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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들꽃 마을, 민들레 길.

- 김융희

서울에서 도봉길을 지나면 의정부, 의정부에서 똑바로 계속 북진하면, 동두천을 지나 전곡, 연천을 거쳐, 철원에 이르는 길이 3번 국도이다. 3번 국도는 철길과 함께 계속 쌍곡선을 달리다 그만, 열차는 철원을 못미쳐 연천의 신탄리에서 “기차는 달리고 싶다”란 푯말에 가는 길을 멈춰 선다. 원 철길은 철원, 원통, 금강산을 지나, 원산을 가는 경원선으로, 지금은 비무장 지대가 몇 겹의 철책에 의해 가로막고 있다. 이곳은 치열한 전투 현장이었던 백마 고지, 기습 도발용 흉계 현장인 제2 땅굴이 있으며, 높은 철책 곁에서 대성리 등, 북한 땅을 바라보는 태풍 전망대와 열쇄 전망대가 있어, 민족 분단의 비극인 현장을 바로 지척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연천이다.

나의 집 ‘우백당’은 연천읍을 지나 신망리역과 대광리역의 중간쯤에 있다. 더 정확히는 신망리역에서 4km, 대광리 역에선 3km쯤 거리이며, 국도로는 내산리 입구인 도신삼거리에서 내산쪽으로 약1.3km에 있다. 이 길로 계속 3km쯤의 가파른 고개를 넘으면 동막골 유원지에 이른다. 꽃봉산하의 협곡에 놓여있는 마을로, 십리 길 사이에 열두 채의 가옥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한적한 산촌엔 봄철이면 산나물꾼이, 여름철이면 유원지 나들이 차량들이, 그리고 초가을이면 밤줍는 나들이객들이 있을 뿐, 군부대를 왕래하는 군용 트럭이 달리며, 물 소리, 산새 소리만이 산 바람에 스쳐 산을 넘는 구름의 왕래가 잦다.

이 곳은 군사 지역으로 병영 막사와 군인들에 비해 일반 주민은 많지 않다. 산업 시설이나 농사용 비닐하우스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현대 문명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인적은 드물고 버려진 빈 땅에는 유난히 많은 들꽃들이 무리져 널려 피고 있다. 우리 마을의 본디 이름은 광대골로, 행정상 명칭은 도신3리 7반이다. 나는 들꽃이 지천인 우리 마을을 “들꽃 마을”로 이름지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을 관통하는 3번 국도를 벗어나 고갯길의 십리 길을 “민들레 길”로 부른다. 반회를 열어 공식명으로 선포식을 하려는데, 아직 협의할 시간이 잡히질 않아서 계속 미루어지고 있다.

때 아닌 눈이 내린 듯 개망초가 무리져 휘둘러 하얗케 꽃을 피우더니, 지금은 온 산자락이 밤꽃에 뒤덮였다. 짖궂게 장마비가 계속되는 데도 밤꽃향의 비릿한 내음이 온 마을에 짖게 퍼지르고 있다. 빗속의 들꽃은 울고 있는 듯 매우 슬퍼 보인다. 꽃은 피는데 예전처럼 벌들이 보이질 않는다. 꽃의 슬퍼 보이는 내력이 아닐까 싶다. “꽃 피는 곳에 벌 나비 난다”는 말도 이제는 옛 이야기로 돌려야 할 것 같다. 개망초가 필 때면 어김없이 나타났던, 양봉업자의 벌통이 놓였던 자리가 금년엔 아직도 그냥 버려진 채 텅 비어 있다.

이른 봄이면, 우리 집 돌배나무는 남 먼저 화사하게 꽃을 피워 명품나무로 인기가 드높다.꽃이 만개하면 날아든 벌들의 소리로 100m도 훨씬 넘어 웅웅거리는 소리가 진동한다. 그런데 금년엔 꽃은 여전 만발인데도 벌 소리는 아직 듣지 못한 채 이다. 늦추위가 계속된 기후 탓이려니 생각해 대수롭게 넘겼다. 그런데 이후 흰, 노랑 민들레꽃에도, 유난히도 무리져 핀 냉이꽃이며 고들베기꽃에서도, 벚꽃 아카시아꽃에서도 벌들이 거의 눈에 띄지를 않았다.

지금 한창인 갓, 무, 쑥갓등 장포에 피어있는 꽃에서도 벌 나비가 보이질 않고 있다.

