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다시, 커피

- 김민수(청년유니온)

글을 끄적이기 전에, 위클리 수유너머 관계자 분들과 애독자(?)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전해드리는 것이 순서일 것 같네요. 지난 2회에 걸쳐 연재가 이루어지지 못한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더 신랄한 모습으로 연재를 이어 가겠습니다 ^^:;

‘귀하는 만 20세가 되지 않았기에 원서 접수 자격이 없습니다.’

구태여 한 번 더 밝히자면, 나의 정체성은 청년유니온 노동상담팀장(이라 쓰고 노예라 읽는다)이다. 노동상담팀과 청년유니온의 역량 강화라는 측면도 있고, 스스로의 생계유지를 위한 보루도 마련할 겸, 나는 지난 수 개월간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였다. 6월에 진행 될 시험에 맞추어 짜증나는 영어 점수도 간신히 받아놓고 막판 스피치를 올리던 찰나, 원서접수 문턱에서 날벼락을 맞았다. 원서접수를 위해 성명과 주민번호를 입력한 순간 위의 안내 메시지가 차분하게 날아왔다. -제기랄. 나이 차별 들먹이며 헌법소원이라도 내야하나. 노무사 시험 치는 데 만 20세를 요구할 줄 누가 알았나. 몇 개월만 일찍 태어날 걸 그랬다.

“혹시, 오전 파트타이머 구하시나요?”

고시공부를 핑계 삼아 안락한 용돈의 품에 안겨있던 시절이 쫑 나버렸다. 날벼락에 따른 정서적 패닉 상태를 냉장고에 박혀 있던 김 빠진 캔맥 하나로 수습하고 곧장 구직을 위한 연락을 넣었다. 강남에 위치한 대형 프렌차이즈 커피숍이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답변이 내려왔고, 곧장 면접을 봤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합격했다. -참으로 다이나믹한 하루였던게지.

이로써, 나의 4번째 커피숍.

#1

강남에 위치해서 그런 지 모르겠지만 이 매장은 조금 유별나다.

“(다짜고짜) 아이스 커피.”
“어이, 이리 와 봐.”
“됐어.”
“이거 좀 치워.”

나랑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몇 번의 면식을 거쳐서 말을 놓기로 한 사이도 아닌데, 나의 정중한(매뉴얼에 충실한) 대접 앞에 말끝마다 반말이다. 나이가 많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유교적 가치의 절대적 왜곡이고, 손님이 왕이니까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야만이다.

자본의 폭력 아래 훼손 된 인간의 가치를 회복 시키는 힘은, 혁명이나 투쟁이 아닌 존중과 배려에서 나올 지도 모른다.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노동자들은 ‘고갱님’이라는 미명이 선사하는 권위와 폭력에 상처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힘 또한 인간에게서 나온다.

“수고하세요.”

빈 잔을 건네주며 들려오는 나직한 존중의 음성. 덕분에 나는 이 짓을 때려치지 않고 커피를 계속 뽑을 힘을 얻는다. 인류를 구원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2

노른자위 땅에 위치한 노른자위 매장이라서 그런가? 내가 일한 그 여느 매장보다도 손님이 많고 쉴틈이 없다. 동시간 대에 6명 씩이나 함께 일 해보기도 처음이지만, 많은 인원이 함께 한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정신이 없다. 피크 타임에 감당 안 되는 주문을 받아내는 것은 그렇다 치고, 조금 한가하다 싶을 때 조차도 넓은 규모의 매장을 청소하고 정리해가며 복무(?)하려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서비스업(매장직)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쉴 틈이 없다’는 말은 ‘내내 서서 일한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사실상 8시간을 근무하는 나는, 8시간 꼬박 서서 일한다. 퇴근 시간에 낑긴 전철에서 부대낀 채 귀가하고 나면 욱신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한다. 몇 년 전 서비스 노동조합에서 대형마트 계산원들을 위해 진행한 의자 캠페인을 커피숍에도 끌고 와야 하는 것인가? -하긴, 의자가 있으면 뭐해. 앉을 시간이 없잖아. 실제로 대형마트에 계산대에 의자가 들어오긴 했지만, 이를 활용하는 계산원을 본 적이 없다.

육체적 노동의 강도가 높고, 통상적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절실한 것은 정확한 휴게시간이다. ‘4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30분, 8시간 근무할 경우 1시간’ 제공할 것을 근로기준법은 ‘어기면 형사처벌’이라는 으름장과 함께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개뿔.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법률에 근거한 정확한 휴게시간은 그림의 떡이다. 1시간을 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잠깐 밥을 먹고 헐레벌떡 내려와 커피를 뽑아야 하는 매니저들을 빤히 지켜보면서, 정당한 휴게시간을 요구할 수 있는 파트타이머(아르바이트)가 있겠는가. 결론부터 내리자면, 휴게시간 배분을 고려하지 않은 빠듯한 고용인원의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충분히 많이 뽑고, 충분히 쉬게 해야 한다. -할 일 참 많네. 요즘 들어서 몸이 부쩍 귀찮고 만사가 피곤하지만, 아무튼 투쟁.

응답 1개

  1. 줄리델피말하길

    민수님 컴백 반가워요. 매주 야생마같은 비타협글을 써주시니 감사했는데 무척 젊으시군요. 하하. 민수님을 통해 고갱님과 업주님들의 만행을 들으면 항상 깜투더놀입니다. “하지만 개뿔, 아무튼 투쟁!”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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