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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답사

- 이강혁

경천대

경상북도 봉화군과 예천군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내성천에 (스님, 도시생태전문가, 언론인, 영화인, 디자이너, 사진가, 사업가, 농부, 교사, 국립공원근로자 등)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07km에 달하는 자연하천을 답사하기위해 각지에서 모인 그들의 관심사는 단연 4대강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였다.

내성천은 남다른 지형적 특성을 가졌다. 상류부터 생성된 모래톱이 하류까지 고르게 펼쳐졌고, 산줄기를 따라 형성된 굴곡이 역동적인 데 비해 흐름은 유유하다. 주변에는 버드나무를 비롯한 온갖 수풀이 군락을 이뤘으며 좀처럼 보기 힘든 물방개·민물새우·송사리 등과 더불어 수달·고라니·왜가리와 같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내성천

절경을 자랑하는 내성천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시키자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한편에서 MB정부는 댐건설을 은밀히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공사현장주변에 높은 담장을 쌓아 접근이나 촬영을 금하고 있다.) 시공률은 이미 50%를 넘어섰다. 댐이 들어서면 내성천의 일부가 수장되고 그 여파로 건천(乾川)이 예상된다.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강을 건너고 모래와 진흙을 가르며 동식물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강의 굴곡과 흐름을 살피며 물리적 변화에 맞설 자연적 대응을 예측했다. 주변개발의 경제성과 실수혜계층, 지역민의 이주와 보상을 문제 삼았다. 답사 내내 무거웠던 사람들과 달리 내성천은 그저 담담했고, 아름다웠다.

내성천

해질녘 일정을 마치고 임시 거처에 들었다. 흙으로 만든 옛집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쌀을 익히고 답사하며 꺽은 풀들로 찬을 차렸다. 식사를 마치고 둘러 앉아 그릇에 막걸리를 부었다. “댐을 막아야 한다”는 불가항력앞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심경을 고백했다. 막걸리통이 거침없이 비워졌다. 깊어가는 밤의 도처에서 소가 울었다.

이튿날엔 360도 굴곡 구간인 회룡포와 경천대를 거쳐 낙동강의 상주보와 33공구까지 답사했다. 낙동강에 가까울수록 완공기한의 다급함에 무너지는 지천(地川)이 속수무책이었다. 목격한 대로 말하자면, 현재 4대강 공사현장에는 ‘군대식 속전속결’이라는 ‘재난’이 벌어지고 있다. 오염은 물론 인부들의 안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미 20여명의 인부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완공을 앞둔 상주보에서 흙탕물이 길게 흘렀다. 근처에 조성된 인공섬 ‘나비’는 경악을 넘어 극한의 인내를 요구했다. 새들이 오고가던 자연섬을 강바닥에서 퍼 올린 모래로 밀어 넓히고 뒷산의 소나무를 뽑아 조경에 사용했다. 나비모양으로 닦아 낸 자전거 도로는 성형에 실패한 얼굴처럼 추악했다. 접근성이 불리한 그곳에 수십 억 예산을 들인 저의도 의심스러웠다. 본의 아니게 ‘나비’는 4대강사업의 총체적 문제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는 조악한 인공섬도 처참했던 공사현장도 아닌, 경천대에서 보았던 모래톱이다. 재난 속에서도 강은 놀라운 생명력을 보였다. 중장비로 깊숙이 긁어 사라진 모래톱의 일부가 다시 돋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경이로움은 파괴되는 강이 내보인 희망이었던 동시에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경고이자 어떤 징후였다.

4대강사업 비판을 정치적 클리셰로 취급하는 한국의 진보사회를 보면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은 애초부터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MB가 강을 파헤치든 산을 무너뜨리든 레임덕에 빠진 그를 반대하는 건 이제 촌스러운 국면에 이른 것인가? 4대강사업을 오직 정치적으로만 반대했던 메아리들이 사라지는 만큼 현장의 삽질은 매서워지고 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며 하나 둘 체념하는 단군 이래 최대의 토건사업은 ‘어쩔 수 없다’ 정도로는 감당할 수 없을 어마어마한 부담과 재앙을 우리에게 안길 것이다. 4대강사업은 이미 늦은 것이 아니라,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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