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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칼럼

3.11 이후, 드러나는 우리‘들“’ 차이‘들’

- 신지영

불안은 분노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한 문학 비평가는 이렇게 질문했다. “불안은 어떻게 분노가 되어 갔는가?”1)삶의 한 단면을 파고드는 이 날카로운 질문은, 도쿄에서는 현재형이며, 도호쿠(東北) 지방에서는 두려운 현재형일 것이다. 불안은 분노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절실한 요청이기도 할 것이다. 불안은 분노가 되어야 한다…….

3.11 이전에 정부는 이렇게 말했다. “원자력 발전은 에코이고 자연이고 안전한 미래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당장은 큰 문제가 없다” 천황이 피해지를 찾아 격려하는 모습이 연일 방송된다. 이런 말이나 방송은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봉합하려고 하는 듯이 보인다. 더구나 방사능에 오염되었을지 모르는 불안한 먹거리를 먹지 않는 것이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에 대한 죄이자 건전한 시민의식을 결여한 것인 것처럼 비난하기도 한다. 문제의 원천은 국책의 일환으로 원전을 만든 도쿄전력과 국가의 책임임에도, 도호쿠vs도쿄, 혹은 생산자vs소비자의 문제로 뒤바꾸어 놓고 있다. 이상한 시민의식에 대한 미묘한 강조이다. 반면 15일 발표에 따르면 3호기의 온도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14일에는 원자력 발전소 작업원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처음으로 사망했다. 도쿄의 수돗물이나 후쿠시마에서 꽤 멀리 떨어진 농작물에서도 세슘이 검출되고 있다. 방대한 양의 오염수가 계속 생산되고 있어 연말엔 수십만 톤에 이를 전망이라고 한다. 이처럼 3.11 이후 상황이 지닌 특성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나빠진다는 점에 있다.

꾸준하고 조용한 악화와 애매한 정부의 보도 속에서 막연한 불안과 공포는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가끔 귀찮아서 우산 없이 비를 맞기도 하고, 물이나 채소에 대한 경계심도 다소 느슨해졌다. 그러나 원전 근처의 주민들 뿐 아니라, 임신부, 어린 아이가 있는 부모들, 유치원이나 학교 선생님들은 이 상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매스컴-천황-정부 슬로건을 통해서 눌려져 있는 “불안과 공포”는 “소문과 유언비어”, 각종 집회와 성명서를 통해서 돌출되고 있고 여태껏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주부나 여성의 발언이 늘어나고 있다. 보이지 않게 되어버리는 불안과 공포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날카로운 “감성mentalité”을 대중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은 두려움과 불안이 요청되는 사회다.

‘불안’의 힘, 알고자 하는 힘

“분노”가 아니라 “불안”이 요청되는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아키타현에 사는 작가 스노우치(簾内)는 이렇게 쓰고 있다. “너무나 정보가 부족했다. 혹은 정보 자체가 추상성으로 싸여 있었다. 어쩐지 공연히 분노를 느꼈다. 하루 늦게 미증유의 삼중고 안으로 결정적으로 비집고 들어왔던 원전 사고는 거대한 배신처럼 느껴졌다.2) 이번에 피해를 입은 삼리쿠 (三陸)지역은 역사적으로도 지진과 쓰나미가 많아서, 이에 대처하는 감성과 지혜도 풍성히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러나 3.11은 워낙 큰 쓰나미나 지진이었을 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는 자연과 함께 호흡해온 사람들의 지혜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마을의 감성이 대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부의 뭔가 숨기는 듯한 추상적인 방송이 이어지자, 대중들은 불안해했고, 스스로 알고자 하는 욕망은 급격히 확산되었다. 가장 빨리 움직인 것은 독립 미디어와 인터넷이었다. 이후 <주간 금요일>과 같은 주간지, <현대사상>, <세계>, <임팩션> 등의 잡지들은 원전 반대 특집을 꾸리기 시작했다.

