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주차장에 대하여 경례!!

- 모기

주차장 변신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6개월가량 지났다. 나는 주차장 변신 프로젝트에 대해 말할 때면 항상 ‘변신’에 힘을 준다. 주차장을 변신시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하지만 주차장은 아직도 주차장인 채 남아 있다. 어쩌면 난 주차장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주차장은 고요하다. 고무타이어가 잘 코팅된 바닥을 문지르며 요란한 소리를 낼 때조차 고요하다. 주차장은 여전히 주차장으로 남아있다. 심지어 내가 주차장에서 공연을 할 때조차 이곳이 주차장이라는 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나는 주차장에 대해 한 없이 무기력 하다. 왜냐하면 다시 말하지만, 주차장은 여전히 주차장이고 또 고요하기 때문이다. 날 무기력하게 하고, 고요하며, 여전히 주차장이기 때문에 난 주차장을 사랑한다. 나는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차장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그 곳은 여의도에 있는 거대한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한 층에 단 네 세대만 사는, 시급 오천 원 알바인생으로는 평생 꿈도 못 꾸는 아파트였다. 나는 새벽마다 각종 자동차 세제들과 걸레를 잔뜩 실은 쇼핑카트 비슷한 손수레에 끌고 다니며 벤츠, 아우디, 비엠더블유 등을 청소했다. 그곳 주차장도 역시 고요했다. 가끔 차 들어오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들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주차장의 적막을 깨뜨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고요함에 파묻힌, 고요함을 강화시키는, 고요함 그 자체인 소리였다. 새벽의 주차장은 정말로 고요했다.

젊은 부인이 한 명 있었다. 하얀 비엠더블유를 몰고 다니는 여자였다.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당연히 결혼한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은 유난히 희고 향수냄새는 지독했다. 그 부인의 하얀 비엠더블유는 항상 새벽녘에 들어왔다. 내가 한창 자동차들의 때 구정물로 온통 시커멓게 되었을 때 즈음 그 여자는 하얀 자동차문을 열고 나와 나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주말이면 그 여자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월요일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하얀 차에 진흙을 잔뜩 묻힌 채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차가 너무 더러워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잘 부탁해요’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여자의 사생활에 대해 상상했다. 그녀의 소파와 티비를 상상했다. 거실에서 혼자 와인을 마시는 모습, 해외출장 나가 있는 남편에 대해, 또 주말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야만 갈 수 있는 교외의 별장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빨래 건조대에 널려 있는 그녀의 브래지어를 상상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상상하지 않았다. 그녀의 독한 향수냄새를 맡고 있자면 머리가 지끈거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인가 평소 그녀가 들어오는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차가 들어왔다. 운전석의 문이 열리더니 뜻밖에 웬 중년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남자는 다급하게 차의 반대편 문을 열더니 그녀를 꺼내 두 팔로 안고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었다. 여자는 축 늘어진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나는 조심히 수레를 끌고 비엠더블유를 향해 다가갔다. 차는 마치 날개를 펼친 것처럼 양쪽 문이 열려 있었고 실내등은 켜져 있었다. 핸들 옆에 차 키도 그대로 꽂혀 있었다. 그리고 열려진 보조석 문의 바로 앞에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스카프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스카프 때문인지, 아니면 꽂혀있는 차 키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진흙이 묻어 잔뜩 지저분해 진 차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 광경을 꾀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대신 두 팔을 벌린 채 주인을 기다리는 하얀 비엠더블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기로 결정 했다. 차 문이 열린 채, 실내등이 켜진 채, 차 키가 꼽힌 채, 스카프가 떨어진 채,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수천 년 동안 땅속에, 밀림 속에 묻혀있는 고대의 유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는 주차장의 고요함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주차장이 고요한 이유는 그 때의 그 여자가 떨어뜨린 스카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약 5년 후 그러니까 올해 초에 주차장 변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생각한 것은 일 년 전 중국 여행을 통해서다. 북경의 피촌이라는 마을에 갔다. 그 마을은 초고속으로 진행된 북경의 개발을 틈타 돈을 벌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정착하여 살던 빈민가였다. 그곳에서 덩치 큰 배불뚝이 일본 아저씨와 대만의 배우들이 커다란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다. 그 일본 아저씨 이름은 사쿠라이였는데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훨씬 더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회에 불만 많은 이 아저씨는 몇 년 째 아시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텐트연극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장군 같았다. 자신의 정예군을 거느리고 텐트를 치며 진격하는, 국가와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는 장군. 텐트에서 연극이 시작되면 그 장소는 하나의 전투지, 매복지, 함정, 결계가 되었다. 그 아저씨가 왠지 멋있어 보여서 나도 연극을 통해서 이 지랄 같은 사회와 한번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는 사쿠라이 아저씨만 한 배짱도, 덩치도, 완력도 없으니 아저씨처럼 대놓고 싸우진 못하겠고 주차장 같은데 숨어서 소심하게, 게릴라식으로 치고 빠지는 싸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난 주차장을 사랑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재수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연극영화과를 나온 나의 동기들이 하나 둘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사실 나도 몇 달 치 월세를 밀리고 있었다. 공연을 하려면 무대가 필요했다. 일주일을 쉬지 않고 노가다를 하면 대학로에서 가장 허름하고 곰팡내 나는 소극장을 하루 빌릴 수 있었다. 연습실 대여, 무대 제작, 소품제작, 의상 제작비 까지 노가다 일 수로 계산을 하다가 그만 두었다.

