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6.10 반값등록금 집회 스케치-“빚쟁이 대학생이 아닌 빛나는 청춘이고 싶다”

- 심해린(대학생나눔문화 팀장)

6.10 민주항쟁의 날, 거리를 수놓은 촛불들

24년 전, 수많은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거리에 나섰던 그 자리에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촛불을 들고 다시 모였습니다.
1987년에는 군사독재에 맞선 청년들이 스러져갔고,
2011년에는 끝없는 경쟁과 등록금 빚에 몰린 청춘들이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선거 공약인 ‘반값 등록금’ 실현을 요구하기 위해
‘6.10 국민 촛불대회’가 열리는 서울 청계광장에는 3 만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치솟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꿈 꿀 시간조차 없는 20대부터
뒤늦게 졸업해도 수천 만원 빚과 실업을 떠안게 되는 청년들,
날이 갈수록 살인적으로 진화해가는 경쟁에 숨죽인 고등학생들과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대학에 인질로 잡힌 ‘대학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모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실업과 빚더미뿐입니다”

처절하게 달려온 트랙을 잠시나마 벗어나 거리로 나선 대학생들.
어린 시절부터 성적 경쟁에 시달리고, 대학에 들어가도 계속되는 스펙 경쟁,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면 수천만 원의 등록금 빚쟁이로, 신용불량자로
벼랑 끝에 몰리고 있는 대한민국 20대 청년들입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고 해서 했습니다
대학 가서도 학점 열심히 따라고 해서 죽어라고 했습니다.
영어 공부도, 제2외국어도 필요하다고 해서 했습니다.
유학도 다녀와야 된다고 해서 다녀오고
다른 자격증도 좀 따놓으라고 해서 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실업과 빚더미뿐입니다!”

“‘딸아, 미안하다. 엄마가 참 능력이 없구나’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이 나라 학부모 현실입니다. 입시지옥을 겪고 들어간 대학,
졸업해도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만 하는 2,30대.
이것은 대학생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의 문제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의 열망이 등록금 촛불로 타오른 것입니다.”

“청년들아 힘내라!” 선배들의 응원의 음식나눔

촛불 파도가 출렁이는 청계광장에는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광장 곳곳에서 춤판이 벌어지는가 하면,
작게 무리 지어 구호를 외치고 자유발언과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청년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김밥, 주먹밥 등 풍성한 음식 나눔도 벌어졌습니다.
민주노총 여성연맹 어머니들과 인터넷 커뮤니티 소울드레서, 쌍화차코코아, 화장발 등
허기진 뱃속과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지는 나눔의 공동체!가 이뤄졌습니다.
오랜만에 자유의 광장의 열기를 느낀 시민들의 얼굴은 환하기만 합니다.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어도 바뀌지 않는 것들

너무 오랫동안 꾹꾹 눌러오기만 했던 청년들의 고통,
반값등록금은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 중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무대에서는 야 4당 대표의 발언이 이어집니다.

“등록금, 반값도 비쌉니다. 무상교육으로 가야 합니다.
반값등록금! 민주당이 책임지고 실현하겠습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이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대기업에 깎아준 세금 걷으면 등록금 문제 해결 가능합니다.
학부모가 등록금 사채 빚 때문에 목숨을 끊지 않아도 되는 세상, 가능합니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

난생 처음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왔다는 새내기 대학생을 만났습니다.

“처음 본 사람들과 한 목소리로 외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니,
학교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고민들이 저를 짓누르고 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만 보고 살아왔는데
막상 대학에 오니까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학점 따고, 스펙만 쌓으며 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대학 등록금이 반으로 줄어들어도, 좁아지는 취업문은 달라지지 않잖아요.”

수많은 청춘들이 “반값등록금 실현하라”는 구호 아래 모였지만
저마다 가슴 속에는 아직 꺼내지 못한 뿌리깊은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반값 등록금’이 실현된다고 해도 우리 삶은 무엇이 바뀔까요?
1년에 500만원을 ‘덜 빼앗긴다면’ 당장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학비마련을 위해 밤새 편의점 알바를 뛰지는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근원적 문제인 ‘일자리’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 돈과 시간은 다시 더 많은 자격증 학원에, 해외 유학에 쏟아 부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값 등록금 실현’은 물론 필요하지만, 세계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외면한 채로 우리 삶의 고통은 얼마나 해결될 수 있을까요?

촛불로 하나된 청춘, 진정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밤 11시 청와대 인근에서 시위를 벌인 대학생 72명이 전원 강제연행된 가운데
촛불집회를 마친 학생과 시민 5,000여 명은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을지로에서 명동, 시청광장, 남대문까지 ‘국민 운동회^^’를 벌였습니다.

“반값등록금 실현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늦은 밤, 스무 살 청춘들의 분노가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6월 항쟁이 24돌을 맞던 그날 밤, 20대 청춘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 속에 묵혀두기만 했던 목소리를 바깥으로 크게 외쳤고,
자동차가 주인이던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진짜 축제를 벌였습니다.
전쟁 같은 일상에 짓눌려온 우리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힘차고 밝게 빛났습니다.

6월 10일 밤, 우리가 느낀 이 해방체험, 뜨겁게 하나된 감동,
자유와 민주주의의 달콤함은 우리의 몸과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젊음을 앗아가는 것들에 저항의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좋은 삶 쪽으로 탈주의 한 걸음을 내디딜 것입니다.
저항하고 부딪히고 고뇌하는 젊음으로 다른 미래를 열어가는,
진정한 청춘들이 불러오는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응답 1개

  1. unlimited말하길

    가슴 뜨거워지는 글이네요. 생생한 스케치기사, 오랜만에 다시 촛불들고 나가고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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