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대형 건설사는 어떻게 재개발 이익을 독점하는가?

- 카즈

얼마 전 트위터에서는 한 가지 낭보와 비보가 불과 며칠 차이를 두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소식은 무려 531일간 강제철거에 맞서 싸우며 유지되었던 점거농성장 두리반이, 재개발 시행사인 남전디앤씨와 ‘홍대 인근에 다시 두리반을 차릴 수 있게 재개발 시행사가 법적 책임을 지고 지원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합의문에 조인식을 치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두리반이 승리했다는 놀라운 소식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명동에 위치한 카페 MARI에서 재개발 시행사의 강제철거에 맞선 점거농성이 시작되었으며, 점거 농성 이틀 만에 철거용역이 재투입되어 농성장을 강제철거 하고 있다는 급박한 소식이 전해졌다.

MARI의 점거 소식과 철거용역이 투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가장 먼저 시작했던 것은, 과연 명동 먹자골목 재개발 사업을 백주대낮에 철거용역을 투입하면서까지 강행하려는 주체를 찾는 일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재개발 사업에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시행사가 등장하여 상가세입자들에게 ‘영업 손실 및 시설투자비 보상금’이라는 명목으로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의 보상금을 제시하고, 만약 상가 세입자들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법원에 명도소송을 제기하면 얻을 수 있는 ‘강제집행권’을 이용하여 점포를 강제로 철거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문제는 재개발 시행사들이 감정가라면서 제시하는 보상금이 상가 세입자들이 가게를 차리기 위하여 들인 비용의 절반도 되지 않고, 더불어 대부분의 상가 세입자들이 가게를 열 때 지불했던 ‘권리금’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비용이기에 보상액 책정에는 반영조차 요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재개발 시행사들이 재개발 과정에서 상가 세입자들이 ‘인근에 새로운 가게를 열게 해달라는 것’이 무리한 주장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올바른 일인지에 대해서는 두리반이 위치했던 마포구 동교동 삼거리 지구단위사업계획과 명동 먹자골목 일대의 도시환경정비사업에 투자된 자본의 액수와 투자 주체들의 실체를 알고 나면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한 상황이다.

우선 두리반의 경우에는 동교동 삼거리 일대 재개발에 나섰던 시행사인 남전 디앤씨로부터 이사비용 300만원을 제시받았다. 하지만 누구나 회사 이름으로 검색하면 회계감사보고서를 조회할 수 있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http://dart.fss.or.kr)에서 조회해보면, 남전디앤씨는 동교동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던 2008년에 당시에 자기 자본금 30억원에 농협중앙회로부터 한도 900억원의 PF 자금을 GS건설의 지급 보증하에 확보한 상태였다. 이는 개발 시행사가 의지만 있다면, ‘홍대 인근에 다시 가게를 열게 해달라’는 상가 세입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받아들이고도 남는 자금력이었지만 ‘재개발 보상의 선례’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결국 두리반 점거농성은 500일을 넘기고서야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남전디앤씨는 농협 중앙회로부터 600억원의 단기 차입금을 추가로 대출받았고, 모회사인 웰컴씨티와 분사하면서 대표이사가 교체되는 등의 내부적인 홍역을 치렀다.