그러다보면 내가 특별히 삐딱해서가 아니라 살다보면 어련히 한 번쯤 하게 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집들은 저렇게 많은데 왜 내가 살 집은 없는 거지? 아마도 평생 내 집 같은 건 꿈에서도 없을 것 같은데.’, ‘길거리의 수많은 자동차들. 저 차들은 다 뭐란 말이냐. 내가 내 돈 내고 자동차를 살 수 있을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차장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저 수많은 주차장들은 다 뭐지? 나는 무대로 쓸 손바닥만 한 공간 찾기도 어려운데.’ 출근시간 혹은 퇴근시간 주차장에서 차들이 빠져 나가고 텅 빈 주차장을 볼 때면 더더욱 삐딱한 시선으로 주차장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주차장아! 너는 어찌하여 이러한 불합리를 타고났느냐! 넌 어째서 존재론적으로 반쪽짜리 공간인 것이더냐!!’ 하지만 내가 주차장을 사랑하는 이유 또한 어쩌면 같은 이유일 것이다. 언제나, 여전히 비어 있는, 절반만 주차장인 주차장. 주차장은 언제나 주차장임과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부재를 품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주차장이라는 말은 주차장이면서도 동시에 주차장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차장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그 말은 언제나 주차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공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 두 번째 주차장을 사랑한다. 주차장 아닌 주차장. 부재의 주차장. 따라서 나는 주차장에서 공연을 할 때 이 주차장을 배신한 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이 주차장에 부합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혹시나 내가 주차장의 요구에 어긋날까 전전긍긍했다. 나는 주차장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차장에 대한 의무를 다하려고 했다.

고요한 주차장. 여전히 주차장인 채로 남아 있는 주차장. 변신 불가능한 주차장.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주차장. 나는 온몸으로 나의 무기력을 드러내며 주차장에서 공연을 한다. 처음 주차장에서 공연할 때가 생각난다. [위대한 강박증]이라는 공연이었다. 나는 그때 온몸으로 내가 사랑하는 주차장을 애무했다. 나는 사실 프로젝트 이름을 주차장 ‘변신’이 아닌 주차장 ‘애무’로 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죠스가 단호하게 반대했다. 나는 내가 변태처럼 느껴졌으나 어느 정도는 사실일 거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기분나빠하진 않았다. 하지만 죠스의 기세에 눌려 결국 이름은 바꾸지 못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내내 그 일이 마음에 걸렸다. 주차장을 애무하고 싶은 솔직한 나의 심정에 대해 비겁해 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는 주차장을 애무하지만 마냥 애무만 할 수는 없다. 나는 주차장을 사랑하지만 주차장에 종속될 수는 없다. 나는 주차장을 변신시켜야 한다. 나는 주차장과 밀땅(밀고 땅기기)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주차장은 매 번 나를 좌절과 무기력의 나락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조차 주차장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한 번은 해방촌 아이들을 관객삼아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아주 기본적인 무대적 약속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그 아이들 앞에서 나는 무참하게 무너졌고 공연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그 때 조차도 주차장은 말없이, 고요함 속에서 우리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흰색 비엠더블유와 스카프를 생각한다. 그리고 더욱 더 큰 목소리로 ‘애주차장가’를 부르는 것이다.

“(애국가 멜로디로)주차장주차장주차장주차장주차장~”

응답 1개

  1. 말하길

    애주차장가 정말 재밌어요. 주차장이 주차장이 주차장 주차장 주차장 주차장~ 주차장애무프로젝트라는 카피를 뽑지 않게 해준 죠스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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