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혈방지도

- 홍진

중국의 토지는 국가 소유다. 이런 훈훈한 나라가 있나. 라고 절대 감탄하지 말자. 그 위에 불고 있는 재개발의 피바람은 십여 년 새 가장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땅주인이 국가라면서 어떻게 건설 투기 자본이 기승을 부릴 수 있을까? 원칙적으로 중국의 토지는 생산요소이기에 국가의 것이지만, 각 건설사가 사용권을 위임받아 그 위에 짓는 집은 생활필수품이므로 사유재산으로 인정된다.(이미 이런 구분은 헛된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주택부지의 장기 임대 기간은 70년이다. 국가 소유의 땅에 70년간 집을 짓고 살 권리를 인민들에게 법적으로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개혁개방과 함께 시작된 부동산 광풍은 아직 70년을 채우지 못한 토지를 국가나 지방정부의 토지개발계획이라는 명목으로 강제수용하기 시작했다. 토지의 국가 소유라는 사회주의적인 개념 위에서 너무나 자본주의적인 강제 토지 수용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른 반발은 당연히 만만치 않다. 사유재산권을 강화하는 물권법物权法의 시행 이후 자본주의 소유권 개념에 익숙해진 인민들은 시장 가격에 비해 턱없이 적은 보상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니, 이건 정당한 교환이라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절박한 생존의 문제다. 가끔, 깎아지른 흙 위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집 한 채나, 이미 반쯤 철거된 건물 위쪽에 위태롭게 얹혀 있는 한 층 분의 주택 사진이 인터넷에 큰돈을 노리는 알박기 전술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인민들은 이미 값이 오른 주택비를 감당하기엔 터무니없이 모자란 푼돈을 손에 쥐고 길거리에 나앉는다.

이렇게 빼앗아 만들어진 땅은 얼마나 귀중하게 쓰일까? 지방정부를 끼고 진행되는 신축 아파트와 상가의 분양엔 엄청나게 긴 줄이 서게 마련이다. 건설사에서 분위기 조성을 위해 후하게 100위안 씩 주고 모은 동네 알바꾼들이다. (모 당의 선거 운동원을 생각하면 된다.) 분양되지 않은 남은 집들도 우선 직원 명의로 등록하고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다시 돈을 빌린다. 명백하게 ‘조장된’ 빠른 자금의 흐름 속에서 집값은 ‘예언했던’ 대로 오르고, 집을 구입한 사람들도 실제로 완공도 되기 전부터 이를 되팔아 이익을 얻는다. 사람이 살아야 할 집이, 비쌀수록 좋은 사치재 또는 투자재가, 수익을 위한 장난감이 된다. 월급쟁이 커플은 결혼도 하기 전부터 대출금에 인생을 저당 잡히는 집노예房奴가 되길 자처한다. 입지가 좋지 않은 어중간한 땅에는 짓다 만 건물들이 수두룩하고, 중국 정부는 부풀대로 부푼 부동산 물집이 터질까 무서워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1년 4월 22일 철거에 반대해 지붕에서 분신한 후난湖南 주저우株洲시 농민 왕자정씨

대대적인 철거에서 정말 치명적으로 고통 받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고속철도가 지나갈 예정인 시골의 가난한 마을이나, 타지에서 온 농민공들이 모여 있는 판자촌(도시속의 시골城中村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에서 재개발의 동의어는 ‘죽음’이다.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온 호구户口가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최소한의 보상비마저 받을 수 없다. 집 한 채가 없어지면 한 달에 80위안(한화13500원)을 내고 판자집 마루와 부엌에서 새우잠을 자던 더부살이 식구들도 갈 곳이 없어진다. 살아갈 자신이 없는 이들은 재개발과 싸우다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거나 불도저로 돌진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폭력적인 철거현장을 기록하고 불매운동을 전파하는 혈방지도

1년 전 인터넷에 등장한 ‘혈방지도(血房地图 : 피로 만든 집 지도)’는 중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이 살인적인 강제철거의 현장을 지도에 적어 놓고 있다. 참 역설적으로 귀엽게 생긴 구글맵의 마크들을 누르면 그 지역에서 벌어진 끔찍한 현장에서 다치거나 죽은 억울한 사람들의 기록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집들은 아무리 돈이 되고 가격이 올라간다고 해도 불매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절절히 전해진다. 신문에 공식적으로 기사화된 폭력 철거 현장들을 많은 누리꾼들이 함께 적어 넣고 있어서 이미 지도는 빼곡하다. 한곳 한곳의 사연은 끔찍하다. 정부가 막지 않는 야만에 대한 작지만 분명한 저항이다.

http://maps.google.com/maps/ms?ie=UTF8&msa=0&msid=111560301092049321699.0004921f02f43f6c4f07e&ll=35.317366,111.357422&spn=28.03956,39.506836&z=5

천빈陈斌과 주바오젼朱宝珍 커플의 철거현장 피켓팅

지난 5월 15일에는 유명한 핀fin수영선수이자 예비부부인 천빈陈斌과 주바오젼朱宝珍 커플이 자신의 금메달을 목에 걸고 광동성 한 철거현장의 잔해 위에서 “권리를 보호하라”는 피켓을 든 사진이 각 언론에 실렸다. 일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메달이다. 중국정부도 공식적으로는 강제철거를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 보장을 이야기 한다. 철거 과정에서 철거민을 때려죽인 용역 깡패는 사형을 선고 받고, 업체 대표와 관리자도 사형 유예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런 극단적인 본보기와는 별개로 극빈 철거민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아직까지 요원하고, 지방정부와 건설업체간에 꿍짝이 맞는 폭력철거와 피의 재개발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포이동에 불이 났다. 강남 한 켠의 섬 같은 곳이라고 한다. 중국 각지의 폭력철거 현장은, 용산과 두리반, 한진 크레인이 그런 것처럼 언제나 섬 같은 곳이다. 감히 내가 먼저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다. 하지만 포이동 화재 이후의 우리의 대처는 중요해 보인다. 그리고 폭력철거가 계속되는 한국에도 혈방지도가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못된 짓들이 일어나는 곳을 표시하자. 그 섬을 방문하자. 최후의 최후까지 막을 수 없는 경우엔 그 정체를 알리는 끔찍한 이름을 갖다 붙이자. 집 값 떨어져라! 퉷퉷퉷!

응답 1개

  1. 혈방지도라..말하길

    (대추리.. 용산.. 두리반.. 명동..)
    지금 이 곳에도 꼭 필요한 지도로군요..
    점점 붉어지는 지도에 가슴이 갑갑합니다.
    명동의 카페 마리라는 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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