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어느 찌질한 놈의 군대 이야기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울며불며 매달리던 첫사랑을 뒤로 하고 수배중인 친구로부터 독재의 개 노릇 잘하라는 악담을 들으며 정말 개처럼 끌려간 군대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사납고 거친 한 무리의 ‘군바리’들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항상 핏발이 서 있는 것 같았고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들짐승같이 느껴졌다. (그 곳은 그리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였다.) 백 명이 훨씬 넘는 한 중대에 대학물은 먹은 이는 나까지 다섯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없는 놈, 못 배운 놈들이 세상의 제일 거친 자리를 차지하는 법. 그 거친 자리에서 나의 중산층 배경은 삶에 방해만 되는 요소였다. 나의 왜소한 몸은 그곳의 험악한 삶을 견디기에는 너무 허약했고 그들은 나 같은 중산층에 대해 깊은 불신과 증오를 품고 있었다. 거친 훈련과 그들의 편견을 이중으로 견뎌야 하는 나의 불행에 난 마음속으로 울었다. 그들을 연민하고 동정할지언정 죽어도 그런 자리에 서고 싶진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행해지는 살벌한 비공식적 폭력은 엄청난 공포와 함께 ‘아, 사람이 저렇게 맞고도 병신이 되지 않는구나!’하는 인간의 강인함에 대한 찬탄(?)으로 이어지곤 했다. 몸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는 끝없는 훈련에서 처지지 않으려면 눈에 핏발이 서도록 ‘악’으로 버텨야 했다. 매주 완전군장 10km 구보를 하는 전날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낙오는 곧 초죽음을 의미했으니까. 실제로 나의 군 생활 중 세 명의 신병이 자살했는데 하나는 낙오의 쓰디쓴 맛을 본 이등병으로 완전군장 구보 전날 밤 부대 앞 나무에 목을 맸다. (연대장이 죽을상을 하고 있는 중대장에게 “나약한 놈들이 훈련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것은 네 책임이 아니니 크게 신경 쓸 것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도 우리는 헐떡이며 완전군장 구보를 했다.)

나는 동료들을 마음속 깊이 혐오했다. 그러나 그 혐오는 서서히 그들에 대한 이해와 동화로 대치되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어 보이던 그들을 다시 보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당시는 주말에 정훈교육이랍시고 같은 싸구려 미국 전쟁 드라마를 보여 주곤 했는데 하루는 어쩐 일인지 한국영화를 상영했다. 윤흥길의 <장마>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로 원작을 읽었던 나는 가족 내 좌우 분열이라는 무겁고 미묘한 주제는 고사하고 장마비 추적추적 내리는 음습한 구렁이 영화를 왜 군바리들에게 보여 주는지 의아했다. ‘무식한’ 그들이 그런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턱이 없다는 판단과 함께.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참 오랜만에 괜찮은 영화 본다. 이런 영화 또 틀어주면 좋겠다.” 이런 얘기들이 두런두런 들리는 것이 아닌가.

짐승에 가까워 보였던 그들 가운데 실은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과 지적 호기심 그리고 상당한 매력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 것이다. 그들은 사납고 거칠되 순박했으며 일단 마음을 열자 내가 가진 알량한 문화자본을 부러워했고 또 기꺼이 배우려 했다. 나는 서서히 오만을 내려놓고 그들의 일부가 되어갔다. 살면서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는 하나는 제일 야비하고 제일 닫힌 인간들은 많이 배운 놈들 그리고 많이 가진 놈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내가 아는 유일한 그 반대의 준거집단인 군바리 동료들의 순박함을 떠올린다.

훈련 중 몇 번 까무러치고 절벽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치고 고막이 터져 귀에서 피가 나는 부상을 겪었고, 내 바로 앞의 ‘도하 시범조’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익사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소위 ‘고참’이 되어선 힘들어 나자빠지는 ‘쫄병’들을 공갈협박으로 다그치긴 했어도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다행히도 나쁜 업이 될 만한 큰 죄는 짓지 않았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렇게 근근이 3년을 버티어 무사히(?) 제대한 직후의 쓸쓸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돌아온 집은 왠지 낯설었고 아픈 허리는 근 반년을 이어가며 매일 밤잠을 방해했고 망가진 오른발의 무릎과 발목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고참들이 그랬었다. “군 생활에서 남는 것은 사진과 관절염뿐이다”라고. (제기랄, 난 사진은 없으니 관절염만 남았네!)