3.11 이전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3.11 이후 두 달 동안 원전 전문가가 다 되었다. 여성지들은 먹거리에 대한 자세한 특집들을 실었다. 사람들은 원 전에 의존하는 에너지양, 방사능 수치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과거의 원전 사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프리타 전반 노조>는 원전 노동자들과 3.11이후 오랜 기간의 휴업과 해고로 고통을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분노의 대상을 명확히 했다. 정부는 3.11을 ”천재(天災)“ 혹은 “상정외의 사태”로 말함으로써 “이 한마디로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합리화 하고 있다”.3) 수많은 지진과 쓰나미, 그때마다 반복되는 국가의 거짓말을 경험한 대중은 인간의 일과 완전히 분리된 “천재”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도쿄에 전력과 노동력과 농작물을 공급해 오던 도호쿠 지방민들은 분노를 느꼈고, 국가를 믿어선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3.11의 원인과 방사능의 위험성을 알게 됨에 따라서, 불안은 점차 분노가 되어 가고 있다. 불안의 힘은 곧 알고자 하는 힘이었고 분노의 촉발제이기도 했다.

새로운 분노- “16세 소녀와 83세 할머니” & “이동하는 드럼서클”

왜 불안한가라는 질문은 누가 무엇에 어떻게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촉발했다. 분노는 일본 전역에서 집회, 연구회, 데모를 확산시키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선언서와 성명서가 줄을 잇는다. 상징적인 출발점은 4월 10일 코엔지의 <가난뱅이들의 반란> 팀이 주도했던 반전데모였다. 1만 5천명이 모였다. 노인, 아이를 비롯해 데모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이 개별참여자들이었다. 일본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5월 3일에는 <프리타 전반 노조>의 주도로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가 열렸다. 데모 전 집회에서는 <원자력 산업과 노동자- ”후쿠시마 50“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히구치 겐지(樋口建二)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해서 강연을 했다. 절전 때문에 넓은 회의실을 빌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빽빽이 모였다. 좁은 회의실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외부에서 영상중계를 들었다. 이후 쏟아지는 비 속에서 프리타, 홈리스, 비정규직 노동자, 원전 노동자들은 거리를 행진했다. 한국 <서부 비정규직 선터>에서 온 이류한승씨는 일본의 원전 노동 상황을 한국에 알리겠다고 선언했다.

두 번째 계기는 5월 7일에 시부야에 있었던 대규모 데모였다. <가난뱅이들의 반란> 팀이 주도가 되어서 연 두 번째 데모였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1만 5천명이 모였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형형색색의 코스프레, 원전 반대 포스터, 플랜카드와 인형, 원전을 본뜬 형상물, 온갖 종류의 악기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어릿광대 분장을 한 사람들이 음식 칼로리를 기재하듯이 방사능량이 기재된 페트병, 방사능이 섞인 공기 등을 들고는 “방사능이 잔뜩!, 안전해요! 한잔 할래요? 당장은 안죽어, 마셔봐요”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무엇보다 가슴을 뜨겁게 달군 것은 거리의 분위기였다. 나는 도쿄 시민들이 데모에 이렇게 우호적이었던 것을 본 적이 없다. 콘서트를 기다리던 사람들도, 음식점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무심히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두들 손을 흔들고 격려해주었다(집회영상http://www.youtube.com/watch?v=1-sk0ZqmnCE) 1만 5천명 배후에는 엄청난 양의 잠재적 참여자가 있을 것이다. 불안은 분노를 촉발했고, 분노는 데모가 되었다.

녹초가 되어 돌아온 내 가방에는 형형색색의 찌라시가 가득 차 있었다. 오키나와 원전 노동자, 피해를 입은 재일 조선인 학교 지원, 오키나와 기지 문제, 에너지의 전환, 어린이들을 지키자는 발언 등 ‘반핵’이라는 하나의 기치 하에 모였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입장의 목소리가 함께 섞여 나오고 있었다. 분노한 대중은 ‘우리’가 되는 동시에 ‘우리들’이 되었다.

5월 7일 시부야 집회에서 큰 박수를 받은 것은 14살인 후지나미 고코로(藤波心)의 <고향>이라는 노래와 83세인 사에토 미치코(斉藤美智子)의 발언이었다. (두가지를 믹스한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j-aicoslfuE&feature=player_embedded) “일본에도 원전이 있어요? 어째서? 당신들 나라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있었잖아요? 당신들은 왜 멈추지 못하는가? 일본인은 대체 무엇인가?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정말이지 저 세상에 가서도 반핵을 외치겠습니다. 저 세상에 가면 유감스럽지만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웃음) 지금, 우리들은 ”반핵“이라고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우리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을 지금이야말로 반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두 여성의 발언을 쉽게 넘겨선 안된다. 분노는 명확한 대상이 있고 사람들을 결집시키며 그 힘은 밖으로 분출한다. 불안은 일상 속에 늘 함께 있지만 대상을 알 수 없으며 내면적이다. 따라서 분노는 전통적인 혁명의 감정이라면 불안은 내밀한 여성적인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두 여성의 발언은 전통적인 정치적 발언과는 다른 불안과 떨림을 갖고 있었다. 생활 그 자체에 기반에 이 떨림과 불안이, 전통적인 정치 운동에서 결여된 부분들을 드러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불안은 새로운 형태의 분노가 되어야 한다.

