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파티하쥐~

- 박정수(수유너머R)

쥐 그래피티 사건이 8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제가 한 일에 비해 너무나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격동의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피티 행위 자체보다 너무 정치적으로 인플레이션 된 건 아닐까, 거품에 취해 ‘오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1심 선고 후 항소 여부를 두고 고심했습니다. 이쯤에서 거품을 빼고 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제 이 사건은 ‘나’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이고 좋든 싫든 나는 그 타자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두세번씩 충돌했습니다.

사유의 밀실에 갇히지 않기 위해 쥐 포스터를 들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노들공장에서 제작한 현수막 포스터를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김여진씨와 함께 광화문광장에서, 재능노조 농성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던 영플라자 앞에서, G20국회의장회의 만찬장인 신라호텔에서, 청와대 앞에서, 인천공항에서, 주한미군이 버린 유독물질로 괴물이 출현했던 한강에서, 미대사관 앞에서, 반값등록금을 촉구하다 연행된 대학생들을 지지하는 동아면세점 앞 촛불집회에서, 그리고 어제 다시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법으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며 그 한계선 너머를 사유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처음엔 경찰이 오면 움찍했는데 차음 무덤덤해져서 이젠 경찰의 윽박에 콧방귀도 안 뀝니다. 어차피 1인 시위는 법적으로 허용된 것이니까요. 그러면서, 법의 힘은 허용된 영역 안에 존재하는 것들에게서 불온성을 제거하는 데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MBC 다큐팀의 카메라와 몇 대의 언론사 카메라를 끼고 있었지만 차츰 혼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인증샷을 찍어 줄 사람이 없어 지나가는 시민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청와대 앞에선 정보과 형사에게 카메라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어제는 카메라가 고장 나서 인증샷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광장에서 홀로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 고독 속에서 점점 항소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쥐 그래피티 사건의 파장을 키우거나 연장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막의 끝까지 가 보기 위해서. 2심, 3심 때는 지금처럼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할 겁니다. 어쩌면 ‘아직도 쥐그림 얘기냐’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게 때문에 법과의 싸움을 끝까지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루신이 말한, 절망과 적막함 속에서 길을 만드는 전사의 고독을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받아들이지 않고 가로막힌 건 아무리 단단해도 머리로 부딪는 ‘곤조’를 부려보고 싶어졌습니다. 결국 검찰이 먼저 항소함으로써 고민은 해소되어 버렸지만, 고독한 전사에 대한 꿈은 남아 있습니다.

1인 시위와 법정싸움과는 별도로 쥐 그래피티 프로젝트를 ‘파티’ 형식으로 갈무리 하려 합니다. 명목상으로는 쥐그림 사건 소송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주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파티’입니다. 그동안 함께 한 동료들과 ‘잘 싸워왔다’는 자축의 파티이자, 지지해준 분들께 감사하다는 감사의 파티이며, 우리가 무슨 짓을 했고 그래피티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수다 떠는 토크 쇼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인디밴드들을 불러 신나게 놀 겁니다. 그리고 ‘청사초롱의 꿈’으로 유명해진 공판검사가 주인공이고 제가 조연으로 출연하는 ‘쥐와 벌’ 연극을 상연합니다. 또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쥐 그래피티를 직접 해 보는 시간도 있습니다. 쥐그림 포스터의 예술성을 인정하여 소장하고 싶다고 하신 분들은 꼭 오셔서 직접 그래피티한 포스터를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사진작가 홍진훤씨의 포복절도할 ‘G20 풍자 사진전’도 있습니다. 안 보시면 후회할 기막힌 사진 구경하러 오세요. 공공미술의 선배이며 쥐 그래피티에 깊은 애정을 가져주신 ‘호흡’님의 작품전시 및 판매도 합니다. 도와준다는 마음보다 함께 즐긴다는 마음으로 오시면 좋겠습니다. 법 바깥에서 우리가 얼마나 재미나게 사는지 보여줍시다.

매이엄마와 함께 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약간 왜곡된 기사가 있습니다. “샤워기 틀고 울었다”는 대목인데요, 진실은 그게 아닙니다. 한참 검찰조사를 받을 때였습니다. 아침에 혼자 연구실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몸에 쌓인 피로나 울분이 어떤 강렬한 삶에 자극받아 터져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거였습니다. 이번 호 동시대반시대의 ‘전선인터뷰-노문희 홍대청소노동자’를 읽으면서도 거의 그럴 뻔했습니다. 뭔지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세월의 서글픔과 적막함, 노동의 고됨과 투쟁의 환희가 뒤섞여 울려 퍼지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부분에서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http://www.youtube.com/watch?v=CFWbZg14rKw)’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힘들 때는 저 창밖을 보면서 마음이 평화를 얻어요. 가을에 한 잎 두 잎 나뭇잎 떨어지는 거 보면서 나무랑 대화해요.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잖아요. 한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봐라, 나도 부모형제 다 떠나보내고 이 자리에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거 같고. 단풍이 다 떨어졌다가도 봄이 되면 새순이 나고 잎이 무성해지잖아요. 그런 게 위로를 줘요.

응답 3개

  1. 호두엄마말하길

    매이데이에 전태일평전보고 우셨다는 내용이 기억나네요..

    트윗에 한 소아심리정신과 의사분께서 매이데이 팬이었는데 연재가 종료되어 아쉽다는 글을보고 방문하게 되었었거든요.

    매이아빠.엄마 모두 응원합니다.

  2. 어깨꿈말하길

    절망과 적막함 속에 길을 만드는 전사의 고독감…
    매이 아빠님… ㅎㅎ
    공감합니다.
    그냥 가는 것이지요 ㅎㅎ 하고싶은 만큼
    투쟁하는 거지요 ..

  3. 이하림말하길

    마음속 깊이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매이아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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