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관객에게 ‘객’이 된 배우들,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 이산

극단 목요일오후한시는 관객의 짧은 이야기를 듣고 즉흥으로 연극을 만들어 답하는 공연집단이다. 배우들은 관객에게 이야기의 주제를 건넨다. 관객이 이야기를 배우들에게 선사하면, 배우들은 몇 번의 질문, 몇 번의 추임새, 또는 끄덕거리는 고개와 함께 관객의 이야기를 듣는다. 배우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마주치고, ‘그럼,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무대 앞쪽에 흩어져 앉는다. 너댓 명의 배우 숫자 만큼의 큐빅과 악기 몇 개, 천 몇 장이 빈 무대에서 장면의 시작을 기다린다. 관객의 이야기는 10분 남짓 되는 한 편의 연극으로 무대를 채우기 시작한다.

극단 목요일오후한시는 때때로 극장 밖에서 만날 수 있는 관객을 찾아 나선다. 2010년 한 해 동안 목요일오후한시는 축제가 이루어지는 거리, 사람들이 바삐 지나가는 시장 한 복판, 누군가의 방 안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관객을 만났다.

2010년 어느 가을날, 마로니에 공원 옆 아르코 대극장 앞이 부산스럽다. 대여섯명의 여자들이 돌로 된 벤치에 박스를 쌓아 벽을 만들고 있다. 대학로소극장축제의 거리공연들이 열리는 마로니에 공원에는 축제 부스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찼다. 공원 저 편의 무대에서 음악소리가 들리고, 아이들 몇이 좁은 놀이터에서 지나가는 행인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뛰어다닌다. 배우들이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모은 박스들은 공연이 시작될 무렵 어른 키높이 만큼의 벽이 되었다. 바나나 박스에 뚫린 구멍들이 벤치 바깥쪽에서 안을 빤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관객의 이야기가 잘 안 들릴까 싶어 박스를 쌓았지만 축제가 벌어지는 공원의 소리들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관객들은 박스 너머로 들려오는 소음을 이겨내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럼,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르코 대극장의 붉은 벽돌과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배우들이 움직인다.

2010년, 더위가 조금씩 차오르는 늦봄에 인천 현대시장이 소란스러워졌다. 물건 가격을 외치는 소리도, 흥정하는 소리도 좀처럼 들리지 않던 조용한 시장 골목이 들썩인다. 낮에도 노란 전구 없이는 어두침침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몇 뼘 사이로 빽빽하게 들어찬 상점들 사이에 노랫소리가 스며든다. 분홍색, 하늘색 티셔츠에 빨래판, 큰 생수통, 냄비, 바가지를 든 배우들이 손에 든 물건들을 두드리며 뱃노래를 부른다. ‘어떻게 장사 시작하시게 되셨어요?’ 배우들은 관객의 가게에 찾아 온 손님이 된다. 어쩌면 많지 않은 손님을 기다리는 한낮의 시장에는 반갑지 않은 손님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게의 어르신들은 몇 번 찾아와 기웃거리던 배우들을 외면하지 않고 앉아계시던 의자를 관객석으로 변신시켜주신다. 노점 앞에 쪼르르 주저앉아 이야기를 듣던 배우들이 빨간 매트 한 장으로 무대를 꾸린다. 물건을 사는 손님이 오면 공연을 하다가도 얼른 멈춘다. 동태 써는 칼이 도마 위에 딱 부딪힐 때마다 박자에 맞추어 노래를 흥얼거린다.

2010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미아리에서 시각장애인 역술인 관객을 만났다. 마당의 댓돌에 신발을 두고,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배우 넷이 겨우 앉을만한 방은 사각사각, 장판에 양말 스치는 소리도 크게 느껴질 만큼 조용하다. 관객의 귀가 중요한 만큼 배우들도 귀를 쫑긋 세운다. 소리에 맞춰 작은 방 안에서도 들썩들썩 움직이고 걷기도 한다. 관객의 집에서 집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연극을 하다 보니, 방 안의 장롱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극장에서는 배우들이 무대에서 관객을 맞는다. 관‘객’은 극장으로 초대를 받고 공연을 본다. 무대와 객석은 미리 준비되어있고, 관객은 공연이 끝난 후 금새 사라질 만큼의 흔적만을 남기고 자리를 떠난다. 극장 밖으로 나가면 배우들이 손님이 된다. 작은 공간으로 찾아들 때는 천이며 악기 같은 소품들도 훌쩍 던져버리고 맨 몸으로 관객을 만난다. 무대도 객석도 미리 준비되어있지 않다. 배우들은 어느 곳에서는 큰 천막을, 어느 곳에서는 달랑 매트 한 장을 펼친다. 준비되지 않은 공간에서 듣는 이야기는 왠지 더 진한 느낌이다. 특히 누군가의 공간으로 찾아들어 그 공간에 머무르던 관객을 만나게 되면, 공간에서 배어나는 향이 이야기를 점점 더 짙은 색으로 바꿔준다.

배우들은 극장 밖의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활기를 타고 거리낌 없이 놀기도 하고, 관객이 주인인 공간에 푹 파묻혀 놀기도 한다. 공연이 끝나면, 잠시 무대와 객석이 되어준 공간에서 마치 선물상자처럼 이야기와 장면을 함께 안아들고 나온다. 관객의 이야기에 답한 우리의 연극이 그 공간에서 조금 더 머물러줄 거라는 기대를 갖기도 한다. 그 어떤 만찬보다 이야기와 연극이 오가는 공간에 초대받는다는 것이 즐겁다.

응답 2개

  1. 도도말하길

    관객이 들려주는 이야기, 꿈이 한편의 극으로 펼쳐질때
    참 기분좋은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또 공연이 있음 보러가고 싶네요~~

  2. 말하길

    관객을 작가로, 배우를 청자로 역전시키는 목요일 오후 두시팀의 즉흥극, 정말 흥미로워요. 화자의 삶과 일상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이 특히 빛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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