집회나 데모, 연구회 등에 참여하기 위한 이동들은 도호쿠와 도쿄의 거리감을 줄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5월 15일에는 피해가 극심했던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서 “안녕 원전”, 즉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6hiq5RlylRY) 외부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이와키시의 사람들을 합쳐 대략 500명이 모였다. 나는 이 집회에 참여하진 못했다. 도쿄보다 과격한 분노가 느껴진다. 일코먼즈라는 활동가 블로그에 의하면 집회 후 예정되었던 ‘드럼서클“은 할 수 없었지만 집회 도중에 여러개의 자생적인 드럼 서클이 생겨 소리와 춤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피난소 앞에서도 드럼 서클이 생기자 피난소의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주며 동참했고 이와키 역에서는 고교생과 중학생들의 발언과 드럼서클로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그는 이 모습을 ”이동하는 드럼 서클“이라고 지칭하면서 앞으로 다른 피해지역에도 가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출처: http://illcomm.exblog.jp/13592718/) .

도쿄 전력 앞에서는 매일매일 집회가 있고 주중에는 대학별로 원전에 대한 연구회가 열리며, 주말에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진다. 이러한 분위기가 두달 동안 지속되면서 신문의 논조는 매우 비판적으로 바뀌고 있고 텔레비전도 조금씩 비판적인 발언들을 내보내고 있다. 불안할 줄 아는 우리“들”은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보피폭으로부터 구해내고 있다.

“힘내라 니뽄(がんばろう、日本)” 안에는 과연 누가 있는가?

3.11이 보여준 것은 자연재해는 결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바닷가 근처의 가난한 사람들, 노인, 장애인, 이주 하층 노동자, 도호쿠 지방이 피해를 입었다. 이것은 일본 근현대사의 계급적 민족적 경제적 차별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일본의 미디어이건 일본 이외의 미디어이건 “힘내라 일본(頑張ろう、日本!)”을 반복한다. 이러한 슬로건 속의 “우리”란 대중이 만들어내는 ‘우리들’을 배반한다.

3.11 이후의 상황들은 ‘일본’이라는 주어로 표현될 수 없다. 오히려 ‘일본’이라는 주어에 의해 오랫동안 배제당하면서 침묵해 왔던 존재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러므로 불안도 분노도 데모도 하나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과 분노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이 역설 속에서 나는 이족들의 마을을 생각하고 있다. 해외 언론이 ‘일본’을 주어로 말할 때면 나는 3.11을 겪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 내가 없음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3.11’을 말할 때면 내가 노력해도 알 수 없는 원전 노동자의 위험과 도호쿠 지방민의 분노와 도호쿠 지방 속의 재일조선인과 아이누들과, 또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존재들의 말을 전달할 수 없을까봐 두려워지는 것이다.

“힘내라 니뽄”에 분노하는 원전 노동자․도호쿠지방민․재일조선인, 그리고……

40년간 원전 노동자의 사진을 찍어온 히구치 겐지4)씨는 원전은 파이프 숲과 같아서 사람의 손이 꼭 필요하며, 사고가 빈번하기 때문에 원전 노동자는 피폭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히라이(平井憲夫)씨는 원전에서 일할 때에는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알람 메타를 갖고 들어가는데 그게 울리면 당장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원전 안은 장소나 시기에 따라 방사능의 양이 다르기 때문에 언제 알람이 울릴지를 알 수 없으며, 울리면 끔찍하게 큰 소리가 나기 때문에 공포스럽다고 한다. 히구치씨의 원전 사진에는 숨막힐 듯한 마스크에 우주복을 입고 무수히 많은 파이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원전 노동자의 모습이 있다.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티브이에서 보여주듯이 기술자들이 아니다. 피차별 부락민이나 이주노동자 오키나와인 등 ‘이주/유동 노동자’가 대부분으로 “원전집시”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이들은 하청 개청 재개청 등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원전을 점검해야 하는 기간에 투입된다. 원전에서 일하면 병에 걸려 죽는다는 것은 소문을 통해 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주는 점이나 신분보장 없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운명”5)으로 받아들인다. 원전 노동은 비정규직 노동이 지닌 문제를 극단적인 형태로 반영한다. 최근에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전복구에 투입된 그들이나 자위대, 소방관을 “일본을 지키는 자”로 찬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리타 전반 노조>의 야마구치씨는 최근 “누구도 죽이지 마라”는 의미를 담은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6) 

