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소중한 날의 꿈>을 만든 안재훈 감독과, <오래된 인력거>를 만든 이성규 감독을 만나다.

- 황진미

<소중한 날의 꿈>이 23일 개봉하였다. 11년간 제작하여, 10만장의 그림이 쓰인 장편애니메이션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 방학한철을 휩쓸고,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TV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겨우 명맥을 잇는 판에, 그 집념이 놀랍다. <소중한 날의 꿈>은 2011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발 본선진출 작이다.

여기 또 하나의 작품이 있다. 한국인 감독이 인도의 인력거꾼을 촬영한 <오래된 인력거>는 지난해 ‘다큐멘터리의 칸영화제’라는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IDFA)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네덜란드 언론의 가장 큰 주목을 받았지만, 올 12월에나 국내개봉으로 접할 수 있다. 두 명의 ‘집념의 한국인’을 만났다. <소중한 날의 꿈>을 그린 안재훈 감독과, <오래된 인력거>를 찍은 이성규 감독. 장소는 <소중한 날의 꿈>을 만든 ‘연필로 명상하기’라는 애니메이션 공방.

: <소중한 날의 꿈> 시사회에서 받은 ‘연필로 명상하기’ 홍보자료가 지극정성이라 놀랐다. 감독님 인상도 진짜 ‘연필로 명상하는’ 수도자 같은 느낌이 난다.

: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들은 수작업에 익숙해서 정성이 남다르긴 하다. 지금껏 애니메이션은 산업으로만 인식되어 있다. 산업이 아닌 방식의 작품을 그린다고 하니, 다들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11년이나 걸린 것은, 중간에 제작비가 없으면 돈 되는 작품을 해가며, 돈을 벌어 다시 진행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시사회 땐 정성을 좀 들였다.

: <소중한 날의 꿈>은 1979년 즈음의 지방소도시가 배경이다. 특별히 그때를 그린 이유는? 혹시 감독이 63년생쯤 되나?

: 69년생이다. 79년쯤으로 잡은 것은 81년에 칼라TV가 나와서, 흑백TV 화면으로 집단적 기억이 형성된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방소도시의 풍경역시 80년대 들어 급격히 바뀌었다. 향수를 품을 수 있고, 기억 속 흑백의 영상을 칼라로 복원하는 애니메이션의 판타지 효과가 확실하게 살 수 있는 시기라서 그때를 그렸다.

: 정확히 말하면 79년도 아니다. 김일 레슬링은 75년 이고, 드라마<여로>는 73년이다. 장소도 군산, 춘천, 이화동 등 여기저기 짜깁기 이다. 그래서 더 꿈같다. 기억은 선형적이지 않고, 중첩되니까. 묘하게 무의식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 장소 짜깁기나 군중 장면에서 인물들의 얼굴이 다 각각인 것은 저기에 내 얼굴, 내가 살던 동네가 들어 있다는 느낌이 관객들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끌길 원했기 때문이다.

: <오래된 인력거>는 첫 장면에 뻑이 갔다. DSLR로 찍었다는데, 조명도 완전 세팅된 것 같고. 앵글이나 화면 깊이감도 그렇고. 편집도 극영화보다 더 플롯이 살아있다.

: DSLR에 놀라다니, 너무 늦은 반응이다. 화면 깊이감이나 조명효과 같은 것은 더 좋게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 2009년에 한국컨텐츠 진흥원 방송영상컨텐츠 제작지원작으로, 인도 캘커타에서 100일간 촬영한 작품인데, 영화 중간에 3년전, 10년전 화면이 삽입되어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 내가 99년에 인도에서, 1년 6개월간 카스트와 소작쟁의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전쟁>을 찍었다. 2009년에 촬영당시 젊은이가 그 지역출신이란 말을 듣고, 99년 촬영 화면을 찾아서 그의 얼굴임을 확인했다. 그 동네엔 사진이 없어서 자기 어린 시절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어머니와 형님이 확인해 주었다. 본인은 그제야 당시 촬영 팀이 가지고 갔던 과자의 맛이 기억난다 하더라.

: 캘커타의 인력거 꾼은 <시티오브조이>에서 다루어졌다. <오래된 인력거>가 차별점을 갖으려면, 대상을 보는 입장과 태도여야 할 것이다. <오래된 인력거>는 수미 쌍관식으로 “찍지 말라”는 주인공과 이를 달래는 감독의 모습이 들어있다.

: 그 부분이 영화제에서도 많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 아시아인들의 입장에서는 “찍지 말라”는데, 찍은 것을 비윤리적이라 하더라. 그런데 다투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오랫동안 친한 사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 <시티오브조이>는 서구의 관찰자와 인도의 인력거꾼 사이에 어떠한 불화도 없이 매끈하게 봉합된다. 마치 전지전능하고 중립적인 시각이 있다는 듯. 오히려 더 위험하고 오만하다고 생각된다. <오래된 인력거>는 앞뒤에 관찰자가 오직 대상과 불화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의미심장하다.

: <소중한 날의 꿈>은 영화의 주제와, 그림체가 일치하는 것이 장점이다. 특출한 재능을 갖지 못한 보통의 아이가, “1등만 기억하는” 경쟁의 천국에서, 어떻게 허무와 냉소에 빠지지 않고, 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지를 담담하게 말하는데, 수채화 톤의 그림체가 담담하고 서정적인 감성을 전달한다.

: 사진과 그림이 다르듯 애니메이션은 실사와는 다른 정감이 있다. 주제는 관객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우리끼리의 말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지만, 세계 최고가 될 수는 없는 우리들이 꿈을 가지고, 계속 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녹아있기에, 10년을 끌고 올 수 있었다. 주인공이 육상을 하는 것도, 1등이 아니면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대표적인 분야라서 넣었다. 그런데 뛰는 장면과 군중장면 표현이 너무 어려워서 아내(한혜진 공동감독)에게 엄청 욕먹었다.

