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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 포토 에세이 <크고 둥근 밥상, 두리반>

- 안티고네

6월 8일, 두리반 싸움이 끝났다. 아니 정확히 말해 홍대 인근에 새로 칼국수 집을 열 때까지는 완전히 끝난 싸움은 아니지만. 홍대 인근 작은 칼국수 집 두리반은 2009년 12월 24일, 갑자기 들이닥친 용역들에게 가게를 빼앗겼다. GS건설의 막가파식 재개발 계획에 두리반이 설 자리는 없었다. 세입자인 두리반이 받은 보상은 고작 이사비 300만원. 이대로 물러나면 사무치는 억울함에 도저히 그냥 살 수 없을거 같았기에, 바로 다음날부터 안종녀 사장님과 소설가 유채림 부부의 531일 간의 농성이 시작되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작은 우물 두리반, 이제 곧 철거될 그 공간을 카메라를 들고 기웃거렸다. 531일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보여주는 두 장의 그림이 눈에 띤다. 1층에 걸린 그림은 그 동안의 햇빛과 바람, 담배연기에 노랗게 물들었다. 반면 상근자들의 공간인 2층에 걸려있던 그림은 아직도 깨끗하다.

구석구석 사람 사는 냄새가 베여있는 두리반 여러 공간 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곳은 2층 화장실이다. 낮에는 창문으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고, 밤에는 가로등 불빛이 들어오는 2층 화장실. 처음에는 문 닫는 요령이 없어 문고리를 붙잡고 난처해 했지만, 어느샌가 요령이 생겨 익숙하게 잠글 수 있게 된 화장실 바깥 문. 두리반의 한 친구는 내게 문을 끝까지 꽉 끌어당긴 후에 여닫으면 쉽다고 가르쳐 주었었다. 사람 손을 탄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맨 처음 왔을 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문틀 위의 샴프며 면도기, 세면대의 칫솔들이 옹기종기 정답다. 이 곳에서 사람들이 살고 생활하고 있었음을, 저 몇몇 물건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두리반 계단은 두리반 투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말해준다. 사람이 살고 있는 동안에는 전기를 끊을 수 없는게 한전의 규정이라지만, 용역업체는 가차없이 두리반의 전기를 끊어먹었다. 두리반 계단에 녹아내린 촛농들, 여기저기 매달린 주차장용 랜턴들, 그리고 길게 길게 전기선을 뽑아서 연결한 초록색 형광등들. 주렁주렁 실타래처럼 널려있는 전기선들은 어찌보면 을씨년스럽고 구질구질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끊질긴 투쟁의 자랑스런 얼굴이기도 하다. 삶의 기술들은 이렇게 발전하는구나, 새삼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꽃샘추위라는 예쁜 말이 무색하도록 추웠던 올해 초, 나는 곧잘 두리반에 가는 김강에게 핫팩을 쥐어주곤 했다. 겨울이면 징하게 춥고 여름이면 모든게 썪어가는 비참한 단전의 공간. 하지만 신기하게도 두리반에 갈 때마다 그 곳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술과 웃음, 노래가 있었다. 두리반 상황을 널리 알리고자 요일별로 라디오 방송이 진행했고, 문인들은 낭독회를 열었으며, 주말이면 홍대의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찾아와 공연을 펼쳤다. 너나 할 거 없이 푼푼이 돈을 모아 맥주와 주전부리를 사 왔고, 그렇게 술판이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서로 친구가 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안에서 커플도 제법 많이 생긴 눈치다. 그러나 두리반에서 그 동안 음주가무만 즐긴 건 아니다. 두리반에 함께했던 친구들은 입을 모아, 두리반에서 자신이 많이 성장했다고 말한다. 공부하는 이는 두리반에서 싸움의 현장을 보며 공부거리와 글쓰기의 영감을 얻었다. 뮤지션들은 호의적인 관객들과 함께하는 라이브 공연을 통해 착실히 실력을 쌓아갔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고, 음반을 낸 경우도 많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더 자주 열리는 두리반 반상회를 통해 청소년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법을 터득했고,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몸으로 익혔다. 두리반에 함께하는 친구들은 흔히 스스로를 ‘잉여’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삶의 기술을 익힌 한 무리의 잉여떼이다. 말 그대로 무기를 손에 쥐고 탈주하는 이들이다. 이처럼 투쟁기간 내내 두리반은’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상’이란 자기 이름값을 톡톡히 해 내었다.

두리반 싸움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공간을 지켰던 사람들은 포이동으로, 팔당과 강정마을 그리고 명동 재개발 구역으로 향하고 있다. 531일간의 투쟁 기간 내내 아침 일찍 두리반을 쓸고 닦으셨다는 유채림 선생님은 용역들이 침탈한 명동 재개발구역의 농성장 까페 마리에서 또 묵묵히 청소를 하시고 계신단다. 건물주들이 건설자본에게 받은 보상금에 비해 너무도 작은 돈이지만, ‘인근에 비슷한 조건의 가게를 낸다’는 수평이동의 성과를 이끌어 낸 두리반의 승리는 분명 빛나는 승리이다. 이 유쾌하면서도 끈질긴 투쟁 끝에 얻은 승리의 기억은 다른 싸움에서도 소중한 씨앗이 되어 줄 것이다.

응답 1개

  1. 말하길

    역사에 남을 삶의 현장에 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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