3.11은 일본 미디어에서 “동일본 지진쓰나미”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렇게 불리는 순간, 이번 피해지역인 ‘도호쿠’ 지방의 역사적인 차별의 문맥이 감추어져 버린다. 도호쿠 지방은 근대 이전부터 “이역(異域)”으로 여겨져 차별과 가난 속에 있었으며, 쓰나미와 지진이 잦아 대규모 봉기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역의 역사는 전후의 일본재건 속에서도 이어졌다. 도호쿠 지방은 도쿄에 전력, 노동자, 농작물을 공급해 왔던 것이다. 도호쿠 지방 사람들은 3.11이란 사태는 도호쿠 지방이 일본의 내부 식민지였음을 증명한 것이었다고 분노한다. 이러한 물결은 구체적인 감각의 차원에서 매우 폭발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용기를 갖고 말하자면 이러한 견해는 원전지역을 돌아다니는 유동 노동자의 존재, 도호쿠 지방의 구식민지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도호쿠 지방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많은 갈등을 감추어 버릴 위험성도 있다. 피해복구가 늦어지면서, 방사능의 피해정도, 원전을 받아들인 지자체와 그 옆 지자체간의 갈등 등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합심하는 것이 가장 필요할 때 분열해 버릴 수밖에 없는 내부 식민지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생각하면 내 글은 너무나 쉽게 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도호쿠 지방을 통해서 발신된 ‘내부 식민지’라는 말이, 원전오염을 둘러싼 새로운 차별의 구조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도쿄”의 중심성을 비판하면서도, “후쿠시마” 혹은 “도호쿠”으로 이번 3.11이 표현되는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후쿠시마’라는 말이 방사능의 대명사가 되거나 ‘도호쿠’가 내부 식민지의 대명사가 되어 가는 경향이 있지만, 후쿠시마 전체 도호쿠 전체라는 것은 없고 그 안에 수많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말들이 그 지역에 겹겹이 차별을 안겨줄까 싶어 걱정스럽다.

또한 도호쿠 지방 안에는 수많은 구 식민지의 흔적이 존재한다. 미야기현에 살던 송신도 위안부 할머니를 비롯하여 그곳에 있던 <도호쿠 조선 초증급학교>가 큰 피해를 입었다. 벽이 무너지고 교실 바닥이 들려 올라가고 방사능 문제도 심각하다. 그럼에도 다른 일본 학교에는 지급된 방사능 측정기가 조선학교에는 지급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금활동 및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1609.html) 도호쿠 지방은 홋카이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아이누들이 많다. 도호쿠 지방에 아이누의 언어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유이다. 이처럼 도호쿠 지방에 대한 도쿄의 경제적 식민지화 이면에는 ‘동아시아 유민들의 역사’가 있다. 도쿄 안에도 수많은 유민들, 외국인들이 존재하며 그들은 도호쿠에서 온 사람들이기도 하고 원전노동에 투입되는 자들이기도 하다. 도쿄, 도호쿠, 일본과 같은 주어를 사용할 때면 이들 이름 없는 기민(棄民), 유민(流民), 피식민자들은 파르르 떨며 저항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호쿠vs도쿄라는 구도가 아니라 3.11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차별을 방지하고 이족들간의 연대를 모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11이후 후쿠시마에서 한국 노동자를 모집한 게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높은 임금, 짧은 노동시간, 한국식 음식 제공이 조건이었다. 한국에서도 90명 가량이 신청했으나 “새로운 징용”이라는 반발에 부딪혀 취소된다. ‘징용’이란 말이 보여주듯이 3.11은 원전 노동자들의 노동자문제 및 이주노동자 문제, 도호쿠지방의 내부식민지 문제 및 유민들의 구식민지 문제 등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노동운동 환경운동 식민지문제 등 이질적인 영역들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에코소피(ecosophy, 가타리, <세가지 생태학>)가 요청되고 있다.

