비율이 절반이 넘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실업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한국 청년의 현실을 담아내기 위해 계속 즐거운 시도를 이어갈 계획이다.

일본 프리타노조는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는 물론 빈곤자, 무직자 등이 조합원에 포함된다. 후세 에리코는 “우리를 소비자와 저임금 노동자로만 바라보는 사회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며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의 외연확장에 기여한 프리타 노조는 활동내용도 기업과의 관계를 넘어선다. 성명서를 내고 시위를 여는 등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한다. 김영경 위원장은 최근 일본 원전사태 관련 프리타노조의 성명서를 봤다며 관심을 나타냈다.

와타나베 도부타카: 원전은 사회적으로 큰 테마다. 우리가 놓고 갈 수 없는 테마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젊은 남성 한 명이 도쿄 전력 앞에서 원전에 반대하며 1인 시위를 벌였고, 우리는 그와 결합해 활동해 나갔다. 일본은 특성상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주일간 트위터를 통해 많은 참가자들이 늘어났고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김영경: 원전 피해 복구에 비정규직 노조원 몰린다고 들었다. 안전대책은 있는지, 일본사회 내에서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와타나베 도부타카: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다는 이유로 현재 일본의 원전 피해 복구 사업에 저임금 노동자들이 몰리고 있지만 이들은 ‘생명위협 등 불상사가 생겨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고 일을 하고 있다. 하루에 2만 엔 정도의 일당을 받는다. 아이를 낳지 않는 고령자가 많고 주로 도쿄전력 하청업체 직원들이다.

김영경: 지금까지 얘기를 들어보니 여러모로 프리타노조는 우리랑 코드가 맞는 노조가 아닐까 싶다. 만나서 좋았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국과 일본 청년이 만나는 기회를 늘려가자.

후세에리코: 우선은 서로 만나서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 SNS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전달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자. 직접 와서 보니까 한국의 노동 상황과 일본의 노동 상황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함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젊은이들은 윗세대처럼 회사와 정부, 국가에 얽매여 그 속에서 모범적으로 살 필요가 없다. 주어진 곳에서 자기 있을 곳을, 자기 손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두 시간에 걸친 대담이 끝났다. 첫 대면의 서먹함이 후끈함을 지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들은 서로 연락하고 지내자며 굳은 악수를 나눴다. 즐겁게 살아갈 권리를 꿈꾸는 청년들. 과연 노동을 원하는 사람과 노동을 거부하는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물어야할 것이다. 노동은 삶의 필연일까, 임노동을 벗어난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서로 경쟁하기 위한 관계가 아닌 존재하기 위한 관계 맺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 통역: 김경원

응답 1개

  1. 이경말하길

    한국과 일본 두 노조의 만남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블로그에도 담아갔어요 ^^) 후세 에리코가 한 말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많네요. 풀타임으로 일할 권리의 확보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분위기인데, 후세 에리코는 그걸 지적하고 있어서 좋았어요~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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