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여강만필

반액의 의미

- 김융희

상품판매 광고를 보면서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일로 나는 자주 고개를 갸웃거리곤 한다. 특히 백화점과 같은 대형 판매장에서 수시로 실시하고 있는 할인 판매나 특가 판매 광고를 보면서는 더욱 그렇다. 장사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행위가 본업인데, 아무리 행사라지만 판매값이 짐작도 잘 안되는 파격에 몹시 혼란스럽다. 때로는 정가의 7-80%의 할인 판매를 한다는 버젓한 대형 광고를 보면 당혹스럽기까지 한다. 그럼 원가에 7-80%의 마진이 정가였다는 말인가? 장사는 원가에 주면 공짜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특별 행사이기로 원가도 훨씬 못 미친 값에 광고비까지 들여가면서 이런 할인 행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잘 믿기지를 않아 혼란스럽고 궁금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겠다고 한다. 아니 내리게 하겠다고 했다. 등록금을 받는 주무처인 대학측의 말이 아니라, 집권 여당의 실력자께서의 말씀이었다. 대학의 등록금이 비싸다는 불평은 진즉부터 들어왔다. 학기가 바뀌어 등록금 징수 시기가 되면 정례 행사처럼 대학 주변에 일부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가 치뤄짐도 보아왔다. 나는 대학 등록금이 싼지 비싼지를 전혀 모른다. 다만 최고의 지성사회인 대학에서 시장 상인들처럼 마구잡이로 수업료를 받겠나 싶은 생각을 했고, 더구나 너무 많아 넘친다는 대학들이 근거없이 등록금을 받아 챙기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으며, 그 생각은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돈내고 배운 학생들이야 돈을 적게 내고 싶겠지만, 비싼 등록금이 불만이면 학교를 그만 두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라는 생가도 들었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낮추라는 목소리가 크면 솔직히 학생들의 태도에 못 마땅하기도 했다. 대학은 장학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는 교육기관이다. 등록금이 비싸다며 불평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공짜 공부를 하라고 충고를 해주고도 싶었다.

그런데 전혀 아닌 다른 사정이었다, 그동안 대학이 너무 지나친 등록금을 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불평이며 그토록 과격한 꼬락서니였던 것을 나는 이제야 짐작이 된다. 그러면 그렇지,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대집권당의 실세라지만 어떻게 반값 등록금의 시행을 실시케 하겠다고 큰 소리로 거침없이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집권 실세가 하지 못할 일은 없다. 우리 학생들이 그렇게 무례하거나 분별력이 없을 리도 없다. 여권의 실세 발언으로 반값 아파트를 짖겠다며 수선을 피웠던 그때에도, 대단한 관심과 이목을 끌었던 기억이 새롭다. 엄청난 분양 경쟁을 거쳐 당첨만 되면 많은 이권을 챙긴 아파트를 그들은 반값에 지어서 팔게 했던 것이다. 이번 등록금도 같은 발상에서 나온 것 같다. 잘은 모르겠으나, 반값 아파트의 시행이 좋은 결실은커녕, 오히려 여러 잡음만을 남긴 채, 이후 흐지부지 되었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 대학 등록금도 요절을 내겠구나 싶다. 그러나 나는 관심도 흥미도 없는 일이다. 다만 최고 교육기관의 매우 중요한 등록금이 마치 수익을 일삼는 시장 상품의 정가처럼 취급당하는 꼴을 보면서 당혹감에 기가 찰 뿐이다. 비싼 등록금에 문제가 있고 조금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집권의 실세답게 합당한 방법을 찾아 주선하거나 권고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무소불위의 위치에 있는 집권 실세라지만, 안 그래도 젊은 학생들에게 민감하게 작용하는 등록금을 미리 엄포부터 터트리면서 반값이란 비상식적 표현을 써야 하는 것일까?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고 하지만,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서 내 심사는 매우 곤혹스럽다. 세상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심산하다. 이성이 뭐고, 인격이 뭐며, 말의 품위가 뭤이고, 체면이나 품위는 있는 것인가…

며칠 전, 전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곱게 늙으신 칠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할머니께서 고향에 다녀오신 이야기로 오순도순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박사 학위로 대학 교수가 되었다는 집안의 젊은 조카 이야기였다. 고향 집을 다녀가면서 쌀과 채소를 챙기는 것을 보면서 살림이 아직 넉넉지 못한 것 같아 어쩐지 짢하더라는 집안의 할머니다운 말씀이었다. 그런데 전혀 생면부지의 옆 좌석 중년 신사께서 갑자기 두 할머니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발에 밟힌 것이 박사요, 장사꾼 보다 못한 것이 요즘 박사들이라면서, 듣기가 거북스러운 박사 폄하의 일방적 발언을 계속 했다. 민망스런 말투로 논리도 근거도 없는 마구잡이 말이었다. 보자하니 고졸도 못한 건달 같은데 박사와 무슨 악연이 있기에 저리 험담이람, 안 듣고 안 봤서야 할 민망했던 경험이 다시 떠오른다.

가끔 인사를 나누다보면 대학 교수 명함을 받게 된다. 미리 듣기로는 전혀 아니요, 하는 일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데도 새로운 명함을 받았던 경험도 있다. 알고보니 어린이들 음악 학원을 경영하면서, 벤쳐기업을 하면서, 일터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대학의 초대를 받아 강단에서 경험담을 들려준 경험을 갖고 교수 또는 겸임교수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자기 하는 일이 돋보여 후배들에게 좋은 경험 사례를 전할 수 있는 일은 진정 자랑스러운 일이요 명예라 믿는다. 또 더러의 경우엔 변변치 못한 열등감의 작용하려니 생각되어 이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본업에 긍지를 갖고 자기를 내세워야 할 일이다. 그것이 본인에게도 떳떳한 일이요 자랑이 될 것이다.

매사 이런 사소한 일들이 보면 결국엔 반드시 역작용이 따른다. 앞서 전철에서의 교수 비하 발언도 이런 부작용이 아니었을까 싶고, 교수가 본업이 아닌 사람이 교수 명함을 사용하면서 따르는 오해의 기인일 수 있다. 안 그래도 반지성 시대의 현실을 고려할 때 반값 등록금이란 말이 지체 높은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반지성적 사고에 기인함은 아닐까 싶다. 내가 굳이 이런 일들을 거론함의 까닭이다. 그런데도 쓰다보니 걱정이다. 전혀 아닌 문외한이 한참을 지난 일을 이러쿵 저러쿵 뜬금없이 나서게 되는 온당치 못한 나의 짓에 당혹한다.

요즘 세상 꼴들이 너무 한심스러워 도저히 그냥 배길 수가 없다. 그래서 신문도 끊은지 벌써 수 년이요, 사방이 산으로 둘려 하늘만이 열린 문명을 피해 두뫼에 초부로 지낸지도 오래다. 그런데도 세사에 미련은 있어 티비는 유선방송에 의탁해 KBS 1TV만 보는 조건으로 월정료금의 반값에 중요 뉴스를 듣고 있다. 그래선지 시사성에는 예민치 못하다. 요즘은 부산 무슨은행의 문제가 대단한 것 같은데, 대학의 행정을 반값으로 후려친 반지성적 의식사회의 문제가 나를 떠나주지를 않는다.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를 전혀 모르면서도, 언젠가 들었던 반값 등록금 화제가 떠올라서 길거리의 돌의 심정으로 떠오른데로 두서없는 생각을 적어본 것이다.

댓글 남기기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