에코소피(ecosophy): 자연의 순환, 인간의 혁명, 코뮨의 생성

도쿄에 이주해 온 아이누들과 모임을 꾸리면서 “도쿄의 아이누”로서 살아갈 것을 선언한 우카지 시즈에(宇梶静江) 씨는 3.11이 직후 “대지여 무거웠는가, 아팠는가”라고 시작하는 시를 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지닌 아이누인은 3.11이 일어나자 인간 뿐 아니라 대지를 걱정한다. 아키타현에 사는 작가 수노우치는 도호쿠 지방에서는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난 직후에 봉기가 일어나는 경우가 잦았다고 말한다. 자연의 생태계가 요동을 치면 이에 호응해 인간생활도 요동을 치면서 혁명을 일으킨다. 아니 인간의 생활이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은 자연 생태계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혁명은 자연을 치료하고 자연재해를 막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천만년에 한번씩 피는 꽃처럼 지구 전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모든 존재가 힘을 낼 수도 있는 것이다. 3.11 이후 기민, 유민, 피식민지인, 그리고 자연은 지구 전체의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고 듣고 두려워하는 감성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또한 ‘일본’이라는 폭력적인 주어 속에 다양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중이다.

원전 노동자, 도호쿠 지방민, 유민과 기민들은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원전의 위험성과 두려움을 어디에 있을지 모를 당신에게 발신하고 있다. “한국의 한 문예비평가”, 아니, 서울의 어느 방에서 글을 쓰던 그녀는, 일본 안의 기민, 유민, 피식민자들이 발신하는 불안과 분노를 서울의 어느 마을에서, “발 밑 저 깊은 곳”으로부터 느꼈던 것이 아닐까?

1) 김미정 <불안은 어떻게 분노가 되어 갔는가 - 김유진 론><<문학동네>> 2011년 여름호, 5월말 발간예정) 이 비평글로부터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안과 분노를 연결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필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 簾内敬司「幸ひ思ひ出立申すべし」『世界―東日本大震災・原発災害 特別編集 生きよう!』2011年5月号, 234頁

3) 山口素明「誰も殺すな」『現代思想―東日本大震災―危機を生きる思想』2011年5月、vol.39‐7、青土社、243頁

4) 樋口健二『フォトドキュメント原発』(オリジン出版センター, 1979)/ 『樋口健二報道写真集成: 日本列島’66‐’05』(こぶし書房, 2005)참조.

5) 와타이 다케하루,「27세 원전 노동자, 운명이라고 생각한다」『시사in』 188호, 2011년 4월 25일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05)

6) 山口素明「誰も殺すな」『現代思想―危機を生きる思想』2011年5月、vol.39‐7、青土社、244~245頁

응답 8개

  1. 말하길

    이렇게 섬세한 컬럼으로 3.11을 만나니 정말 좋네요

    • 낙타말하길

      조금 흥분해서 썼나 싶어 걱정스러웠는데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안’에 대해서는 우카이 선생님이라는 분의 세미나 시간에 바바라는 분의 발표를 들으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각주 깜빡한 대신 여기에 붙여둡니다. ^^

  2. 말하길

    우리 역시 3.11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각성케 하고, ‘일본’의 변화와 분열에 대해 생생한 소식 전해줘서 고마워. 진보신당이 한국 원전 중지를 위한 걷기대회를 하고 있더군. 오늘은 우리 마을에서 반핵 영화제 및 토론회도 하고…참석해야쥐.

    • 낙타말하길

      덤형,

      저야말로 쥐백서 티셔츠랑 트위터랑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어요!
      트위터 방법 배워서 동참해야쥐쥐쥐~ ㅎㅎ

  3. 박영미말하길

    일본 현지에서 이렇게 다양한 저항 행동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블로그에 글 옮겨갈게요 ^^

    • 낙타말하길

      박영미 님,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주 월요일에는 후쿠시마 마을 분들이 도쿄에 와서
      자신들의 뜻을 전달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어요.
      어려운 문제들이 많지만, 일본의 여러 마을들의 움직임을
      계속 관심 갖고 지켜봐 주세요.
      고맙습니다.

  4. 이경말하길

    그저 이렇게 편하게 앉아 읽는다는 것이 꿈같네요..
    덕분에 일본의 현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도쿄에 계신 것 같은데… 건강하시구요!

    • 낙타말하길

      이경님, 오랜만이예요! ^^
      더 열심히 해야하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늘 걱정이예요.
      관심갖고 읽어줘서 고마워요.
      이경님도 건강하시고 좋은 활동 늘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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