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서울-부산-서울

- 김민수(청년유니온)

서울

‘어서 일어 나~ 또 지각 할 거야~?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

8시 40분의 (매일 들어서) 짜증나는 알람을 격하게 종료 시키고 기상한다. 이미 30분 전에 울렸던 녀석을 미루고 미뤄서 다시 울리게 해 놓았으니, 더 이상 이불 속에 파묻혀 있을 여지가 없다. 양치를 하는 둥 마는 둥,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찌끄리고 현관을 나선다. 눈 뜨고 문을 나서기 까지 20분이 채 안 걸리는 관습적인 동작들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할 수 없다. 지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버스를 타, 또 버스를 타, 그리고 또 내려서 지하철을 타.’ (노래 ‘승복이의 일기’ 中)

위 노랫말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여정을 지나서 커피숍에 출근한다. 이제부터 8시간 동안 미친 듯한 복무(?)에 들어간다. 업무시간 중 구사하는 어휘의 개수, 즉 말하는 양이 학원강사나 교사를 가볍게 뛰어넘을 것이며 8시간 내내 서서 일하는 것은 재탕 언급할 필요도 없다. 청년유니온에서 노동상담을 담당하는 녀석이 휴게시간(밥 시간)과 주휴수당을 보장받고 있지 못함은 부끄러울 따름이며, 고객이 먹다 남긴 음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걸 몰래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모습은 어처구니 없을 따름이다. (맛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배가 고파서란 말이다! 정말로!! (응?)) 아무튼 시간 당 4320원에 인간의 자존감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 지 확인한 나의 8시간이 지나갔다. -이제 시청으로 향한다.

부산

혼이 빠져나간 채 껍데기만 남은 육신을 이끌고 시청으로 향하는 까닭은 하나. 한진 중공업의 투쟁을 응원하기 위한 희망버스에 탑승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느 멋진 분의 멋진 아이디어로 기획 된 이번 프로그램에 청년유니온에서 10명의 조합원이 함께 했다. 전국적으로 1000명 이상이 결합 한 이번 프로그램의 목적지는 단연 부산이다.

뜨겁고 가열찬 투쟁의 현장으로 향하는 버스의 기운은 짐짓 발랄했다. (아니, 버스의 맨 뒷좌석을 쪼르르 차지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만 신났다.) 투쟁 현장에 가는 것인지, 수학 여행 가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충분히 밝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째서..?) 무튼 5시간 30분의 버스 주행, 40분 가량의 촛불행진을 거쳐 한진 중공업 정문에 다다른다. 물론, 중간중간 이루어지는 청년유니온 사무‘쿡’장 님의 인증샷 세례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이 분이 전장에서 활약했더라면 훌륭한 종군기자가 되었을 것이다.)

한진 중공업으로 진입하는 길은 굉장히 스펙타클 했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용역과 컨테이너 박스들을 조롱하는 일련의 작전(?)은 가히 반지의 제왕을 연상 시켰더라는. 궁금하신 분들은 인터넷 검색창에 희망 버스를 입력하시라. 무튼 무사히 입성한 우리들은 용역들과의 짧은 사투를 ‘구경하고’, 어르신들의 연설을 ‘흘려듣고’, 구호와 투쟁가를 ‘흥얼거리고’, 난장을 ‘즐겼다’. 거듭 강조하지만 뜨겁고 치열한 투쟁의 현장일수록 웃음과 즐거움의 감정이 더더욱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들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가벼움’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웃음과 즐거움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뜨거움’이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픈 아들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아비의 절망과, 아버지의 존재를 낯설어 하는 딸을 바라보는 어미의 절망이 공존하는 이곳은 -감히 읊조리건데, 대한민국이다. ‘저들’의 대한민국에서 욕망과 자본이라는 타락한 천국이 펼쳐지는 동안, ‘우리’들의 대한민국에서는 착취와 해고라는 순진한 지옥이 펼쳐진다. 하나의 국경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야만 앞에서 우리는 깊은 신음을 내지를 수 밖에. 이 비극적인 상황을 목도한 죄밖에 없는 우리들의 손을 부여잡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승리할 거라고 외치는 조합원의 숨결 앞에서는 뜨거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무언가 힘이 되어드렸다는 홀가분한 마음 대신, 가슴에서 지울 수 없는 뜨거운 짐을 안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광활한 상공에서 내려 온 김진숙 동지의 음성은 부산에서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투쟁하는 까닭은 우리에게 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명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6개월 전 행복하고 소박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 그것 뿐입니다.”

모두들, 부디 건강하시길. 그리하여 행복하고 소박했던 일상으로 돌아가시길.

서울

‘어서 일어 나~ 또 지각 할 거야~?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

8시 40분의 (매일 들어서) 짜증나는 알람을 격하게 종료 시키고 기상한다. 이미 30분 전에 울렸던 녀석을 미루고 미뤄서 다시 울리게 해 놓았으니, 더 이상 이불 속에 파묻혀 있을 여지가 없다. 양치를 하는 둥 마는 둥,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찌끄리고 현관을 나선다. 눈 뜨고 문을 나서기 까지 20분이 채 안 걸리는 관습적인 동작들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할 수 없다. 지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시 돌아 온 일상.
그러나 다르게 흐를 삶.

응답 1개

  1. 말하길

    가셨더랬군요. 알았더라면 전화해서 만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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