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반도와 열도 사이, ‘깃발 없는 이들’의 인터내셔널을 꿈꾸며

- 들사람

『블랙 라이크 미』라는 책, 혹시들 보셨는지 모르겠다. 한 미국산 백인 소설가 겸 사진작가가 어느날 흑인으로 감쪽 같이 변신한 뒤, 그때껏 아무리 백인이었다 한들 ‘깜둥이’ 취급밖엔 못 받고 마는 일상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내 경우, 미국산 인종주의 문화의 잔혹성을 빼어나게 보여준 책도 책이지만, 여기에 덧붙은 김규항의 추천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본과 대한민국을 넘나들면서 ‘조센진’ 같지도, ‘전라도 사람’ 같지도 않다는 이유로 칭찬받곤 했다는 김씨네 가족사를 통해, 근대자본주의 시민사회에 깃든 각국산 인종주의 문화의 국지적 보편성을 통렬히 짚어줬어서다.

쪽바리 대 조센진, 또는 울트라닛뽄 대 대~한민국. 사실, 그간 반도와 열도를 아우르는 동아시아 일대에서 반복돼온 실속없는 드잡이질의 뿌리는 그 두께로나 너비로나 만만치가 않다. 물론 이 잔인하고도 지루한 인종주의적 반목 혹은 배제의 장막이 웬만큼 걷혔다곤 하나, 마치 같은 태반에서 자란 쌍생아처럼 태극기와 일장기 휘날려가며 벌이는 한-일 합동 드잡이 퍼포먼스 선동은 아직도 곧잘 먹힌다. 게다가 탈냉전/세계화 국면을 맞아 양국산 시민사회에서 ‘국민적 자부심’의 회복·고양을 겨냥해 따로 또 같이 추진돼온 크고 작은 ‘정상국가’화 프로젝트들 덕에, 이같은 선동 기조는 그 실효성과는 일단 별개로 되려 강화될 조짐마저 농후한 형세다(몇 년 전 민주노동당 같은 소위 진보정당 내 민족해방 계열 정파에서는 일본산 지배 블럭의 독도 영유권 주장 움직임에 대한 ‘주권적 대응’ 내지 해법으로 주둔군 배치를 주장했다가, 범좌파 계열 정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근데 이런 선동이 그럭저럭 잘 먹힌 덕에 우리, 불안정노동자들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을까? 글쎄, 지난 세기를 되새김해 보면, 그야말로 죽 좀 쑤었다 한들 결국엔 개 준 꼴이었다고 하기에 충분한 정황만 흐드러지잖나 싶다.

일본 프리타일반노조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서 지난 3월 이후 현재진행형인 ‘후쿠시마 핵 재앙’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정보 피폭”의 덫에 걸리지 말자고 호소한 바 있다. 조국과 ‘민족’의 이름으로 휘날리는 태극기와 일장기 물결에 휩싸인 나머지, 정작 국경을 가로질러 따로 또 같이 싸워야 할 ‘자본주의의 개 혹은 아바타’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눈멀어서야 되겠냐는 취지였다. 실제로, 이번 후쿠시마 원전 파괴 사건을 둘러싼 주류 매체의 정보 교란 움직임은 허둥댄다 싶을 정도로 공공연했다. 일본에선 도쿄전력 측이 실제 상황을 은폐·축소·봉합하기 바쁘고 주요 언론이 이에 사실상 장단을 맞추는 한편으로, 한국 쪽에선 ‘우리 모두가 후쿠시마 핵 재앙의 당사자이자 잠재적 피해자’라는 공통감각이 형성되길 결코 원치 않는 조중동 등 주류 언론기업과 원전옹호 세력을 주축으로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게 의도된 ‘정보 피폭’ 환경이 조성됐다.