더 충격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글씨를 쓴다는 단순한 행위가 손과 팔의 근육의 정교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태어나 처음으로 깨달게 된 것이다. 나의 몸은 3년간의 지독한 훈련질로 인해 과거의 아비투스를 상실하고 새로운 군바리 아비투스를 내면화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명색이 공대생이었던 내가 공대생에겐 더하기 빼기에 해당하는 미적분의 기본 공식조차도 기억할 수 없었을 때의 황당함이라니. (절벽에서 떨어지며 받은 머리의 충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개구리복 입고 제대한 또 한명의 예비군, 또 한 명의 복학생일 뿐이었다. 죽이 되었건 밥이 되었건 내 소중한 청춘의 한 부분, 정말 힘들게 이를 악물며 버텨온 3년간의 시간이 어떠했는지 그 시간이 나에게 무엇인지에 대해 누구도 묻지도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그 3년이 나를, 내 몸과 마음을 어떻게 바꿔버렸는지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난 그저 남들처럼 군대 갔다 온 것뿐이니까. 손발 안 잘리고 남들처럼 무사히(?) 제대했으니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이제 너의 청춘은 끝났으니 정신 차리고 살라”는 싸가지 없는 말은 참 많이 들었다. 그들은 누구에게서 내 삶의 청춘이 끝났는지 말았는지를 결정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조언할 권한을 위임받았나?

어쨌든 나야 의지할 수 있는 부모와 가족, 돌아갈 학교 그리고 중산층의 생활배경이 남아 있었지만 이도저도 없는 이들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제대 후엔 또래와 군대 얘기를 잘 할 수도 없었다. 군대 얘기란 것이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 주변에 도무지 제대로 군대 갔다 온 놈들이 없었다. ‘능력 있는 놈’(?)들은 죄다 학사장교니 뭐니 해서 옆길로 샜고 ‘정신 제대로 든 놈’들은 죄다 ‘깜방살이’로 복무를 대신했다. 그러니 나는 자동으로 능력도 없고 정신도 덜 든 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겪은 훈련의 강도를 상상할 수 없었던 이들은 어쩌다 군생활의 일단을 털어 놓을 치면 “너, 뻥치는 거지?”하고 정색을 했다. 하긴 현역으로 복무한 놈들조차 못 믿었으니. (”아, 정말로 곰발바닥이 돼서 발바닥에 담뱃불도 비벼 끄고 대검으로 죽죽 긋고 그랬다니까!“) 하긴 저격수 훈련까지 받아 M16을 총신이 타버릴 정도로 이 만 발이 넘도록 쏘았던 내가 과연 총 몇 발 못 쏴본 놈들과 같이 총 얘기 군대 얘기를 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런 얘기는 자신의 경험을 특권화하려는 시도로 보일 수도 있다. “너희가 ‘6.25’를 알아?” “니네가 ‘월남전’을 알아?” 이런 류의.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군대와 군 경험을 둘러싼 발언에는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운운하는 판에 박힌 국가주의 영웅주의 담론 아니면 ‘잃어버린 3년’ ‘상처받은 3년’을 어떻게든 합리화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동기에 지배되는 술 취한 무용담 외에는 없다. 정작 개인의 절절한 경험은 거기에 없는 것이다. 문학이든 영화든 ‘전쟁’(한국전과 월남전)과 ‘학살’(광주)의 주체로서의 군대를 넘어선 깊이 있는 군 경험의 형상화는 거의 없는 듯하다. (이문열의 <새하곡>과 윤종빈의 <용서받지 못한 자>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둘다 그 다지 인상적지도 않았고.) 문제는 경험의 특권화가 아니라 경험의 일상화/평준화와 비형상화로 인한 천박화가 아닐까? 군대는 모두가 가면서도 아무도 아무런 의미를 건져내지 못하는 집단적 死時間이 되어버린 듯하다.

대한민국 예비역들은 잘 안다. 자신들이 특별히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찌질이’들이란 것을. 그래서 더더욱 억울해서 자신들의 고생을 모진 경험을 알아달라고 인정해달고 애들처럼 징징대는 것이다. 술 취하면 횡설수설 군대 무용담 늘어놓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 따위의 헛된 구호에 매달리며 인터넷에 “페미년들” 운운하는 악풀이나 달면서 더 찌질한 놈들이 되어가는 것이다. 요즘 곳곳에서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실천하고 계시는 ‘가스통 할배’들도 일부는 여기에 해당되는 않을까? 현란하게 치장된 그들의 군복에서, 그리고 그들의 과장되고 허망한 남성성의 발현에서 그저 쓸쓸함만이 읽히는 이유다. 내 사촌형 하나는 군에서 휴가 나오면 공짜 술 실컷 마셨다. 대한민국 포장마차를 주름잡고 계신 ‘개병대’ 선배들 덕분에.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저당 잡힌 대가로 얻은 한줌의 자부심으로 팍팍한 삶들을 살아가는 것이다. 김흥국이나 현빈과는 다르게.

