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안산 도시텃밭 기행

- 박정수(수유너머R)

지난 6월 25일 안산 도시텃밭 시민한마당에 참가했다. 때 이른 장마비에 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도시텃밭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안산의 도시텃밭들을 한꺼번에 구경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도시농업의 대부라 할 안철환 샘을 가까이서 만나고 싶었다. 안철환 샘을 처음 본 건 석달 전 용산도시농업 포럼에서였는데 강연이 기가 막혔다. 기억에 남는 몇 구절을 옮겨보면

“흔히 도시를 사막에 비유하는데, 사막을 욕보이는 거다. 사막엔 생태계가 있지만 도시의 아스팔트에는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한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 먹거리를 자가 생산하는데 인간은 그러지 못한다. 농반진반으로, 장차 농사를 못 짓는 사람한테는 벌금을 물려야 한다.” “도시농업하려고 하면 자꾸 땅이 없다고 하는데 땅은 얼마든지 있다. 사람이 없지” “지자체에 땅을 달라, 예산을 달라고 요구하지 마라. 공원이나 녹지공간으로 설정된 곳 중 유휴지가 많다. 아스팔트 깨고 작물을 심어라. 일단 작물이 자라면 맘대로 철거 못한다. 그렇게 자생력을 키워야지 자꾸 정부에 의존해선 안 된다.” 농사꾼 특유의 여유와 활동가 특유의 투지가 어우러진 강연이었다. 전화로 원고를 청탁했을 때 “허허, 뭐 맨날 했던 얘기 나올텐데, 그러지 말고 직접 와서 보시죠.” 라는 말씀이 자꾸 걸려서 멀기도 하고 비도 오는데 가지 말까 하다가 이상하게 잡아끄는 마력에 이끌려 안산으로 갔다.

제각기 다른 열 다섯 명의 투어팀에 섞여 각기 다른 색깔의 도시텃밭들을 봤다. 처음 간 곳은 석수동의 작은도서관 텃밭이다. 생태주의에 관심이 많은 조각가 분들의 작품이 책들 사이에 전시되어 있다. 흙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책이 되고 그 책이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아이들이 만든 텃밭과 조각가 분들의 작품이 따로 노는 것 같아 아쉬웠다. 조각가와 아이들이 같이 화단을 만들고 조각 작품 속에 흙을 담고 씨앗을 뿌려 작품이 되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그 다음 본 곳은 평범한 노부부의 옥상텃밭이다. 뭐 별거 있겠냐 싶었는데 장난이 아니다. 넓지도 않은 옥상에 벽돌로 화단을 만들고 농작물을 심은 것까지는 평범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흙을 관리하는 솜씨와 작물 재배 기술이 놀랍다. 폭이 50Cm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화단에 복분자, 앵두, 사과, 배, 감귤, 한라봉 등 온갖 과실수를 심었다. 어떤 분이 부안에도 이렇게 탐스런 복분자 나무는 없다고 감탄을 해서 보니 정말 복분자가 빽빽히 열렸다. 배나무에도 알찬 열매가 열렸는데 자세히 보니 열매 모양이 다르다. 나무 하나에 세 종류의 배나무 가지를 접붙여서 세 종류의 배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과실수 아래로는 당귀, 더덕, 쌈채 등 갖은 채소류가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자기 몸에 좋은 채소를 손수 길러 먹어서 당뇨도 나았다면서 할머니가 멋진 말을 골라 내신다. “처음엔 내가 저놈들을 보살피지만 나중에는 저놈들이 나를 보살펴.” 일일이 손으로 벌레를 잡는 정성도 그렇지만 흙을 관리하는 능력이 작은 옥상을 과수원으로 만든 비결이다. 이웃에게 얻어온 소똥과 음식물 쓰레기를 잘 숙성시켜 거름을 만들고 해마다 벽돌 일부를 빼고 흙을 갈아주는 게 비법이라고 하신다. 노부부는 약 대신 흙으로 무척이나 건강해 보였다.

다음은 도예가 박상미씨의 흙무늬 공방을 구경했다. 정갈한 머리 수건을 하고 직접 만든 찻잔에 매실차를 내오는 품이 시세말로 가히 예술적이다. 작업장 주변에 일군 텃밭에도 예술적 풍취가 그득하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도예 작품들과 수선화, 연꽃이 텃밭 작물과 어우러져 석수동 작은도서관에서 느낀 갈증을 풀어준 ‘예술텃밭’이 되었다. 시원한 필체의 시가 낙서되어 있는 생태 화장실(해우소), 매일 매일 따뜻한 유정란을 선사하는 닭들, 들어가 살고 싶게 만든 개집의 멍멍이, 도예 수강생들과 온갖 손님들을 풍성하게 먹이는 주방, 쉰 평 작업실과 전시실 등 만만치 않는 살림살이를 거뜬히 해내는 박상미씨의 섬세함과 강인함이 삶과 예술의 경계를 흔적 없이 허물고 있었다. 흙으로 도자기를 빚어 거기에 흙을 담고 거기에 꽃과 농작물을 자라게 하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다. “매실차 안 드세요? 그럼 커피 믹스 하나 드릴까요?” 라며 촌스런 취향까지 배려하는 소탈함까지, 예술을 고상한 천상에서 흙내 나는 대지로 끌어내린 흙무늬 공방, 꼭 한번 다시 가고 싶다.

