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명동 ‘마리’ 보기싫은 노란꽃을 믿으세요

- 은유

오랜만에 명동에 들렀습니다. 명동성당 언덕 지나 옛날 중앙극장 바로 옆에 카페 ‘마리’란 곳이 있습니다. 여기부터 향린교회 일대 주변지역 상점 11곳이 명동성당 재개발과 금융특화지구 설립을 위한 철거에 맞서 24시간 농성중입니다. 사금융센터를 만들려는 거대 금융 건설 자본의 횡포에 소상인들 삶의 터전을 고스란히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싸우고 있습니다. 용산- 홍대두리반- 명동으로. 철거투쟁의 지도가 눈물처럼 번져갑니다.

지난 일요일 오후 3시경에는 급작스레 용역이 들이닥쳐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담요로 덮고는 입구의 유리문을 다 깨부수었다고 합니다. 아비규환의 사태. 트윗에 이 소식이 알려지고 시민들과 홍대 두리반을 지키던 인디밴드, 날날이 외부세력, 활동가들이 모여서는 밤 늦도록 ‘기타치고 춤추고’ 신나게 놀았다네요. 큰길까지 나와서 춤추고 두드리고 노래하고 토론하고요. 참가자의 증언에 따르면 ‘명동스탁’으로 변해버린 난장공연판. 아주 재밌었다고 자랑합니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용역. 그들이 휘두른 곤봉으로 자잘한 유리파편이 바닥에 자박자박 깔려있더군요. 흉가입니다. 폐가입니다. 내부를 정리하고 다시 출입문을 만들기 위해 일손이 바삐 움직입니다. 밤샌 친구들은 건너편에서 곤히 잠을 잡니다. 노회찬 씨도 간밤에 와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고 푹 자고 아침에 갔답니다. 이런 아수라장에서 잠을 자도 어색하지 않은 정치인. 이장님 캐릭터. 든든합니다.

제가 갔을 때 이주노조 위원장 ‘미셀’씨도 와 있었어요. 머리를 짧게 깎은 그는 예의 그 환한 웃음으로 인사하더군요. 이주노동자 영화제 티셔츠를 입었는데, 등 뒤에 새겨진 문구가 눈길을 붙들어맵니다. ‘그림자에서 인간으로’. 불법체류자 신분인 탓에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그들. 인간으로 거듭나겠다는 존재 선언이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소위 불법인간들. 그 낙인들. 그 잔인한 범주가 점차 이주민에서 자국민으로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살인 등록금에 저항하고 강제 철거에 항거하고, 불법 해고에 맞서는 ‘불법 인간’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겠죠. 불가피해보입니다. 힘 없는 이들은 법대로 살기 전에 ‘사는 법’을 궁리해야 하니까요.

하루아침에 누가 와서 쥐꼬리 만한 보상금 던져주고 가게 문 닫으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6월 18일자 한겨레 기사에 나온 사연이 구구절절입니다. 9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남편의 보상금과 퇴직금으로 분식집을 차린 김점희(42)씨는 “시행사에서 받은 보상금이라고는 10달치 월세인 1000만원뿐”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가게 문을 열 때 권리금에다 인테리어 비용까지 1억6000만원을 투자했지만 이제 김씨에게 남은 것은 월세 보증금 2000만원을 포함해 2600만원이 전부입니다. 강제 명도비용 400만원도 김씨가 부담해야 합니다. 인근 가게들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모퉁이 식당은 370만원, 23년 동안 명동을 지켰던 낙원화랑이 받은 보상금도 700만원이랍니다.

두리반도 그랬듯이, 명동 마리카페는 그간 보았던 철거투쟁 현장과는 달랐습니다. 검은 낯빛의 중년 남성들이 빨간 투쟁조끼를 입고 모여 있고 그 옆 봉고차에 달린 메가폰에서는 쇳소리 나는 투쟁가 ‘철의 노동자’와 ‘님을 위한 행진곡’이 무한반복으로 울려퍼지는 현장, 그 한없는 쓸쓸함이, 여기는 없습니다. 생기가 넘칩니다. 현장을 사수하는 시민들이 대부분 10~20대입니다. 깃발 아래 모일 수 없는 그들은 ‘트윗질’하다가 흘러온 애매모호한 개인들입니다. 친해서 같이 오는 게 아니라 여기 와서 친해지는 모양입니다. 또 하나같이 재간둥이입니다. 아직은 카페가 휑하고 어수선하지만, 또 누군가가 멋진 벽화를 그려넣고 수시로 음악회를 열겠지요. 그럴 기세입니다. 죽창과 곤봉을 물리치는 ‘노래방패’의 위력을 아니까요.