짜증나는 군대 얘기를 하게 된 것은 최근 한국의 미군기지에 다량의 에이전트 오렌지를 파묻었고 한국군을 시켜 휴전선 근처에 그걸 뿌리게 했다는 전직 미군들의 이어지는 증언 때문이다. 자신들도 독성물질에 노출되어 후유증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고 있는 그들이 아직도 국가를 위해 충성했노라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노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물론 이런 식의 피해자 담론은 위험하다. 미국과 한국의 군바리들이 고엽제에 고통 받았다고 해서 십 년 동안 수 천회에 걸쳐 네이팜탄과 함께 고엽제를 전국에 쏟아 부었던 월남의 피해자들에 비하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제국의 군인으로 또 용병으로 행해온 숱한 패악질과 그것에 고통 받고 희생된 이들을 어찌 쉽게 잊겠는가.

폭력 공동체인 ‘근대국가’의 저열한 팽창 욕구에 몸 바친 가해자들을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조차도 악마도 영웅도 아닌 고통 받는 찌질이들이 되고 만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정작 약자였던 그래서 피해자, 희생자였던 월남의 군인들과 인민이야말로 찌질이가 아닌 영웅으로 빛나 보이는 역설을 얘기하고 싶었다.

소중한 지면에 찌질하게 철지난 군대 신파나 늘어놓고 있는 나도 참 찌질한 놈이다. 옛 군바리 동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대부분 신산한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도 팍팍할망정 나처럼 찌질하게는 살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사 찌질하더라고 ‘가스통 할배’들처럼은 안 살았으면 좋겠다.

응답 4개

  1. Beilang말하길

    ‘심심풀이’님. 저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육군 보병 예비사단 가운데 하나에서 복무했습니다. 부대의 살벌한 분위기는 오래전 얘기이기도 하고 좀 특별한 사정이 있긴 합니다. 네, ‘화약 냄새’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땀에 쩐 전투복이 마르고 다시 젖고를 되풀이할 때 나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한진 중공업의 어느 노동자가 얘기한 작업복에서 나는 ‘쉰내’가 바로 그 냄새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한’님. 저자의 창작권 침해보다는 독자의 읽지 않을 자유를 행사하시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일인 것 같군요. 제 글의 ‘찌질함’에서 “피해자, 약자가 영웅이 되는 역설”을 ‘역설적으로’ 못 느끼셨다면 글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에는 제 글과는 비교될 수 없는 좋은 글들이 넘칩니다. 그런 글들에 읽을 권리를 열심히 행사하시면 되겠습니다.
    ‘작은 도시’님. 제게는 치열한 경험이었지만 결국 ‘찌질한’ 얘기가 되고 마는 것이 군대 얘긴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동족상잔과 대리전쟁 그리고 민간인 학살 밖에 해온 것이 없는 대한민국 군인의 후예의 얘기가 영웅담이 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집단적 경험의 시간을 반성적으로 고찰하지 못할 때 군대는 ‘엄한 사람 잡는 것’ 외에는 하는 것이 없는 집단으로 남게 되고 그 피해는 사회 전체로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몇 마디 덧붙이자면 제 군대 경험이 아무리 고통스러웠다 해도 지금 높은 곳에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계신 분의 “쥐똥 섞인 도시락을 공업용수에 말아먹으며” 산 경험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시간의 제약이 있는 군복무와는 달리 이 험한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자신과 식솔의 생계를 위해 험하고 고된 일을 하루하루 끝없이 견뎌야만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아마도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제 군 동료들의 상당수가 그렇게 살고 있을 터인데—의 삶을 생각하면서 쓴 글입니다.
    신통치 못한 글 읽고 댓글 다는 수고까지 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 작은도시말하길

    전혀 찌질하지 않은데요.
    오히려 너무나 치열했을 그 시간들과 그 시간을 겪어내야 했던 글쓴이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아프네요. 언제 군대를 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분들이 그런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3. 말하길

    힘들여 얘기한 글쓴이껜 죄송하지만 본인이 찌질이인줄 아셨으면 이런 푸념은 이제 혼자만 하셨으면 합니다..
    정작 얘기하고 싶다던 피해자와 희생자들이 찌질이가 아닌 영웅이 되는 역설은 어디 있습니까..

  4. 심심풀이말하길

    글에서 화약 냄새가 나는 듯 합니다. 저는 아직 미필이라 그 냄새를 맡아본 적은 별로 없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디 부대로 가셨기에 그렇게 힘든 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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