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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의 봄

- 서풍

4월 초중순이면 강가에 연둣빛의 버드나무들이 내성천에 봄이 왔음을 알려줍니다. 은은한 모래강을 따라 버드나무들이 노오란 빛을 담은 연둣빛 꽃을 피울 때면 강을 찾는 고라니, 수달, 백로, 물떼새들의 발자국에서도 봄의 힘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내성천 봄의 절정은 봄의 전령자리를 뭇나무들에게 내어준 왕버들이 기지개를 펼 때야 비로소 펼쳐집니다. 왕버들은 일반 버드나무보다 나무가 큰데 그 당당함으로 4월 하순경부터 강가에 연푸른 물결을 뿜어냅니다. 명창과 고수가 함께이듯 이 무렵 강물 따라 이어진 계곡에는 산벚 나무들이 분홍빛 꽃을 피우는데 진한 연둣빛과 분홍의 물결이 어울려 강물에 어릴 때 비로소 내성천의 봄을 실감합니다

사실 왕버들은 빛깔로만 그 이름값을 하지는 않습니다. 왕버들이 줄지어 강가에 자리잡아 큰 그늘을 만들면 그 그늘 아래로 온갖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몰려들고, 사람들은 농사일을 하다가 그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왕버들의 뿌리가 강가의 흙을 힘껏 잡아쥠으로 강가 농토의 파숫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곳을 찾은 한 생태학자는 아직 내성천에는 왕버들이 다른 강보다 많이 남아있는데 보호수로 지정해야할 나무라고 하면서 강가 휘어진 곳의 왕버들은 조상 때부터 강의 재해를 막기 위해 일부러 심은 나무들이라고 하는군요. 유감스럽게도 왕버들을 베고 돌망태로 제방을 높이 쌓아가면서 지금 내성천에는 왕버들이 많이 사라졌는데 동시에 물고기들의 종류도 단순해지면서 큰 물고기들도 다 사라졌다고 동네 어른들이 아쉬워합니다. 얼마전에는 평은철교 상류 좌안 수몰예정지의 큰 왕버들 20그루가 모두 베어지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밑둥이 대부분 100센티미터 내외의 내성천 전 구간 중 가장 큰 군락이었습니다.

댐이 만들어지면 첫 번째로 수몰되는 금강마을의 봄은 농부의 손 끝에서 시작됩니다. 5월 8일 아침 일찍부터 수박묘를 심는 한 농부는 내성천과 함께 살아왔던 지난 날들을 추억하며 올가을까지만 농사짓고 떠날 생각이라고 합니다. 내년에 농사짓는 것은 보상에 문제가 되는 모양입니다. 이 날 금강마을은 대부분 고추 묘를 심느라 분주하였는데 이즈음부터 아침 5시면 밭으로 가는 고된 농사일이 시작됩니다. 어쨌든 이것이 마지막 농사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오후 1시면 마을회관에 놀러간다는 한 할머니는 조금 이른 시간인데도 회관에 출석하셨습니다.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고 환한 표정으로 말입니다. 아마도 자식들 중 누군가가 손주와 함께 찾아뵈었던 모양입니다. 금강마을은 마을주민의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들이고 이 분들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에 마음아파 합니다. 이 봄이 그 분들께 금강마을에서의 마지막 봄이 되지 않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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