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무한독전

귀농 1 · 2세대와 도시촌놈이 만났을 때

- 이경

‘20대 무한독전’을 쓴 친구들과 흑석동에서 재미난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모여 전라도 무주 안성으로 음악회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젊었을 적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 참된 삶을 찾아 농촌에 정착한 정현의 부모님과 이 분들의 친구들, 그리고 귀농 2세대라 불리는 농촌에 사는 10대, 20대를 만났습니다. 이들과 함께 나눈, 짧지만 굵은 음악회 이야기를 전하려합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들

친구를 사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비슷한 취미를 가진 소모임에서 만나거나, 회사에서 마음 맞는 동료를 만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공식적인 ‘공간’이 아닌 곳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건 여러 관계망들 속에서 오다가다 인연이 생기기 때문일 테다.

이번 무주 음악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오다가다 ‘어쩌다 마주친’ 그물망이다. 언제부터 인연이 시작됐는지 가물가물한 정현은 초등학교 때 귀농한 부모님을 따라 산청에서 자랐고, 중학교를 며칠 다니고는 홈스테이(홈스쿨링이 아닌!)로 번듯하게 자란 20대이다. 수유너머를 통해 만나게 된 박카스와 조르바도 어쩌다 인연을 맺어 무주로 가는 버스에 함께 몸을 실었다. 물론 흑석동에서 만난 로자, 숲이아도 흑석동 공간에서 만난 것이니 어쩌다 마주친 사이라 할 수 있다. 우린 다들 잠에서 막 깬 희끄무레한 얼굴로 첫차에 올라탔다.

무주에 함께 간 친구들은 공식적인 만남의 공간에서 조금은 비껴난 텅 빈 곳에서 만났다. 가진 것보다 나누고 싶은 것이 더 많은 사람들, 함께 즐거워하면서도 다 같이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모임을 만들고 또 그 모임에서 여러 만남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어쩌다보니 저 멀리 전라도 무주에 있는 친구도 생겼고, 서울 촌놈들이 그 마을로 ‘음악회’를 가게 되었다.

이웃에 방해가 되는 선에서 – 폐 좀 끼치며 살자

귀농 1세대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과 도시 촌놈들이 함께 여는 첫 음악회의 주제는 “이웃에 방해가 되는 선에서 – 우리, 폐 좀 끼치며 살자”로 정했다. 몇몇은 눈치를 챘을 듯하다. 보편적이지 않은 노래를 너무나 익숙하게 부르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중 단 두 자만 뺐다.

내 몸뚱이 하나 제대로 된 직장에 앉혀두고, 차곡차곡 결혼 자금을 마련해야 할 중요한 20대 후반에 왜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지 서로가 답을 찾고 싶었다. 큰 기업에 원서 쓸 생각은 안 하고 홍대 두리반부터 팔당, 부산 한진중공업 심지어 제주 강정마을까지(!) 오만 오지랖을 펼치며 남 걱정 하고 사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나’를 걱정하는데, 나는 ‘남’을 걱정하며 사는 이 신기한 구조를 해체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끄러운 음악을 듣지만 이어폰 덕분에 남들에게 폐가 되지 않고 사는 삶이 우리의 모습이다. 이어폰의 한쪽을 뽑아 다른 이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 민폐가 된 세상이다. ‘나의 노래를 옆집 사람에게도 들려주’는 건 도발적인 행동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목청껏 노래를 불러 옆집, 뒷집, 앞집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는 취지에서 주제를 선택했다. 좀 더 그들을, 우리 서로를 귀찮게 해야 살 맛 나게 살아가지 않겠냐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튼 우린 무주 안성에 최대한 민폐를 끼치고 오겠다며 결의를 굳혔다.(?!)

귀농 세대와 도시촌놈들의 하모니

서울에서 무주 안성까지 3시간이 걸려 도착했더니, 아침잠 설쳐가며 서두른 보람을 느낄 만큼 푸짐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오디가 제철이라며 며칠 전에 만든 오디쨈과 집에서 갓 구운 부추식빵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고, 앞마당에서 갓 뜯어온 각종 푸른잎 채소에 집에서 직접 담은 살구엑기스에 간장, 삶은 계란을 잘게 썰어 만든 소스를 뿌렸다. 정성껏 만든 카레와 물김치도 함께 먹으며 든든하게 속을 채웠다. 그리고 음악회를 준비하기 앞서 서울 촌놈들은 오디가 ‘나무’에서 나는 걸 처음 알았는지, 손을 보랏빛으로 물들여 가며 오디를 따먹었다. 3시간 후 … 점심 먹은 배가 꺼지기도 무섭게 다 같이 모여 큰 양푼이에 갓 지은 뽀얀 밥을 푸짐히 담아 각종 야채와 된장을 넣어 참기름을 휙 두른 뒤 고추장에 팍팍 비벼 함께 먹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질 때, 손수 제작한 현수막을 펼치고 뒤편에는 솔잎으로 담근 발효주가 준비되었다. 장소는 정현이네 집 앞 마당. 한창 개구리가 산천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여서 그런지, ‘개골 개골’하는 울음 소리가 음악과 함께 했고, 어두운 밤에 반딧불이가 조명이 되어주었다. 서울팀이 준비한 연극 두 편으로 음악회는 시작되었다. 정현이네 아버지가 작곡 · 작사한 곡에 어머니가 장구를 치며 흥을 돋아주었고, 다들 한 곡씩 멋지게 노래를 나누었다.