다음은 3천 가구의 조합원을 둔 안산 의료생협의 ‘하늘정원’이다. 의료생협이 있는 상가건물의 옥상을 텃밭으로 일군 건데 농림진흥재단에게 지원금을 받아서 만든 대규모 옥상텃밭이다. 큰 드럼통 세 개에 빗물을 모아 외부 수도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농수를 공급하는 시설이 이 옥상텃밭의 규모와 지향을 짐작케 한다. 세 종류의 토종 볍씨로 길러낸 텃논에는 미꾸라지도 산다. 두 평씩 서른 가구가 분양을 받아 가꾼 작물을 수시로 텃밭 장터에 내다 판다고 한다. 도시농업의 선두주자 안산 도시텃밭 시민모임의 역량과 노하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안산도시농업의 메카라 할 초지동 시민농장에 갔다. 1천 500평의 거대한 농장 안에 안철환 샘이 진두지휘하는 텃밭시민모임의 집단농장이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질퍽한 밭길을 걸어 원두막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안철환 샘을 만났다. “진짜 올 줄은 몰랐다”며 걸걸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샘에게 쥐 그래피티 작가라고 소개했다. 그랬더니 그런 건 모르고, 예술가보다는 농사꾼처럼 생겼다고 농을 하신다. 농사꾼 맞다면서 그동안 일군 연구실 텃밭과 놀이터 갤러리 텃밭 사진을 보여줬더니 역시 농사꾼이 맞았다며 기발한 아이디어를 칭찬해 주셨다.

시민농장을 둘러보며 왜 개별분양 받은 텃밭에는 작물이 무성한데 텃밭시민모입의 집단농장에는 작물이 안 보이냐고 물었다. 볍씨를 뿌려 놓아서 이제 싹이 자라고 있는 거라고 했다. 도시텃밭에서 웬 벼농사? 게다가 논이 아니라 밭에서 벼를 기른다고? 안철환 샘은 우리 나라의 기후와 농사의 역사를 줄줄 읊으시며 우리나라 농업은 채소류가 아니라 곡물류가 근간을 이룬다고, 도시농업 역시 곡물재배를 주축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흙만 잘 가꾸고 정성만 들이면 얼마든지 밭에서도 벼를 재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분에게 도시농업은 여가생활이 아니라 자립생존의 길이다. 시민농장을 통해 자급하는 농작물을 물었더니, 고추, 삼채류는 물론이고 김장배추와 마늘을 자급하고 있다고 한다.

안산도시텃밭의 거점인 부곡동 바람들이 농장에서 따온 채소와 잡초로 만든 비빔밥, 직접 기른 콩으로 담근 된장국, 비오는 날씨에 딱 어울리는 부침개를 먹으며 도시농업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도시농업이 파괴된 지역 공동체를 살릴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더니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공동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는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농업의 과정이가 기술일 뿐입니다.” 엥? 공동체는 목표가 아니라 기술이라고? “목표는 도달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그 과정과 기술로서 공동체의 의미를 체득하는 겁니다.”

“항상 야심찬 꿈을 꾸시는데, 무엇을 실험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더니 정말 야심차게 “이양기보다 손모가 더 경제적이라는 걸 입증하고 싶다”고 하신다. 상품화된 기계의 효율성보다 공동체를 이룬 사람들의 기계적 힘이 더 우월하다는 것이다. 당장에 눈에 안 보이는 사회적 비용과 생태적 비용까지 합하면 기계농법이 결코 공동체 농법보다 경제적지 않다. 작년에 태풍 ‘마사’가 왔을 때 이양기로 심은 벼는 죄다 쓰러졌는데, 손으로 모내기 한 건 하나도 안 쓰러졌다고 한다. 안 샘은 단순히 기계와 사람을 대립시키는 게 아니라, 상품화된 기계와 공동체의 기계적 힘을 비교했다. 상품기계는 환경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하지만 공동체 기계는 생태계를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기쁨을 느끼게 한다는 말씀이다. 들뢰즈가 울고 갈 놀라운 기계론이다.

내가 오는 길에 배나무 한 그루에서 세 종류의 열매가 달리게 한 할아버지의 솜씨와 식물의 접속능력을 칭찬했더니, 안 샘은 씨앗으로도 생식하고 자기 몸의 일부를 떼어서도 생식하고 다른 몸과 결합해서도 증식하는 식물의 놀라운 생명 능력에 비하면 인간의 생명력은 참 형편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유기농업은 비료만 안 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똥으로 만든 거름으로 기름진 흙에 토종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고 공동체의 힘으로 길러내는 겁니다.” 라고 했다. 내가 “작고 딱딱한 씨앗 어디에 그런 생명력이 숨어 있었는지 땅에 뿌리고 물만 주면 싹이 트는 게 마냥 신기하다”며 초딩같은 말을 했더니, “맞다. 맞다. 그 맛을 아는 걸 보니 정말 농사꾼 맞네” 라고 맞장구를 치시면서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씨앗에서 싹이 움트는 힘이 가장 세다”고 했다. ‘씨앗의 움트는 힘’, ‘공동체의 기계적 힘’을 머리에 되뇌며 내가 만든 텃밭이 기다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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