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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건강의 무리로 겪는 질곡.

- 김융희

모처럼 맑은 햇살의 화창한 날씨임에도 자꾸 움추려드는 냉기로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한 주 내내 갖혀 감기에 시달리다가 주일을 맞아 교회를 나선 것입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외출입니다. 염려했던 교회의 실내 냉방은 다행히 가동을 하지 않아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예배를 마췄고, 교우들과 담소를 나누며 즐기려니 마음이 무척 평온해 집니다. 갑작스런 핸드폰 불통으로 어쩔 수 없는 긴요한 약속의 차질이 있어 마음에 걸렸을 뿐, 염려했던 다른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친 다행스러운 귀가길입니다.

전철에서 차안의 갑작스런 냉기에 소름이 솟구칩니다. 주일 한낮의 한가로운 전철에 에어콘이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감기 몸살로 며칠을 으스스 지낸 불안한 몸의 컨디션을, 지금 어렵게 달래면서 조심스러운 거동을 해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귀가길에 이런 복병을 만났습니다. 환풍기 바람에 냉기가 몰려오면 몸에 소름이 돋으며 한속에 금방 진저리가 쳐집니다. 지난 주 내내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오한이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긴장된 마음이 갑자기 불안해집니다. 오늘 서울 한낮 기온이 22도 C라는 아침 예보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체감에도 얼충 그럴 듯 싶습니다. 이렇게 온화한 좋은 날씨에, 한 시간이 넘는 전철에서의 오한과 한속의 고통은 무척 힘겨웠습니다. 동두천에서 전철을 내려 다시 열차를 타고 40여 분을 더 가야합니다. 대기하고 있는 열차를 오르니, 여기에도 역시 에어컨이 가동중이었습니다. 문을 활짝 열어둬선지 전철에서 보다는 좀 나았지만, 안 그런들 어떡합니까. 불실한 건강 탓으로 나만이 겪는 고통이려니 당연히 감수애야 할 나의 몫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제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얼마전 고속버스로 지방을 다녀오면서 겪는 일이 떠오릅니다. 주말에선지 버스에는 거의 빈 자리가 없는 만원이었습니다. 버스가 복잡한 도심을 겨우 벗어나려는데 뒤쪽에서 에어컨을 켜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람한 음성에 돌아봤더니, 건장한 체격에 정장을 갖춘 중년의 신사였습니다. 기사는 곧 에어컨을 켰습니다. 실내는 금방 시원한 냉방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계속 칭얼데는 어린애를 안고 탄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마 갖난애가 앓고 있는지, 잔뜩 긴장한 엄마의 얼굴이 불안해 보입니다. 냉방이 계속되자 안절부절 당황한 모습은 안쓰려워 보였습니다. 갖난애의 치근뎀도 점점 더 심해집니다. 안타까운 마음들이 이심전심 주위에 전해진 듯 싶더니 어느 사려깊은 인자한 아주머니께서 기사께 부탁으로 실내 냉기가 가셔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람한 목소리가 다시 울립니다. 이번에는 불평에 가까운 명령조의 언삽니다. 난처한 기사의 사정 설명이 뒷자석까지 안 들리는지, 노발대발 계속 고성이었습니다. 그 땐 이른 봄철로 그리 더운 날씨도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 무례한 자의 짖거리를 생각하면 분개심이 치밀어 오릅니다. 그 때의 경험을 새삼 떠올리기도 싫습니다.

나의 차제의 하고 싶다는 말이 이같은 고속버스에서 있었던 경우나, 나의 처지처럼 특별한 사정을 들고자함은 아님니다. 언제나 수시로 겪는 현대인들의 전전후 감각과 대처에 대한 의식의 문제입니다. 전천후가 더위도 추위도 아닌 기분좋은 상온의 바람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좀 성급한 표현으로 나는 여름엔 추위에 힘겹고, 겨울엔 더워 죽겠습니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이런 문제로 차를 타기가 겁이 날 때도 있습니다. 엔진이나 기계의 발열로 좌석이 바로 기계 곁에 있는 기사로써는 온도가 승객들의 체감 온도와 다르리란 생각을 해보면서, 기온 몇 도를 넘었을 때 에어컨 가동을 할 수있는 온도지정제를 정해야지 않을까싶은 생각도 했었습니다. 고속버스에서의 경우처럼 항상 기센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는 횡포를 막을 수 있는 길도 그것이라야 조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에너지의 절약의 필요성을 포함해, 그동안의 경험과 보아온 내력을 보면서 그 필요성의 더욱 절실함을 느낍니다. 환경 파괴, 에너지의 고갈, 지구의 온난화 등의 거창한 표어보다는, 사소하지만, 고열에 치근데는 갖난 아기를 보면서, 안절부절 당황해하는 엄마의 애절함을 위해서라면, 건강한 어른의 껴입은 정장 단추를 풀고, 조인 넥타이를 풀면서, 남을 배려하는 소박한 인간미는 당연지사일진데도, 사람의 세상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오월의 중순인 요즘이 나에겐, 여왕의 계절이라는 꽃 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날씨가 아니었습니다. 며칠을 강풍이 몰아치면서 천둥과 더불어 궂은 비가 계속 내리는, 몹시 짖궂은 날씨였습니다. 지난 주는 내내 무척 잔인한 한 주였습니다. 날씨 탓인지, 그동안 비교적 잘 지켜졌던 특히 감기를 피해 잘 감당해온 나의 건강에 탈이 생겼습니다. 날씨와 나의 건강과 바쁜 일상이 함께 뒤범벅이 되어 생긴 영육이 함께 고통을 겪어야하는 힘든 주일이었습니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는 파종의 시기에는, 비록 험상궂은 날씨임에도 햇빛이 가려지고 비가 내려주는 날씨는, 수고를 한결 덜어주는 고마운 혜택이 되기도 합니다. 옮겨 심는 모종의 생존과 씨앗의 발아를 도와주기 때문이지요. 비록 작은 면적이지만, 단 손에 맨 손으로 수 십여종의 파종을 시기에 맞춰 감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더욱 나처럼 서툰 농사꾼이 일상 매달리지도 않는 채, 수시로 외출하면서 어슬렁거리는 농삿일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산적된 감당할 일에 마음은 잔뜩 급한데 비가 내리는 동안 어떻게든 빨리 치뤄야기에, 몸에 이상을 잊은 채, 우중의 장포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저녁엔 건강이 악화되는 일이 몇 차례반복되면서 종내에는 감당하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한 연후에서야 무모한 짖이였다며 후회하면서도 또 다시 저지르는 나의 천생 우둔함은 전에도 종종 없는 짖은 아니었지만, 이번은 더욱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입니다. 결국 지난 주는 만필 원고도 못 보냈습니다. 교회를 다녀오면서 당한 냉방의 피해로 저녁부터 다음 날까지 죽도록 앓았습니다. 지금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만필을 계속 두 번씩이나 뻬먹을 수만은 없어서, 지금의 사정을 겨우 알림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알맹이도 없이 신실치 못한 잡설에 많은 이해의 혜람을 바람니다.

응답 2개

  1. 강물처럼말하길

    주책인지, 망령인지… 엄살이지요. 벌써 거뜬해서 활동하는데
    봄이 아닌 벌써 여름 날씨라 숨 막히오.
    오래만에 여기서 보게되니 엄살도 부려볼만 하구려. 바다님 고마워요.

  2. bada말하길

    선배님 오랫만입니다. 감기는 좀 나아지셨는지요.
    쾌차하시어 남은 봄, 초록의 여유를 느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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