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진의 사진공감

수풀더미 할머니가 다가옵니다

- 임종진

언뜻 보아 어른 키 높이쯤 되는 수풀더미가 마치 공 구르듯이 다가왔습니다.

그대로 멍하니 시선이 머뭅니다.

깜박거림 없는 두 눈은 아까부터 그 수풀더미 아래 삐쩍 마른 발목에 꽂혀 있었습니다.

자근거리는 발자국 소리는 이내 귓속으로 파고들더니 같은 박자의 쿵쿵대는 굉음이 되어 가슴에 울립니다.

꼭 그만큼 가까이 다가온 수풀더미 틈새로 세월 가득한 얼굴이 묻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낯선 이의 관심을 알았는지 잠시 걸음을 멈추어 고개를 들고는 짓는 듯 마는 듯 웃음을 던져줍니다.

고요.

형언하기 어려운 고요가 그 안에 있었습니다.

따가운 태양 아래 흙에 치대며 살아온 그 얼굴에서 깊이를 가늠할 길 없는 고요가 저릿하게 흐릅니다.

홀리듯 카메라를 들어 올리니 천천히 헝클어진 회색빛 머리 매무새를 고칩니다.

그 모습이 그리 고우면서도 시큰합니다.

간신히 어깨를 가린 웃옷 틈새로 아이 몇은 키워냈을 쭈글쭈글한 젖무덤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잠깐의 눈맞춤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지팡이를 앞세워 가던 길에 들어섭니다.

다시 발목 아래로 눈길이 머물고

닳아빠진 슬리퍼와 흙이 마주치는 걸음소리가 다시 자박자박 가슴으로 밀려듭니다.

물 흐르듯 걷는 뒷모습에서 고단했을 삶의 궤적이 진하게 흐릅니다.

마주선 시간이라야 겨우 20여 초 남짓.

우연히 스친 것이라 하기엔 그 여운이 아득하게 짙기만 합니다.

2007. 7. 네팔.

응답 2개

  1. 줄리델피말하길

    한겨레21 표지에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가 나무같아요.

  2. 말하길

    정말 기막힌 사진입니다. 크게 뽑아서 걸어넣고 때마다 저 할머니의 눈을 들여다 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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