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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한국… 살 수는 있지만 일은 못 한다?

- 소모뚜

▲ 버마 민주화를 위한 세계공동행동의 날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었다.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해 외국으로 탈출한 사람”을 의미한다. 전 세계에는 4000만 명 이상의 난민 등이 국제사회의 보호를 찾아 떠돌고 있다.

한국에는 1994년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한 이후 2010년 3월 현재 모두 3073명이 난민신청을 하였고 이 가운데 235명이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다. 132명은 인도적 체류 자격을 허가 받았고 1604명은 불허, 자진철회가 580명이며, 현재 522건이 심사 중이다(난민인권센터 자료).

나는 2004년에 난민신청을 했다. 우리들(‘버마행동’ 회원들)이 한국 내 버마 이주노동자들을 과도한 세금으로 착취하는 미얀마대사관을 상대로 싸웠다가 테러리스트로 찍혀 생명보호를 위해 난민신청하게 됐다. 우리는 인천출입국사무소에 가서 난민신청 접수를 했다. 난민신청 접수 담당자가 미등록체류자들을 단속하고 있어서 한참 기다렸다. 더운 날씨에 온몸이 땀으로 젖어 들어온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우리를 보자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우리를 향해 맘껏 풀었다. 반말과 멸시를 들은 끝에 난민신청 접수가 끝났다. 어차피 접수 후에 난민신청에 대한 이유를 자세히 심사할 건데 왜 난민신청 접수 때부터 기분 나쁘게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살 수는 있지만 일할 순 없다… 그럼 뭐 먹고 살라고

며칠 후 6시간 가까이 심사를 받았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기, 내가 한국으로 오게 된 이야기, 한국에서의 나의 생활들을 아주 자세히 심사받았다. 나는 통역 없이 한국어로 답할 수 있기 때문에 6시간 후 심사를 다 끝낼 수 있었지만 통역이 필요한 신청자들은 하루 안에 못 끝내서 다시 와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어쨌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점은 심사다. 그게 원칙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난민이 된 이유와 상관없는 나의 개인정보 내용까지 모두를 자세히 다 이야기해줘야만 하는 것에 무척 기분이 불쾌했다. 생명을 보호받고자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답하기 싫어도 꼬치꼬치 물어본 것을 참고 답할 수밖에 없었지만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는 난민신청을 해둔 동안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계를 위한 아무 지원도 없지만 난민신청자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법으로 명시돼 있다. 법이라서 지키고 싶지만 지킬 수 없었다. 일을 해야만 살 수 있었으니까.
우리 회원 한 명(난민신청자)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출입국 단속반을 만난 경우도 있었다. 그는 단속반원들에게 난민실에서 그에게 준 A4용지 사이즈 크기 난민신청접수증을 보여줬다. 단속반원이 그에게 난민신청자는 일하면 안 되는데 왜 일하냐고 물어봤다. 그가 거지가 될 수 없어서 일한다고 답하자 단속반원이 그에게 ‘이 새끼’, ‘저 새끼’ 하면서 그냥 나갔단다.
생명을 보호받으러 난민신청을 한 사람이 굶어 죽지 않게 해주는 지원조차 없는 데다가, 신청자가 자기 힘으로 먹을거리를 찾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이 참 마음 아픈 현실이다. 힘없는 약자인 우리들이 먹는 밥 한 끼를 그리 아까워 할 필요는 없을 텐데.

▲ 주한 미얀마대사관 앞 버마군사독재정권 규탄 시위에 참석한 소모뚜씨의 모습

정부 풍자만화 ‘펌질’했다고 12년형… 버마의 ‘현실’ 알고 있나

2004년에 난민신청 심사를 받은 이후로 나와 난민실의 인연이 한참 동안 끊겼다가, 4년이 지난 2008년에야 난민실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모두 난민인정 ‘불허’를 받았다. 하지만 버마 국내 상황이 안 좋아 모두에게 ‘인도적 지위’를 허가한다고 했다.
법무부는 우리가 난민신청을 한 뒤 4년 동안 미얀마 정부에 반대하는 수많은 정치활동들을 할 때는 눈여겨보지도 않았으면서, 우리의 정치활동이 미약해 귀국할 때 생명에 위협을 받거나 하는 문제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도적 지위를 허가한다는 것은 난민처럼 정치, 종교, 민족 등으로 귀국 당시 박해 당할 가능성은 없지만 신청자의 나라 상태가 전쟁, 태풍 등 열악한 상황이라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현재 거주 국가에서 신청자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당분간 보호를 해주겠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법무부에서는 그런 상황에 있는 이들뿐 아니라 ‘난민으로 인정해주기에 부담스럽고 내쫓기도 어려운’ 애매한 상태의 난민 신청자들에게도 인도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법무부가 말하는 대로 정말 우리가 귀국할 때 아무 문제가 없을까? 인터넷에 있는 미얀마정부 풍자만화를 자기 블로그에 올려다가 12년형을 받은 학생, 국제노동기구 관계자 명함을 가지고 있다고 35년형을 받은 사람, 해외에서 단체를 만들었다고 불법단체 설립 혐의로 35년형을 받은 사람, 태풍 피해지역에 구호의 손길이 없다고 외신에 이야기했다고 59년형을 받은 사람 등, 버마 내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한국 법무부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 궁금하다. 난민들의 생명보호 결정을 내리는 기관으로서.

2010년에 중동에서 온 난민신청자를 만났다. 그는 고국에서 야당 지도자였고 정치적 박해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난민신청을 했다. 하지만 그도 역시 난민인정을 불허받았다. 그는 “인터넷에서 자신이 활동했던 야당과 나에 대한 관련 자료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도 한국정부가 왜 난민 인정 불허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도 이해가 어렵다.
2008년에 우리는 난민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인도적 지위를 인정받게 되어 한국에 계속 거주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인도적 지위자도 난민신청자처럼 일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난민실에 가서 인도적 지위 허가증을 받는 날에 법무부 직원이 우리에게 허가증을 주면서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웃을 얘기는 아니지만 그 얘기를 듣자 우리 모두는 그냥 웃었다. 그냥 황당해서.
그래서 내가 “그럼 우리 뭐 먹고 살아요?”라고 물어보자 그가 법이 그렇게 돼 있어서 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법을 지킬 수 없었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일을 했다. 몇 개월 후 난민법이 개정되어 인도적 지위자도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난민실에서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이제 일해도 된다”고 했을 때, 이미 일을 하고 있는 내가 답할 수 있는 말은 “예, 감사합니다”뿐이었다.
그 후 2009년에 난민법이 개정됐다. 그동안 문제가 많았던 기나긴 심사기간에 기한을 정해, 심사결과가 1년 안에 나오게 했다. 그리고 심사기간이 1년을 넘는 경우 취업허가를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신청자가 1년 동안 어떻게 먹고살게 해주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3명뿐인 출입국사무소 난민실에서는 난민심사를 1년 안에 처리하는 것이란 여전히 그림의 떡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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