두리반 싸움에서는 용역이 딱 한번 들이닥친 이후에는 500일 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얼씬거리지 못했답니다. 연대의 힘이겠죠. 문화의 힘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철거촌이 칠성급 호텔이자 해방구입니다. 정말 잘 자고 재밌게 놉니다. 명동 카페 마리에도 매일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시민들이 교대로 불침번을 서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 못말린다는 공자님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세입자분들도 힘이 난다고 좋아하십니다. 영화 <만추>의 한줄 교훈, 누군가 ‘옆에 있어주는 것’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열기와 온기 가득한 ‘체험 삶의 현장’입니다.

피서철 바닷가의 한 장면 같지요. 젊은 연인이 누워서 트윗질을 하네요. 노란 우산 쓰고 초록색 프릴달린 블라우스 입고 분홍색 티셔츠 입고 삼삼오오 모여서 기타 치고 멜로디온 불고 노는 모습 좀 보세요. 철거현장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는 생명체들. 보도블럭 틈새에 피어난 민들레 같기도 하지요. 잔잔하고 뭉근하고 한들한들 흥겹습니다. 저 활기찬 비애는 무엇이더냐. 문득 김수영의 <꽃잎2>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마지막 연이 이렇습니다.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 싫은 노란 꽃을’

아니, 왜 하필 보기 싫은 꽃을 믿으라는 걸까요. 여기 와 보니 어렴풋이 알겠습니다. 꽃잎이 다 붙어있는 온전한 꽃에 감탄하기는 쉽지만 꽃잎 다 떨어진 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긴 어려울 텐데요. 그래도 우리의 희망은 그 떨림, 삐뚤어짐, 그 넓어져가는 소란에 있다는 것을 카페 마리는 뜯겨진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김수영에게 배웁니다. 시인의 눈으로 보면 절망이 꽃입니다. 금이간 꽃이 희망입니다. 80년대에 노란 체류가스 자욱하던 그 땅, 명동 일대에 ‘보기 싫은 노란 꽃’ 무리지어 피었습니다. 그 억샌 희망이 꽃대궐을 이룹니다. 손에 손 잡고 놀러 오세요. 노오란 꽃구경 오세요.

응답 6개

  1. yun.말하길

    뻥 걷어차버리고싶군
    이런걸보고 어이없다고 하나?
    개념 밥말아쳐먹은 구더기새끼들이 득실득실 하구나
    니새끼들은 연애하러 거기갔냐? 아주 토악질이 나는구나
    여관이나 모텔가서 놀아라 개샹늠으쉐끼들아

  2. f-dream말하길

    우와.. 나도 가봐야겠습니다.
    그곳에서 친구들 모아서 생일 잔치를 해볼까요??? 음

  3. 낙타말하길

    방학에 한국가면 놀러갈 곳이 무지 많아, 두근두근~^^ 명동에 옷 사러 가는 일본 관광객에게도 선전할게요! ^^

  4. 안티고네말하길

    그러나…돌아가면서 맥주를 사오는 센스!를 발휘하면 더 이쁨받습니다ㅋㅋㅋ

  5. 매이엄마말하길

    명동한폭판에 상설 MT 장입니다. 전철역 가깝죠. 가면 매일 기타치고 막춤추며 놀수 있습니다. 연인들끼리 오붓하게 같은 이불로 배덮고 누워서 소곤소곤 수다 떨며, 아이폰으로 동영상 보며 놀 수 있습니다. 찜질방에서 하던 염장질,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다는 말씀! 그러구 놀다가 좀더 분위기 있는 곳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고 싶으면 포탈라로 가서 이국적인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음식 나오면 폰카로 찍어서 미니홈피에 올리는 ‘된장짓’을 해도, ‘개념녀’도 추앙받습니다. 68혁명이 별거더냐, 돈없는 젊은 연인들 모여라. 강추.

  6. 말하길

    연인들이 정말 많이 찾더군요. 이보다 더 좋은 데이트 공간이 없어요. 돈 안 들죠. 밥주죠, 간식주죠. 술주죠, 음료수도 공짜. 재미난 볼거리 있죠. 용역들 오면 몸풀고 싸우죠, 신나죠. 의미 있죠. 연인들의 천국! 마리로!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