이것이 ‘아고라’다!

음악회가 끝난 뒤 다들 둘러 모여 고민을 털어놓는 자리를 가졌다.

“독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최대한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독립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이곳처럼 농촌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독립은 어떤 의미인가요?”

“하고 싶은 일이나 활동이 많지만 도시에서는 돈을 벌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자유롭고 싶은데, 이 괴리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왜 귀농한 사람들은 FTA나 농민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나요? 농민들은 피 땀 흘려 키워도 제 가격을 받지도 못하고, 날로 비료나 종자 값은 높아만 가요. 그런데 왜 그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지 않나요?”

“4대강 문제가 심각해요. 그런데 생명이나 자연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그저 집회에 가거나 기사를 보면서 아파해요. 이때 농촌에서 살면서 생태의 순환에 대해 몸으로 느낀 친구들이 거리로 나와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른들은 차분히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또 귀농 2세대들도 같은 또래지만 자신들과 다른 고민을 하는 도시 친구들의 속내를 듣고, 자신들의 고민도 털어놓았다.

“귀농한 부모를 따라 농촌으로 온 뒤 학교도 가지 않고 20대를 맞이했어요. 가족과 모든 시간을 공유하기에 20살이 되어서는 독립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데, 도시에서처럼 자취를 하거나 공동주거를 하기에는 가까이 사는 친구가 없어요.”

“농민이 되기 위해 귀농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살고, 이렇게 살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 농촌에 왔어요. 저희가 농사 짓는 걸 보면 너무 대충 지어요 ^^;;”

“얼른 도시에서 벗어나 농촌으로 와요.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이 해결되요. 얼른 와요.”

“농촌에는 이제 사람이 너무 없어요. ‘군’ 단위로 2만 명이 되는 지역이 별로 없어요. 무주나 진안도 마찬가지예요. 지역에 관심을 갖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많이 와주면 좋을 것 같아요. 도와줄게요.”

한창 ‘도시에서의 대안’이냐 ‘농촌에서의 대안’이냐를 토론하다 아주머니 두 분의 발언으로 정리가 되었다.

“지금 15년째 농촌에서 살고 있어요. 농촌에 왔을 때, 딱 3년만 좋았어요. 그 뒤로는 돈에 대한 문제도 힘들고, 아이들 교육 문제도 너무 힘이 들었어요.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이곳에 왔기에 내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게 되었어요.”

“여러분들이 너무 공정한 것, 윤리적인 것을 구분하며 매달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부모님 뻘 되는 분들과 함께 노래하고, 밤이 새도록 각자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나름의 대답을 해주는…. 어쩌면 부모님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자리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50대와 대화를 할 때 보통 ‘청자’가 되었던 20대들이 ‘화자’가 되고 또 어른들이 이를 진지하게 들어준 경험이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대화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오늘의 대화는, 마치 아고라 같아요!”

함께 걸어가자

음악회를 가진 날은 6월 11일이었다. 부산에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을 응원하기 위해 희망버스가 도착한 날이기도 하다. 음악회가 있기 전 며칠 동안 고민을 했었다. 중간에 갈등도 있었다. 귀농을 해서 기존의 삶과 다른 게 살 수 있는 걸 지금 보여주고 있는데, 왜 몇 십 년 전과 같은 집회 현장을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쩌면 치기어린) 화가 나기도 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노동운동이 한창이던 그때와 지금의 현실은 변한 것이 거의 없는데 어떤 삶이 더 좋은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부산이냐 무주냐. 결국 무주를 선택했고, 무주에서 열린 음악회는 도시에서 곳곳에 터지는 재개발 문제에 대해 어지러워하는 친구들과 우리와 같은 고민을 먼저 한 어른의 대화의 물꼬를 튼 자리였다. 무엇보다 도시든 농촌이든 함께 힘을 모으고 같이 살아가야 할 도시 촌놈들과 귀농 2세대가 서로의 마음이 움직이는 부분을 찾는 첫 걸음이기도 했다.

‘아고라 음악회’를 통해 도시와 농촌이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조그마한 창을 마련했고, 계속 창을 열고 넓혀 가련다~!

응답 2개

  1. 준식말하길

    글 잘 읽었어요~ ㅎ
    변두리 소년, 소녀가 무주로 가서 재미나게 보냈군요.

  2. 호호말하길

    “이웃에 방해가 되는 선에서 – 폐 좀 끼치며 살자” 라는 말이 재밌네요. 얼마전 희망의 버스를 타고 부산에 갔다오면서 부산지역분들과 발생했던 소소한 다툼들을 보며 행진으로 인한 ‘폐 끼침’이 다양한 고민의 장으로 생각의 장으로 확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주에서의 페끼침은 오히려 같이 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을것 같아요.ㅎㅎ

    농민이 아니라 다른 삶을 위한 귀농”이라는 말도 인상적이고.”아고라 음악회”는 아이들과 친구들과 함께 해보고 싶어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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