이윤 동기가 근대사회의 주 동력원이 된 이래, ‘만들어진 재난’들이 국경을 무시로 가로질러온 지는 이미 오래다. 2008년 이른바 ‘위기’로 사실상 파탄난 금융세계화와 표리관계인 산업 부문의 경영합리화 과정, 예컨대 쌍용자동차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구조조정된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죽음으로 참혹하게 드러났고, 앞서 언급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파괴 사태가 암울하게 보여줬다시피 말이다. 이윤 동기가 좀먹힌다는 이유로 끽해야 좀스러운 ‘비용합리화’ 대상으로 대접받게 된 ‘잉여’, 또는 ‘쓰레기가 된 삶’들의 불합리한 처지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런 재난의 소용돌이에 무시로 휘말리기 십상인 우리, 불안정노동자들은 국경을 무시로 가로지르긴 커녕 (설사 가로지른다 해도) 제도화된 인종주의의 분할선을 따라 쪼개지고 갈라지기 일쑤다. 그렇다 보니, 만들어진 재난들의 본질을 아는 건 둘째 치고, 무엇이 ‘사실’인지부터 파악하느라 애먹는 건 물론 덤으로 엿마저 먹어야 할 정도다. 합리적 대처법 같은 건 애당초 없다는 핵 피폭의 절대적 위험만큼이나 온전한 상황 파악에 치명적인 정보 피폭/교란의 위험에서 늘상 자유롭지가 못한 셈이다. 우린 그럼 어떻게 정보 피폭의 장막을 찢고, 저마다 고르고 자유롭게 누릴 ‘좋은 삶’(들)의 감각에 눈뜰 수 있을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보고자,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준) 주최로 열린 ‘빈털터리 인터내셔널 쪼인트 포럼’에선 일본 프리타일반노조 조합원인 후세 에리코, 와타나베 노부타카 씨와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어렵사리 마련했다. 국제 노동절(메이데이)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30일 오후, 서울 동교동 수유너머N에서였다. 이야기는 크게 2부로 나누어 진행했다. 1부는 후쿠시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불안정노동자들의 처지와는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에 관해, 그리고 2부는 프리타일반노조나 서부비정규노동센터 같은 활동이 지속가능한 투쟁 주체 형성과 사회적 연대의 거점으로서 지닌 잠재력과 난점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1부에선 공론장에서 곧잘 주변화되거나 아예 없는 양 치부되기 일쑤인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듣자는 행사 취지에 걸맞게, 공적 매체에선 접하기 어려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령 원전 붕괴 이후 계획정전을 시행중인 도쿄에선 그에 따른 조업단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입원이 거의 끊겼는데도 도쿄도 당국과 정부가 이를 사실상 묵인·방조하면서, 파괴된 원자로나 방사능 피폭 지역의 수습작업 인력에 대한 잠재 수요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메워야 하는 경제적·심리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가 바로 그랬다. 지진대에 무리하게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등 원전 건설 과정에 이미 내재돼 있던 위험을 무릅썼던 데는 전력회사 측에서 주민 반대가 아예 없거나 막기 수월한 입지를 노려온 탓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본질적 측면이 ‘사후수습’이나 ‘안전관리 강화’에만 초점을 맞춘 언론에게서 외면받는 가운데, 반핵운동가들이 오래 전에 제작해 둔 원전사고 대응 매뉴얼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고도 했다. 이번 후쿠시마 재난으로 많은 이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간 고단한 삶을 살아왔던 많은 이들이 원전반대 집회·시위 참여를 통해 만성적 우울증과 자살 유혹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낼 계기를 맞이하게 됐더라는 얘기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2부는 프리타일반노조와 서부비정규노동센터가 추구하려는 ‘독자적 입지’에 관해 궁금한 점을 서로 묻고 답하는 자리였다. 제각기 추구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덴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이를테면 1) 우리,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을 압박하는 자본의 다채로운 깽판에 맞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 수 있을지’에 관한 지역·생활밀착형 해법/실천을 중시한다든가, 2) 운동의 궁극적 목표를 전통적인 노동자조직에서 주장해왔듯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한정하지 않고 어느 쪽이든 상관 없이 사회의 틀에 갇히지 않고도 스스로 원하는 삶을 웬만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둔다든가, 3) (구체적 방법을 둘러싸고 언쟁이 오가긴 했지만) 지원하고/지원받는 이들 간의 구분이나 위계 없이 조합원이나 회원들이 저마다의 존재감과 활동 역량을 갖고서 굴러가는 조직운용 원리를 지향한다든가, 4) 자기조직의 확장보다는 엇비슷한 취지로 생성·분열된 더 많은 조직들의 확산을 중시한다든가 하는 점에서 그랬다.