우리 집 건너 이웃집은 집터가 넓어 여러 종류의 과목이 심어져 있다. 복숭아, 배, 살구등, 새로운 꽃이 필 때마다 인공 수정을 하느라 열심이다. 나도 요즘 틈나는 데로 가지 오이등 작물 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시간도 없지만, 해 본들 조족지혈로 성과가 없다.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변한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꽃은 피는데 날아들 벌 나비가 없는 것도 변해 가는 이치로 생각하며 예사롭게 넘길 일 일까? 또한, 이같은 이변이 어데 한 두가지 인가?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그토록 좋았던 우리의 샘물이 지금은 버려진 채, 검은 황금으로 통하는 석유보다 비싼 음료수를 수입까지 해서 마시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 동네 들꽃 이야기를 하다가 또 옆길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들꽃 이야기를 하려 해도 마음에 흥이 일지를 않는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길어 늦게까지 계속된 강추위로 별난 꽃구경을 경험했다.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목련이 피고, 민들레가 꽃대를 세우면 냉이가 따르는,이태껏 보아 온 그런 개화 순서가 아니었다. 진달래 벚꽃 철죽 등, 봄철의 모든 꽃들이 모두어 함께 핀 광경을 난생 처음 보았다. 날씨로 미룬 개화와 제 때를 맞춘 개화의 일치로 있게 된 정황은 이해를 하지만, 기후의 변화에 따른 여러 자연 생태계의 변화가 예사롭지를 않아 마음이 무겁다.

금년들어 우리집의 이색 꽃구경이라면 흰 냉이꽃과 노랑의 고들빼기꽃이 마음에 남는다.

너무 작아 깜직한 꽃들이 무리져 어울려 잘 피워주었던, 그래서 아름다워 정겨운 마음의 여운이다. 지난 봄, 꽃들이 함께 무리져 필 무렵 날씨가 요동쳤었다. 마침 개화가 시작되는 벚꽃은 피면서 모진 비바람을 맞아 바로 낙화하고 말았다. 이런 수난을 피해 피워준 좋왔던 두 꽃에 감사한다. 무리져 기백이 넘친 엉겅퀴도 장마에 힘없이 잦아들었다. 이제는 여름철 꽃들이 필 차례이다. 진즉부터 여름철이면 능소화를 보고 싶었는데 아직 구하지를 못했다. 대신 쑤세미를 올려 곧 노오란 꽃을 보겠다.

호박꽃도 피기 시작했다. 누가 ‘호박꽃도 꽃이냐’며 비아냥거렸던가. 맘씨 곱고 정많은 시골의 순박한 아줌마같은, 호박꽃이 나는 제일 좋다. 꽃도 좋거니와 호박 요리는 무었이나 다 좋와한다. 특히 씹을수록 감미로운 감칠 맛의 호박잎 쌈은 나에게 천하 일미이다. 그 호박꽃을 나 못잖게 좋와한 놈이 벌이었는데…. 벌이 와줘야 그 맛 있는 호박도 많이 열닐 것인데… 지금 그 벌들이 호박꽃을 찿아오지 않고 있다. 이제는 나라도 나서서 호박꽃을 더 가까이 돌보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아름다워야 할 들꽃이야기를 쓰다 보니 매우 우울한 이야기 뿐이었다. 내 마음의 뜻은 좀더 자연과 주위에 관심을 갖는다면, 지금 우리 주위에서 발생되고 있는 바람직스럽지 않는 일들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도였다. 우리는 관심을 갖고 배려해야 한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배려하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희망이 있다. 작년에 겨우 한 두 마리도 보기 힘들었던 반딧불이 올해는 벌써 더 흔히 많이 날고 있다. 집안의 작은 연못에서는 도룡용 알도 썩 많이 보았다. 이처럼 우리 곁을 떠났던 내 이웃들이 다시 하나, 둘, 돌아오고 있음을 보면서, 옛처럼 벌나비도 다시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응답 3개

  1. 이정민말하길

    안녕하세요, 김융희선생님
    지난번 글쓰기 반 엠티때 뵈었어요. 대전에 산다고 했던, 기억 나시나요?

    아, 흰 냉이꽃, 고들빼기꽃이란 말에 심장이 뭉클해지네요.
    금새 그 날 그 곳의 풍경이 영화처럼 펼쳐집니다.
    얕은 고개를 넘어 마주한 산들을 멀리서 눈으로 쫓습니다.
    마당 수돗가에서 손부터 씻어야 겠습니다. 아, 차가워.
    신발을 벗고 들어갑니다. 문지방을 넘습니다.
    그림과 책들 앞에서 한참 서있습니다.
    주방도 기웃하고, 주방 옆의 공부방도 기웃하고,
    상상속에서 혼자 웃고 있습니다.

  2. 강물처럼말하길

    바다님, 나 잘 있고, 그리고 고맙소.
    늘 나같은 초부의 좁쌀같은 마음이 행여 누를 끼친가 싶고,
    읽어 주는 이나 있기는 있는건가… 노심초사, 늘 안절부……
    그런데 ㅣ번도 끝까지 읽고 이런 격려와 안부의 뎃글을 주어
    힘이 나오. 다시 고마움을 전하며, 여름철 건강을 비오.

  3. bada말하길

    반딧불이, 도룡뇽 알이 찾아온 선배님의 들꽃마을에
    여름꽃이 만발하길 기대합니다.
    잘 지내시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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