: 스틸사진으로만 보면 그냥 말갛고,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도 생각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그런 생각이 안난다. 한국의 풍경과 구체적인 시대를 담아낸 소품의 디테일도 강하고, 인물의 움직임이나 별 의미 없이 툭 던져지는 대사 등 밀도가 상당히 높은 영화이다.

: 프랑스 기자가 보고 지브리 스튜디오의 일본 풍경과 확실히 다르다고 하더라. 나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우리의 풍경과 얼굴이 담긴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하고 자라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여기서 일을 배운 후배들 중에 픽사 등 세계유수의 스튜디오로 가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그들이 처음 그린 것이 한국의 정체성을 가진 풍경과 얼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성인은 더 이상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는다. 음악 장르도 완전히 나누어져 있다. 극장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며, 소중한 날에 품었던 각자의 꿈을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세대간 단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런데 조금 불만이 있다면, 학교장면이나 철거장면들이 너무 평화롭게 그려진 것 아닌가. 엄청난 훈육과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는데. 그리고 인공위성 발사 등은 ‘역사의 발전’을 확실히 믿는 것 같아서, 조금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하더라. 요즘 젊은이들이 보면, 저때가 나른한 천국 같아 보일 것 같다.

: 교문 앞 벌서는 장면 한 컷으로 지나가도, 각자의 기억 속에 훈육과 체벌은 다 생각나기 마련이다. 심각한 갈등은 다른 극영화에서 리얼하게 다루니까 애니메이션에서까지 다루고 싶지 않았다.

: <오래된 인력거>도 노스텔지어에 관한 영화이다. IMF이후, 상실된 가장의 이미지 같은 것 말이다.

: 아닌 것 같다. IMF이후 가장의 역할을 조명한 <아버지>같은 작품들과 <오래된 인력거>는 완전히 다르다. 한 개인을 다루지만, 계급성이 명확하다. 부자 승객과의 실강이나 아들이 공장에서 착취당하는 장면. 그리고 10년전 소작쟁의 장면에 뚜렷이 나와 있다.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보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아들이 “도망갈 것 같다”고 답한다. 자본주의적 계급과 카스트 계급이 중첩되어 드러난다.

: 속마음을 들킨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 정말 쎈 영화였다. 이번 영화는 그런 것을 좀 감추고, 개인에 집중해서 보여준 것인데.

: 가장 전형적인 인물에 집중해서 보여주는 것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본 아닌가.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생각나더라. 다큐멘터리 같은 극영화인데, 정치적인 대사 한마디도 안 나오지만, 진짜 정치적인 영화이다. 쿠르드 족이 누군지, 왜 그런 일을 하는지를 알면 끝난다. 켈커타의 인력거꾼도 그런 전형성이 있다. 12월 개봉작은 영화제 버전과 같나?

: 아니다. 편집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내레이션을 넣어야 한다는 요청이 많아서 고민 중이다.

: 그러지 않는 것이 좋겠는데….12월 개봉 때 보자.

===================== <워낭소리> 대박이후, 독립다큐멘터리 영화는 =======================

<워낭소리>를 300만이 보았으니,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형편도 나아졌을까?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도 돈이 된다는 생각에 극영화에 투자하던 회사들까지 억 단위로 돈을 투자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대상과 친해지는 시간이 중요하고, 편집도 오래 걸린다. 촬영부터 편집까지 11년이 걸린 <송환>같은 작품도 있다. 그러나 창투사 입장에서 수년은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투자금은 회수되었고, 여러 편이 ‘엎어졌다.’ <경계도시2>는 정말 좋은 작품이지만, 1만 명밖에 보지 못했다. 한국진보진영의 민낯이 공개된 영화라, 진보진영으로부터도 확실한 환대를 받지 못했다. 독립다큐멘터리 업계에서는 확실한 ‘조직표’가 없는 이상, 10만 명을 넘기기 어렵다고 말한다. <소명>, <회복>, <울지마 톤즈>처럼 종교계의 지지를 받거나, <우리학교>처럼 전교조의 지지나, <비상>처럼 인천지역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어렵다는 인식이다. 최근 개봉작들도 <바보야>, <법정스님의 의자>등 ‘조직표’가 확실한 작품들 일색이다. 인도의 인력거꾼을 찍은 <오래된 인력거>의 이성규 감독은 말한다. “나도 종교적인 다큐멘터리 찍을 수 있다. 인도인들은 외국인들 앞에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 ‘안빈낙도’의 깨달음이 담긴 주인공의 대사가 많았지만 다 뺐다. 얄팍한 감동을 줄 순 있지만, 그게 진실은 아니니까” 어떤 진영이나 집단의 ‘조직표’를 모을 수는 없지만,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작품을 만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인가? 이성규 감독은 ‘독립PD’이다. 방송국에 외주프로그램을 만드는 ‘외주PD’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방송사와 독립PD의 관계가 철저하게 ‘갑과 을’의 관계라 말한다. 방송사는 독립PD가 만든 작품의 방영조건으로 터무니없는 헐값에 저작권까지 넘기라고 요구하거나, 심지어 독립PD가 마련한 제작비의 일부를 떼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한다. <트루맛쇼>의 개봉으로, 미디어의 조작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방송국과 외주PD 간의 불공정 관행이 제대로 도마에 올라야 한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지 않으면, 방송사는 꼬리 자르기 하듯 모든 책임을 맛집 프로그램을 실제로 만든 외주PD들에게 넘겨 잘라버리고, 결국 사회적 공분은 힘없는 외주PD들을 희생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아웃소싱 관계의 갑과 을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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