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죽지 않는 카나리아

- 맹찬형(연합뉴스 제네바 특파원)

제네바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다보면 갖가지 국가경쟁력 평가 지수 관련 기사를 자주 다루게 된다. 유엔 유럽본부 앞에 있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등 유엔 산하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호수 건너편에 세계경제포럼(WEF), 로잔에 있는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등에서 매년 정해진 때가 되면 세계 각국의 경쟁력을 평가한 성적표를 내놓는다.

등수 매기기 보도가 분명히 문제가 있고 촌스럽기까지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된 자료이니 내가 안 쓰면 곧바로 물을 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송고한 기사들이 모두 다 국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입맛에 맞춰 보도된다.

5월 중순에 나온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의 국가경쟁력 평가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59개 나라 중에서 22위를 차지했다. 2009년 27위에서 2010년 23위로 올랐다가 올해 22위를 차지했으니 3년 연속 순위가 상승한 것이다. 역대 최고 순위를 또 한 번 경신했다.

국내 신문들, 특히 보수언론들의 반응이 좋았고 여기저기 큼지막하게 실렸다.

하지만 입맛은 씁쓸했다. 우리나라의 경쟁력 지수가 상승하면 크게 보도하지만, 하락하고 있다고 경고하면 외면한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작년 3월에 세계경제포럼이 2010년 네트워크 준비지수라는 걸 내놓았는데 거기서 우리나라는 15위를 기록해 2년 연속 하락했다. 물론 기사를 썼지만, 일부 매체를 제외하고는 인용하지 않았다.

같은 해 2월에 국제전기통신연합이 내놓은 세계 159개 나라의 정보통신기술(ICT) 평가 지수에서도 우리나라가 2년 연속 하락했는데 그 때 그 기사도 별로 소개되지 않았다.

원래 ITU의 평가 지수에서 한국은 2007년과 2008년에 1위였다가 현 정부가 집권한 후에 나온 2009년 조사에서 2위로 떨어졌고, 2010년에는 3위로 한 계단 더 밀려났다.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평가지수를 보도하지 않는 언론의 태도는 마치 시험을 망쳐서 엉망이 된 성적표를 받은 학생이 부모에게 보여주지 않고 중간에서 가로채는 것과 닮았다.

로마의 제정 시대를 연 율리우스 시저가 탄식하듯 내뱉은 것처럼 사람들은 정말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모양이다. 시저가 중요한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정치적으로도 원로원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고,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분을 맞춰주는 수치만 보도하면 옳은 국가 전략이 나올 수가 없다.

예전에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광부들은 갱도에 작업하러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갔다고 한다. 호흡기가 민감한 카나리아가 갱내 유독가스를 감지하고 이상 반응을 보이면 곧바로 철수하기 위해서다.

광부들이 데리고 들어가는 카나리아는 작업 중에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으러 들어간다. 죽어서 광부들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다.

죽지 않는 카나리아, 광부들의 목숨보다 자기 목숨에 집착하는 카나리아는 아무 짝에도 쓸 모 없다. 노릇노릇 잘 구워서 소주 안주로 쓰면 딱 좋을 일이다.

응답 2개

  1. 맹찬형말하길

    집사람은 마지막 문장을 좀 과격한 표현이라고 걱정했는데, 좋아해주시니 다행입니다. ^^

  2. 말하길

    아하! 카나리아를 델코 가는 이유가 그런 거였군요. 죽지 않는 카나리아, 소주 안주로 쓰면 딱 좋을…통쾌한 마무리 멋집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