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무한독전

<선과 모터싸이클 관리술>, 새로운 생활 감각을 터득하는 여정

- 이상미

아침 출근길. 뚫어져라 쳐다보던 스마트폰을 끄고 고개를 들어볼라 치면, 지하철 속 사람들의 표정이 압권이다. 흡사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들의 표정 같다. 월요일 아침이면 그 일그러짐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는데(친구들끼리는 “표정이 썩는다”는 극단적인 말까지 하지만서도;;), 이럴 때는 마치 전철 자체가 커다란 동물 우리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생활의 반복. 집 또는 회사, 아니면 가끔 영화관을 드나드는 좁은 생활 반경. 화내기에도 울기에도 애매한 생활이 무표정하게 반복된다. 나는 이 생활 감각을 어떻게 바꿔야 할 지 알지 못한다.

일상을 새롭게 감각하게 하는 여행

얼마 전 읽은 책 <선과 모터싸이클 관리술>에는 일상을 벗어나 모터싸이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피어시그는 우울증 치료 과정에서 과거 자신의 기억을 거의 상실한 채 ‘정상인’이 되는데, 이후 아들인 크리스와 모터싸이클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 도중 그들은 남들이 자주 다니는 도로가 아닌 조그마한 샛길을 이용해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는 여행 속에서 자연을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바라본다. 또한 수많은 자연을 바라볼 때마다, 기억의 파편으로만 갖고 있던 과거 자신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재구성해나간다. “수만 가지의 살아 있는 생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끊이지 않고 온화하게 그들 특유의 삶의 소리를 만들어내며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수동적인 관찰자의 생활을 벗어난다는 것

“모터싸이클을 타고 휴가를 가다 보면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물들을 바라볼 수 있다. 차를 타고 가면 항상 어딘가에 갇혀 있는 꼴이 되며, 이에 익숙해지다 보면 차창을 통해서 보는 모든 사물이 그저 텔레비전의 화면을 통해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일종의 수동적인 관찰자가 되어, 모든 것이 화면 단위로 지루하게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 뿐이다.”
<선과 모터싸이클 관리술 p.25>

일상 생활 속에서의 감각은 대부분 사각 틀 안에 갇힌 현실 감각이다. TV 안에서, 창 밖에서, 스마트폰 안에서. 우리 삶의 대부분은 프레임 안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삶과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를 프레임을 통해 습득하고 경험한다. 하지만 피어시그는 모터싸이클 여행을 통해 그 화면의 틀이 깨지면서 모든 사물과 완벽하게 접촉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프레임 너머의 사물을 직접 손으로 맞대보고, 콘크리트 바닥은 실제로 발을 디딜 수 있는 사물이 된다. 모든 사물이 의식과 격리되지 않는 상태. 피어시그에게 있어 모터싸이클 여행은 수동적인 관찰자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벗어나게 해준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도록 길들여져 있다

그러한 길을 따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총채적인 삶의 속도라든가 인간성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어디로 떠날 일도 없고, 예의를 차리느라 부산을 떨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현재 여기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이 깨닫고 있는 전부다. 이런 깨달음을 거의 잊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바로 오래 전에 도시로 떠난 사람들과 길을 잃고 방황하는 그들의 자녀들이다.

<선과 모터싸이클 관리술 p.27>

여행 속에서 저자는 왜 자기 자신이(혹은 우리가) 왜 이런 일상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는지를 묻는다. 이는 우리의 삶이 소소한 즐거움을 지켜보면서도, 미쳐 이것을 깨닫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피어시그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도시에서 살던 생활 방식 때문에 삶의 작은 즐거움을 “깨닫지 못하도록” 길들여졌다. 우리에게는 이 익숙한 방식을 깨는 생활 감각이 필요하다. 피어시그가 말하는 여행 속 생활 방식은 관념적인 방식이 아닌, 매우 실용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기술, 나침반을 이용하는 법 등 여행 속에서 생활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술들이 언급된다. 신기한 점은, 정신의 여유를 찾는 듯한 피어시그가 이런 식의 기술 운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기술을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그것을 진실로 즐길 줄 아는 자세, 그 자세 속에서 자신을 고양시키는 정신의 실체를 발견한다.

모터싸이클 관리술이 지니는 의미

친구인 서덜랜드 부부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모터싸이클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모터싸이클을 두고 피어시그와 서덜랜드 부분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피어시그는 모터싸이클에 대해 공부하면서 혼자 힘으로 자유롭게 기계를 고치는 반면, 서덜랜드 부부는 모터싸이클 관리에 대한 일체의 기술 부분은 외부에게 맡겨버린다. 부부에게 모터싸이클 수리란,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기계문명 그 자체다. 문명을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는데, 모터싸이클을 통해 그 문명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모습. 때문에 서덜랜드 부부는 굳이 힘들여 모터싸이클을 고치려 하지도, 자신의 집에 있는 고장 난 수도꼭지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어시그의 입장에서 볼 때, 서덜랜드 부부처럼 기술적인 측면을 애써 외면하는 건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익숙해지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기술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나누는 그 이분법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파이드로스가 한국에서 보았던 성벽은..아름다웠지만, 이는 노련한 지적 기획 때문도 아니었고, 작업에 대한 과학적 관리 때문도..아니었다. 그것이 아름다웠던 것은 그 성벽을 쌓는 일을 하던 사람들이 대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독특한 방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초월의 상태에서 그 일을 제대로 하도록 자신을 유도하던 방식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과 모터싸이클 관리술. P.506>

피어시그는 과거의 자신을 파이드로스라 지칭하는데, 그가 여행을 하는 발단을 만들어주었던 것이 바로 한국에서의 여행 경험이었다. 그는 성벽을 통해 기술과 정신의 조화로운 일면을 보게 된다. 사람들이 성벽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성벽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기술, 그 기술을 구현하게 위해 노력한 정신적인 힘. 그 둘 사이에 특별한 구획은 없다.

피어시그가 여행을 통해 주목했던 것은 오히려 삶으로의 도피보다는 “다시 삶 속으로”를 외치는 듯하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느꼈던 기술과 정신을 둘로 나누어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일상을 깨우는 생활 감각은 일상을 다르게 보는 자세에 있다. 그리고 그 자세는 정신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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