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다시 민주주의와 법을 생각한다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1.

잔인한 5월이 저물었다. 5.16 그리고 5.18. 5월이 일깨우는 과거사 가운데 19년을 사이에 두고 대척점에 서서 한국 근대사를 뒤집어 놓은 두 사건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악몽처럼 또다시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서 호출되어 우리의 의식 속에서 되뇌어진다. 이 고통스런 되새김질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사회정치적 질문과 다시 연결된다. 한무리 정치꾼들의 정치공학적 장난질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한줌의 법률 조폭들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법’과 ‘법치’의 이름으로 행세하는 이 때, 타락해버린 이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어 그 이름들이 어떠한 절실함으로 불리어졌는지를 돌이켜 보자.

많은 이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이름이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으로 애타게 불리어졌었음을. 그리고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서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남몰래 씌어졌었음을. 그리고 우린 알고 있다. 짐승보다 못한 노동자의 현실에 분개한 한 청년이 싸우다 싸우다 결국 자신을 불사르며 한 마지막 절규가 고작(?) “근로기준법 준수하라”였다는 것도. 이젠 ‘민주주의’도 ‘법’도 더 이상 이런 애탐 속에서 절실함으로 불리어지지 않는다. 그럼 우린 더 이상 이런 비탄 속에서 그 이름들을 외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가?

경찰 특공대와 용역 깡패들에게 맞아죽는 이들, 억울하게 해고당해 속 터져 죽는 노동자들, 하루 앞의 미래를 알지 못하고 전전긍긍 살고 있는 비정규직들, 살아남기 위해 몸과 영혼을 팔아야 하는 꿈꾸지 못하는 젊은이들과 고된 노동의 대가가 멸시와 차별인 이주 노동자들, 진학에 삶을 저당 잡힌 채 경쟁과 미래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사는 어린 학생들. 아, 이보다 앞선 온갖 고문과 광주에서의 학살극 같은 더러운 권력의 패악질 들은 지금도 입에 올리기 싫다.

이 끔찍한 현실이 바로 타카키 마사오와 그 일당들이 외쳐대던 ‘찬란한 조국의 미래’다! 너무 눈이 부셔 많은 이들의 고통스런 삶, 신음소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찬란한 국민소득 2만 불,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G20 정상회담 의장국 대한민국! 그래서 아직도 고매하신 학자, 언론인, 정치인 할 것 없이 ‘조국 근대화’의 영웅인 그 분의 업적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피비린내 나는 절규들은 ‘개발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의 양자택일 속에서 ‘독재’의 ‘민주’에 대한 ‘시대적 당위’속에서 아주 편리하게 해명되어 사라져 버린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뭘 기준으로 정한 ‘당위’란 말인가? 미국의 싸구려 반공주의 ‘개발이론’이 인류역사의 당위를 대변하는가?) ‘독재’와 싸구려 ‘개발’의 해독은 이렇게 무섭다. 소위 ‘엘리트’라는 자들이 아직도 인간의 삶과 역사를 ‘四지선다’도 아니요 ‘三지선다’도 아닌 ‘兩지선다’로밖에 볼 수 없는 지적 박약아가 될 정도로. 그리고 자신이 움켜쥔 한줌의 권력과 부를 타인의 피눈물과 쉽사리 맞바꾸는 인격 파탄자가 될 정도로.

2.

폭력과 피눈물, 도덕적 황폐 속에서 ‘민주주의’는 ‘죽음’으로 상징되는 이 모든 것을 넘어서고자 했던 아름다운 ‘삶’의 시도들의 이름이었다. ‘인간선언’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도들은 종종 ‘법치’를 요구하는 형태를 띠곤 했다. 여기서 ‘법’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공동체의 규약’으로서의 법, 누구나가 동의할 법한 ‘도덕의 최소한’으로서의 법이었고 그 소박함만큼이나 절실한 그 무엇의 이름이었다. ‘민주화 운동’은 바로 이 ‘삶의 기본’, 삶에 요청되는 ‘최소한’을 확보하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아름다운 이름들에도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리고 그 어두움은 ‘근대’가 예비한 어두움이었다. ‘근대’를 산다는 것은 근대의 궁극적 공동체이자 폭력 독점체계인 ‘국가’를 만들고 지키고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순교’의 피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국가’를 ‘큰형님’들의 추인하에 ‘굼바리 조직’(병영국가)으로 만들어 주먹과 발길질 총질로 지배하려 했던 타카키파와의 싸움은 시작부터 힘에 부치는 피 흘리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란 근대 안에서 ‘근대를 넘어선 삶’을 상상하고, 죽음으로써 ‘죽음을 넘어선 삶’을 이루고자 하는 이율배반이었다.

그러나 이율배반을 넘어서는 징후들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촛불을 밝히는 발랄한 젊은 생명들과 자신의 어린 생명들을 동반한 ‘유모차 부대’에서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는커녕 어떤 무거움이나 엄숙함조차 찾기 어렵다. 그리고 “신새벽 뒷골목”에서 남몰래 흐느낌 속에서 씌어져야 했던 ‘민주주의’는 ‘쥐벽서’ 화백들의 재기발랄한 ‘창작 활동’속에서 설치류의 형상으로 유쾌하게 되살아난다. 법정에서 검사의 논고에 터지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았다는 ‘벽서’사건 주모자(?) 아내의 고백은 이 시대 ‘법’과 ‘권력’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사람들은 이미 ‘권력’의 문제-공권력의 실체와 위상, 권력구조, 정당과 선거 등-를 훌쩍 뛰어넘어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子曰 必也正名乎..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3.

