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14. 산나물이 제철이다.

- 김융희

연천들판에선 물데기 시작에 이어 드디어 모내기로 파란 보루를 깔기가 한창이다. 오월 초까지도 냉기가 가시지 않았던, 예년에 비해 늦게 찾아온 봄에도 바야흐로 본격 농사철이 시작되었다. 논밭에 파종으로 손길 발길이 빨라져야 감당할 수 있는 분주한 일상에 여념이 없다. 특히 시장 상품이 아닌 우리집 먹거리로 기르는 야채 재배는 소량에다 그 종류도 많아 훨씬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얼지만 않을 기온이면 빠를수록 좋은 감자는 진즉 종자를 심었는데 이제 겨우 싹을 트기 시작한다. 모종용으로 뿌린 토종 호박과 오이의 싹은 더디기만 하다. 씨앗을 뿌려야 하는 알타리, 열무, 쑥갓, 상추, 시금치, 아욱, 근대, 치커리들은 진즉 씨를 뿌렸는데도 이제 겨우 싹이 트이고 있다. 요즘 일거리는 주로 종묘상에서 사온 도마도, 오이, 호박, 상추, 양상추, 파, 야콘, 옥수수등 모종을 심고 있으며, 스스로 겨울을 넘기며 자라준 풋추, 갓 취, 참, 머위, 고들빼기, 씀바귀, 달래 질갱이만이 무성히 자라 벌써부터 먹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겨울철 잃었던 입맛을 잘 돋궈준 냉이는 지금 꽃이 만발이며, 민들레도 흰 노랑꽃이 한창이다. 지금은 쑥의 계절이다. 요즘 쑥은 부드럽고 향이 뛰어나며 보관도 용이해서 많이 마련해두면 일 년 내내 좋은 먹거리가 될 수 있는데도 손길이 닿치 않아서 아쉽다. 우리들 먹거리로 오래 전부터 가장 친근하게 가까이 했던 쑥은 맛과 향이 뛰어난 우수 식품이면서도, 왕성한 생명력에 전국의 어디에도 지천으로 널려있어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완두의 자란 싹을 보니 이제 고구마도 심어야겠다.

들깨와 갓은 씨앗을 별도로 준비를 하지 않았다. 작년 수확때 흘린 씨앗이 구실을 해주리라 믿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바리지 않는다. 갓은 벌써 웃자라 잎사귀를 따서 모듬 쌈용으로 잘 먹고 있으며, 들깨는 이제 싹들이 새파라게 자라 오르고 있다. 개구리 야채도 어데선가 솟아날 것인데 아직 때가 이른 모양이다. 이들은 모두가 야성으로 생명력이 강해서 마치 똘것들처럼 해마다 스스로 태어나며 자라줘 참 편하며 맛깔도 일품이여서 고마운 야채들이다.

올해는 새로운 씨앗을 몇 가지 더 구입해서 뿌렸다. 삼겹살과 찰떡 궁합이라는 곰취는 설명서를 보니 발아가 까다로워 실패율이 높다고 쓰여있다. 씨앗값도 비싸서 30여개 들어 있는 씨앗값이 4000원이나 된다. 몇 년전 곰들의 서식처로 잘 알려진 곰배령에 갔더니 곰이 좋와한다는 곰취가 온 산을 뒤덮고 있었는데 그 후에 다시 갔을 때는 그 많던 곰취가 거의 보이질 않았다. 까닭을 물었더니 인간들이 모두 케어 갔다고 했다. 귀한 씨앗에 까다로운 발아로 손쉽게 옮겨심을 욕심에서 생긴 일이었음을 인제야 알만하다.

지난 3월에 봉화의 문수산 등산을 다녀오면서 산채집에 들러 먹었던 점심, 맛깔스러운 야채가 향도 좋고 맛이 독특해 이름을 물었더니 당귀잎이란다. 그 당귀도 씨앗을 구입해서 뿌렸다. 곰취와 달리 농가에서 상용으로 많이 재배를 하고있다니 곰취처럼 그렇게 많이 까다롭지는 않겠지만, 이것도 야생에서 귀화가 오래지 않아 호락치는 않을 듯 싶다. 우선 씨앗을 뿌릴 때 거름기를 하면 안된다는 주의부터가 나를 조마스럽게 한다. 제발 잘 자라주기를 바라면서 그늘 쪽에 정성드려 심고는 검불로 잘 덮어 주었다.

씨앗 선물을 받았다. 시간이 되면 늘상 우리집을 찾아준 동료가 보내준 레드 콜라비이다. 순무와 양배추의 특성을 갖고있는 채소로써 씨앗을 낱낱이 꽂아야 하기에 무척 일거리가 많았다. 종묘상을 들렸다가 늘 맛있게 먹었던 생각이 나서 샀다며 수확이 되면 나눠주라는 당부와 함께 보내왔다. 잘 자라서 수확이 많았으면 좋겠다. 허브 식물로 요리에 다양하게 이용되는 방아나물도 작년에 씨를 받아서 이곳 저곳에 뿌려 두었더니 많은 싹들이 집안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모두 자라면 짙은 향내음이 집안에 온통 진동하리란 생각에 기대가 크다.

지금쯤 온 밭이 고들빼기로 꽉 들이찰 것을 작년 여름 길고 잦은 비로 잡초의 피해가 너무 생생하여 금년에는 차양비닐의 사용이 많아져 드물게 보인 고들빼기 모습이 아쉽다. 지금 가장 힘차고 왕성해 보인 원추리는 며칠전 독성을 무시하고 나물을 급히 들다가 설사복통에 한차례 고생을 겪기도 했다. 이외에도 드릅류로 땅드룹, 나무드룹, 엄나무순을 몇차례 땄다. 같은 드룹류면서도 가죽나무순, 옷나무순은 아직 촉도 보이지 않고 있다. 돈나물도 이곳 저곳에서 파랗게 자라고 있다.

꼼작않고 있어 아직 멀었다 싶었는데, 연거푸 사흘도안 많은 비가 내린 후에는 뒷산에 다래순이 새파랗게 자라고 있다. 오이향이 난데서 오이나물로 불려진 산나물도 한창이다. 산나물이 나면 집에 오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연락을 서둘러야겠다. 이제는 손님맞이로도 바빠지겠다. 나도 산나물과 쑥을 많이 따모아서 년중 찬거리로 비축해야 하는데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으니 이를 어쩔꼬? 해야할 일은 많은데 단손이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자질구레 야채이야기로 이만, 재미도 없는 농사일지를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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