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사랑과 연대, 저질러 놓고, 신나게 놀자~

- 박정수(수유너머R)

지난 일요일 저녁, 명동에 있는 카페 ‘마리’에 갔습니다. 커피 마시러 간 건 아닙니다. 오후에 용역깡패들이 들이닥쳐 철거반대 농성중인 상인들을 이불로 덮어 내동댕이치고 내부집기를 때려 부수고 있다는 트윗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용산과 두리반을 비롯한 무수한 재개발 반대 투쟁의 또 다른 현장이지만, 명동 싸움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중앙극장 옆, 향린교회 주변지역 상점 11곳은 명동성당 재개발과 금융특화지구 설립을 위한 철거에 맞서 24시간 농성중입니다. 87년 민주화투쟁의 성지였던 명동성당과 향린교회가 금융특화지역의 한 축과 그에 맞선 투쟁의 축으로 대립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적 폭압과 세계적 공황의 주범인 금융자본, 그것도 사금융 센타를 만들기 위해 소상인들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데 맞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오후에 용역깡패가 들이닥쳐 몽땅 부수고 갔다는 소식에 위로의 마음이나 전할까 해서 갔는데,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트윗을 통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쉰 명 정도의 사람들이 길거리에 모여 앉아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자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선동적인 발언과 준비된 문화공연이 아니라, 진솔한 토크와 즉흥적인 콘서트가 펼쳐졌습니다. 두리반 싸움을 마무리하던 날라리들과 활동가들, 혁명을 놀이로 사유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젊은이들이 중앙극장 앞 거리를 락 페스티발의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버려진 고깔 차단물로 멋진 드럼연주 뽐낸 인디밴드, 기타 반주에 맞춰 핫팬츠 차림으로 미친듯이 춤을 추며 뛰어다닌 젊은 연극인, 락 밴드 마니아들의 신청곡을 즉석에서 연주하며 명동거리를 홍대 ‘클럽’으로 만든 인디밴드 활동가, 페트병이든 음료 캔이든 손에 잡히는 것을 마구 두들기며 몸을 들썩이는 사람들, 그들은 명동거리를 ‘명동스탁’으로 변모시켰습니다.

두리반에 있던 한 친구의 자작곡이 이 놀라운 변형의 비밀을 전해줬습니다. “당신을 유혹하는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 사랑과 연대 / 저질러 놓고 / 신나게 놀자~” 일상생활이 파괴되고 죽음의 유혹이 움트는 철거농성장을 매력만점의 놀이 공간이라고 여기는 이 친구들이 있는 한 명동3구역에 사금융센터가 들어서기는 힘들 듯합니다. 철거농성장이라는 비정상적 예외공간을 자유로운 예술혼과 공동체적 연대의 공간으로 바꾸려는 의지와 능력자들이 있는 한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빨아먹는 금융자본의 성곽이 그리 쉽게 들어서지는 못할 겁니다. 맑스의 말처럼 코뮨주의는 코뮨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투쟁의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공동체적 자유 속에서 실현됩니다. 카페 ‘마리’와 향린교회, 그리고 티벳 음식점 ‘포탈라’가 코뮨주의의 실현공간으로 되고 있음을 예감하면서 그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명동에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주 동시대반시대 주제는 ‘주차장 프로젝트: 공간의 예술적 생산’입니다. 수유너머R의 ‘진동젤리’ 그룹이 올해 초부터 실험하고 있는 주차장 변신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진동하는 젤리상태의 신체를 만들자는 요상한 이름의 막무가내 예술집단이 주차장을 극장으로 변용하는 이유는 그곳이 “없는(비어있는) 공간이고, 그것은 무엇이 채워졌을 때 비로소 있게 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없으면서도 있는 공간, 부재와 존재, 빔과 채워짐이 공존하는 장소, 그곳이 꼭 주차장일 필요는 없습니다. 철거농성장에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이유도 그곳이 빔과 채워짐이 어떤 예술적 ‘액션’으로 공존하기 때문일 겁니다. 자본과 국가권력이 부재하는 ‘빈’ 장소(空)이면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사이(間)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존재와 부재의 놀이는 농성자들을 위한 것이기 전에 장소 자체에 대한 예우일 겁니다. 그것은 사적소유의 지배논리로 ‘빔’과 ‘사이’를 잃어버린 장소를 사람과 관계들로 충만한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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