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내가 즐길 수 없다면 공연이 아니다

- 죠스(수유너머R)

나는 기타 F코드를 겨우 망설이지 않고 잡게 되었을 때, 바로 공연을 시작했다. 내 공연의 특기는 수많은 버퍼링과 삑사리. ‘나는 가수다’, ‘전설을 노래하다’와 같이 기교와 감동이 난무하는 요즘 분위기에서 겁 없이 공연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나는 한다. 어디에서 얼마 받고 누구 앞에서 하느냐고? 주차장에서, 무료로, 지인들과 노래를 신청한 사람들 그리고 주차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앞에서 한다. 왜 하냐고? 노래하고 싶으니까. 즐기고 싶으니까. 절절한 가수들의 노래를 가만히 앉아서 듣고, 술 마시고 노래방 가서 풀기에는, 내 안에도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화나는 정서가 넘쳐흐르는 걸. 표현하지 않고서는 못 베기는!

공연의 이름은 ‘죠스와 친구들의 유한도전’이다. 주차장 변신 프로젝트의 한 프로그램으로, 2달에 한 번 신청곡을 받아 피나는 연습을 거쳐 주차장에서 들려주는 공연이다. 물론 나 혼자만 망가질 수는 없어서 친구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공연을 보러 오는 분들의 실망감을 줄이기 위해서 공연의 제목은 저렴하게 ‘유한도전’으로 지었다. 한계가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고 그 한계 뒤에 숨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한계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노출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은 제목이다. 쉽게 다시 말해 ‘망가지겠다’는. 하지만 실제로 2번의 공연을 거치면서,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보다 망가지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꾸미려고 하는 순간, 즐기려고 시작한 공연이 타인의 시선에 나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인정 욕망에 매달리는 구질구질한 쑈가 되어 버린다.

나는 공연이 어쩌다 한 번 그럴듯하게 치러지는 쑈가 되는 게 싫다. 우리는 일상에서 충분히 쑈를 하면서 살아가지 않나. 적당히 예의를 갖추고, 최대한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남들에게 욕먹지 않을 정도의 가면을 쓰고서. 물론 그것들을 다 걷어낼 수도 없고, 때론 걷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연이 참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그 일상으로 돌아갈 힘과 위로 그리고 대리만족을 주는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서글프다. (사실 그것이라도 준다면 훌륭한 공연이겠으나 ^^;) 공연이 일상에 대한 논쟁, 투쟁, 반란, 거창하게 혁명일 수는 없을까. 다시 일상에 돌아갈 힘을 얻는 순간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맞다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왔던 자신과 일상을 망가뜨려 다른 가능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을 뚫는 순간.

‘유한도전’ 공연을 시작하면서 “제 공연을 보시고 나면, 아~ 무대에는 아무나 서는 거구나 하고 느끼실 거에요. 무대에 설 자신감을 가지게 되실 거에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 우스갯소리인 줄 알고 웃었지만, 공연 끝나자 실제로 사람들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 담겨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다음 공연 노래를 신청했고, 몇몇 사람들은 다음에는 무대에 서보겠노라고 말했으며, 나는 결정적 순간에 여전히 한계 뒤에 숨고 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도 나는 다음 ‘유한도전’ 공연에 사람들이 뛰어나와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어디에도 숨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즐기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공연의 아이디어와 멤버들이 생겨나고, 그것이 다시 우리 삶을 채우는 모습을. 그래서 나는 어설프고 손발이 오그라들더라도 공연을 준비한다. 내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응답 2개

  1. 쾌지나 칭칭 나네말하길

    ㅋ자신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많아요~

    공연., 전달성에 대한 종류로 판단하기엔 너무 단어가 크죠!

    방어적인 소개에 환기 댓글 달아봅니다.

  2. 소우주말하길

    ㅋㅋㅋㅋㅋ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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