이럴때 경영학을 조금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반론이 떠오른다. “어떻게 재개발 시행사가 투자받은 금액을 투자목적과는 다른 용도인 상가 세입자 보상금으로 지불할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법적 근거는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도 동교동 재개발 시행사인 남전디앤씨가 실질적으로는 동교동 일대 재개발 시공사인 대우건설이 앞세운 사실상의 ‘유령회사’라는 점에서 반박의 여지가 충분하다. 일단 남전디앤씨의 모회사로 등록되어 있었던 웰컴씨티는 2006년에 설립되어 2009년에 종로구 청진1지구 재개발 사업을 시행사로 추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농협중앙회로부터 900억원 한도의 PF 자금을 GS건설이 지급보증하는 방식으로 대출받았고 120억원의 사업자금을 현금으로 GS건설로부터 직접 대출받았다는 사실이 서류로 입증된다. 이는 종로구 청진동 재개발 사업이 남전디앤씨가 추진한 동교동 재개발 사업과 위치만 다를 뿐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GS건설은 시공 이익은 물론 시행 이익까지도 모두 성공적으로 독점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IMF 이후에 재개발 사업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직접 시행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자신들이 직접 자본을 들여서 세운 시행사를 이용하여 개발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결국 자본의 흐름을 역추적해보면 남전디앤씨와 웰컴씨티는 사실상 GS건설이 자신들이 직접 기획한 재개발 사업에 활용하기 위해 직접 만든 건축 시행 부문의 계열사이다. 따라서 두리반을 비롯한 동교동 삼거리 일대에 위치하였던 상가 세입자들이 ‘인근에 다시 가게를 열수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였을 때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비롯한 건설 사업에서 연간 3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대기업인 GS건설이 자신들이 직접 세운 재개발 시행사를 앞세워 상가 세입자들을 길거리로 내몰 것이 아니라,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협상에 응했다면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상가 건물에서 무려 500일간 점거농성이 지속되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점거농성장인 MARI가 위치하고 있는 명동 환경정비사업구역의 상황은 어떠할까? 총 5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명동 환경정비사업구역에서 이미 재개발이 끝난 1구역과 단일 빌딩으로 구성된 5구역을 제외한 2,3,4구역은 수십개의 빌딩이 대로변과 골목 안에 밀집되어 있는 전형적인 상가 구역이다. 이때 가장 먼저 재개발 사업인가를 받고 사업이 추진된 3구역이 바로 점거농성장인 MARI가 위치한 곳인데, 문제는 3구역 이외에도 2구역과 4구역에 위치한 빌딩들도 거의 대부분을 재개발 시행사가 사들여 곧 재개발이 진행될 것이라는게 분명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2구역과 4구역을 사들인 재개발 시행사인 명례방(주)은 3구역 시행사인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 주식회사와 법인등기부 등본상의 주소지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두리반 재개발에서 처음 이름이 알려진 웰컴씨티와 남전디앤씨가 회사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사무실을 쓰는 같은 회사였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낯선 상황이 아니다.

더군다나 명동 3구역 재개발 시행사인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 주식회사의 2010년도 회계감사보고서를 조회하면 명동 도시환경정비사업에 투자된 자본금이 대우건설이 새마을금고 연합회에 지급보증을 선 2천억원과 명동 3구역 일대 부동산을 담보로 대우건설이 직접 대출해주기로 한 2천억원까지 총 4천억 규모이다. 대우건설이 지난해 재건축/재개발을 포함한 주택사업으로 2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지만 단일규모 재개발 사업에 이정도의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최근 부동산 재개발/재건축 시장이 부실 PF로 인한 저축은행 부실문제로 얼어붙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대우건설 본사에 확인한 결과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 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현직 대우건설 주택사업본부 주택사업기획팀 차장과 동명이라는 점에서도 사실상 명동 재개발이 대우건설이 직접 기획하여 추진하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라는 의혹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대우건설은 왜 동일한 재개발 사업구역에 2개의 재개발 시행사를 각기 다른 이름으로 세우고, 각 구역별로 재개발 시기를 다르게 한 것일까? 이는 현재 명동 2,3,4 구역에서 재개발이 진행될 경우 해결해야하는 상가 숫자가 30세대를 훌쩍 넘는다는 점과 재개발 구역인 2구역에 향린교회라는 종교단체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구단위사업계획 지역으로 묶여있어서 도정법상의 영업보상은 물론 시설투자비용 보상도 법적으로 받을 수 없던 동교동 재개발의 두리반과 달리 명동 2,3,4구역은 법률상으로 영업보상과 시설투자비용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대우건설은 30세대의 세입자들이 하나로 뭉쳐서 ‘인근에 가게를 열게 해달라’고 한목소리를 내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처음에는 3구역을 해결하고 이후에는 순차적으로 4구역과 2구역의 세입자들을 해결한 뒤에 전구역을 통합하여 재개발 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들은 시행사가 확보한 대지에 건물을 지을 뿐 세입자 문제와 자신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뒤로는 시행사에 사업자금을 직간접으로 융통하여 주고 사실상 시행이익까지 모두 가져가는 대형 건설사들의 표리부동한 행태는 IMF 이후 거의 모든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대동소이한 형태로 반복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행태가 두리반 농성 해결을 기점으로 시정될 수 있을까? 수천억원의 뭉칫돈이 오가는 동교동과 명동 재개발 현장에서 사람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두리반”을 이라고 외치지만 이 외침이 현실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는 개발이익 독점에 눈이 먼 대형 건설사들의 편법에 가까운 재개발 사업 추진 방식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비판과 국가 차원에서의 규제가 절실한 상황이다.

응답 4개

  1. 마스타쿠말하길

    오 이런 디테일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 unlimited말하길

    좋은 글을 여기서 보는 군요. 감사해요.

  3. 말하길

    시원한 분석 감사합니다. 더 많은 두리반을 위하여! 마리는 날마다 MT장,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에 백수분들을 초대합니다. 엄청 재미나고 의욕적인 공간이예요.

  4. 미루말하길

    잘 읽었습니다.
    대형건설사의 횡포에 분노가 치미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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