어디 타락해버린 말이 ‘민주주의’와 ‘법’ 뿐이겠는가? ‘힘’으로 자신들만의 ‘말’을 만들어 제 맘대로 자신과 세상을 규정해버리는 그들에게 반성이나 자기성찰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하나는 ‘이름을 바르게 하는 일’(正名) 즉 그들을 ‘바른 말’로 일컬어 줌으로 해서 그들의 ‘이름(名)’을 ‘실체(實)’와 부합하게 하게 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공자의 ‘정명론’인데 제자인 ‘자로’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論語> 子路편). 좀 고리타분하고 이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이 통찰은 우리에게 ‘빅 브라더’라는 말을 선사한 조지 오웰의 <1984년>의 ‘옛말’(Oldspeak) ‘새말’(Newspeak) 논의에서 적나라하게 되살아난다. ‘강제노동 수용소’가 ‘행복캠프’(joycamp)로 둔갑하는. 그리고 참고로 9/11이후 ‘국토 안전부’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로 개명된 미국 ‘국방부’ (Dept of Defense)의 ‘옛말’은 ‘전쟁부’(Dept of War)다.

‘정명’이 의미있는 사회적 실천일 수 있는 이유는 말이 가진 ‘수행성’(performativity)에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국방부’를 ‘전쟁부’라는 옛 이름으로 부를 때 그리고 그렇게 인식하고 대접할 때 미국 패권주의의 실체는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그 패악질을 미화하고 합리화하기는 훨씬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 말은 나의 삶을 어느 정도 규정하게 된다. 전쟁에 찬성하지 않는다면. ‘말’이 곧 ‘실천’을 담보하게 되는 것이다.

법을 자신들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서초파’ 두 무리들은 정명정신에 따라 하나는 ‘색검파’ 내지 ‘견찰파’로 또 하나는 ‘떡판파’ 정도로 명명하면 무난할 듯하다. (이 밖에 아주 강력한 다른 조직들-예를 들어 ‘청기와파’, ‘여의도파’, ‘셋별파’ 등등이 있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이들 조직의 조직원 모두가 나쁜 건 아니라고 항변할 지도 모르겠다. 아니, 조폭 가운데는 괜찮은 인간이 하나도 없어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는 것인가? 도리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 어찌하다보니 그리 된 사람들이 적지 않을 터 (영화 <파이란>의 ‘강재’같은 인물), 괜찮은 환경에서 좋은 머리로 악착같이 공부해 사회의 엘리트 대접을 받으며 깡패짓 양아치 노릇하는 인간들보다 그들이 좀 더 나은 인간들일 것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따라서 ‘조폭’이라는 호칭은 다른 조폭들이 좀 섭섭해 할망정 서초파 조직원들이 불평할 일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을 얼굴엔 칼자국 그리고 온몸엔 문신과 “착하게 살자” 따위의 도착적 문구를 새기고 정말로 ‘착하게’ 사는 힘없는 이들을 겁박하고 강탈하는 하류인간들 밑에 두고 경멸과 혐오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봐 주어야 한다. 그것이 딱 그들의 값어치에 합당한 대접이다. 그리고 그 느낌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예를 들면 그들의 위치를 탐하지 않는 것, 그들의 패악질에 침묵하지 않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식들이 그런 혐오스런 인간이 되지 않도록 키우는 것 등. 이것이 바로 ‘정명적 실천’의 핵심이다.

4.

앞서 촛불과 쥐벽서로 상징되는 밝은 민주주의를 얘기했다.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흐느끼며 쓰는 민주주의와 쥐 벽서의 발랄함을 대비시켰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써넣는’ 것과 쥐를 ‘그려 넣는’ 것 사이의 동형성*은 왠지 어두움과 밝음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어떤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완성되어 우리 눈앞에 화려하게 드러나는 어떤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것, 채워지지 않은 여백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새겨 넣는 것, 그렇게 새김으로 끊임없이 나를 드러내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그리고 보니 공자 자신도 언어의 절대성이 아닌, 만들어지고 만들어가는 전통성 속에서 ‘정명’을 생각했듯이 ‘쥐벽서’와 그 후속 작업들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언어’에 의한 선구적 ‘정명’ 실천의 과정이 아닐까?

선구자들의 유쾌한 용기와 혜안에 경의를 표한다.

응답 2개

  1. Beilang말하길

    쥐벽서 화백의 한 분이시군요. ‘감사’는 의당 제가 드려야지요. 그런 마음으로 쓴 글이고요. 언제 술이라고 한잔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말하길

    87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명동성당 집회가서 처음 들었던, “타는 목마름으로…” “벽에다 쓴다” “민주주의여 만세!” 가 거리의 포스터에 그린 제 쥐그림의 인연으로도 다시 듣데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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