물론, 오로지 ‘다르지 않음’만 확인하고서 흐뭇해했을 리는 없겠다. 가령, 구체적인 활동/투쟁 상황에 대한 얘기 듣던 와중에는 한국 쪽과는 달리 일본 쪽 자본가나 치안조직의 지랄도가 무슨 일을 어떤 강도로 벌이든 간에 확실히 낮은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서로 간의 다르지 않음을 ‘하나됨’으로 진전시키지 못하는 다름들은 무엇이며,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이다. 프리타일반노조가 시민사회와 노동시장에서 주변화된 이들과 하나 되기 위한 거점으로 역할하곤 있다지만, 예컨대 같은 이주-불안정 노동자라 하더라도 ‘자이니치’와 자이니치 아닌 이들 간의 긴장이랄까, 은폐된 위계 같은 것들은 어떻게 드러나고 또 해결되고 있는가? 또 동남아지역 이주노동자들과 그보다 오래 전 이주노동자로 일본에서 살아온 자이니치들 간엔 같으면서도 다른 역사적 단층들(내지 변주된 식민주의의 단층들)이 형성돼 있을 텐데, 이걸 ‘노동자는 하나다’란 지향으로만 카바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 텐데, 이에 대해 프리타일반노조는 어떻게 대응해왔고, 대응할 건지.

후세 에리코 씨가 관여하고 있는 캬바쿠라(캬바레와 클럽의 합성어로, 한마디로 유흥서비스업종) 노동자 조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취업비자 받아서 일본의 서비스업 (불안정)노동자로 일하러 가는 분들이 적잖은 걸로 알려져 있는데, 캬바쿠라 노조 조직화하면서 한국산 이주노동자 분들과 마주칠 수 있었는지, 마주쳤다면 어떻게 마주쳤는지. 캬바쿠라 종사자들을 ‘노동자’로 조직화하려는 움직임이, ‘전통적인’ 노동자조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궁금해했다. 캬바쿠라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노동자조합의 결성 과정’으로 본다는 건 기존의 ‘(임)노동자 내지 착취’ 개념을 다시 보고, 재정의해야 할 일종의 실천적 도발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진보에 대한 자긍심’에 크게 기대곤 했던 기존 노동자조직에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가령 집창촌 여성들을 서비스업 노동자로 간주·접근하자는 데 대해선 반발이 컸고, 지금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걔네 따위’가 어떻게 ‘감히’ 노동자냐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듯 프리타일반노조 조합원들과 나눈 대화는, 다르지 않음만큼이나 꼭 짚거나 허물어가야 할 다름 내지 무형의 장벽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정보 피폭이 조장하는 ‘체계화된 상호무지’와 거짓반목의 장막을 우리가 갈갈이 찢고, 저마다 한뜻으로 진정한 사회적 연대와 희망의 숨통을 틔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물론 마냥 쉬운 일은 아니겠다. 국적 또는 국민/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강박적 귀속감이 아무리 상상된 집단기억의 산물이라곤 해도, 그런 기억을 지속시키려는 현실적인 힘/제도들은 자본주의가 지속하려 드는 한, 그리 만만치 않을 테니. 피차 주머니 사정도 녹록치 않거니와 ‘인민의 입’ 없인 소통하기도 어려운 처지라지만, 프리타일반노조 쪽과 이같은 만남을 정례화하는 한편 서로의 목소리를 담아낼 공론장으로서 각자 발행중인 소식지를 적극 활용하기로 한 건 바로 그래서다. 그때가 언제일지 섣불리 예단할 순 없지만, 내친 김에 동아시아 규모의 인터내셔널 포럼이 성사될 때까지 내다보면서 말이다. 오로지 대기업 CEO나 초국적 자본가들만 글로벌이니 글로컬하게 놀란 법은, 당연한 얘기지만 없지 않겠는가.

하여 우리, 불안정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나인 여럿이자 여럿인 하나’로서 또다른 우리가 될 수 있을지 힘닿는 대로 계속 교류·궁리해갈 참이다. 그러다 보면, 예컨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라는 인터내셔널의 슬로건은 지리적 규모와는 별개로, 각자 선 자리에서 이뤄지는 우리의 실천 속에서 이미 생동하는 현실이 돼 있지 않을까? 우리네 삶 곳곳
에서 더는 자본주의적 잉여 따위로 칭찬받길 그치고 이같은 현실을 긍정하고 살찌우는 소중한 잉여들이 메뚜기떼처럼 출몰해, 또다른 우리와 마주칠 수 있기를.

들사람(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준) 회원 겸 운영위원, 출판노동자)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