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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반시대

소금꽃나무들에게 전하는 한 장의 연서

- 숨(수유너머R)

쓸 수가 없다. 노트북의 커서만 깜빡거리고, 종이 위의 펜은 그 자리에서 멈춘다. 내가 보고 온 것을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았는가. 그것들은 나에게 무엇이길래 한마디가 주저스러운 것인가.

희망버스라는 이름이 처음에는 낯간지러웠다. 희망. 이라는 단어부터가 그랬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어디에 붙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 버스에 탄 내가 희망인 걸까, 그 속에 탄 다른 사람들이 희망인 걸까,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 있는 그 사람이 희망인 걸까. 라는 의문들. 무엇을 희망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현실은 너무 어두웠다. 잊고 있었던 2002년의 일이, 그 기억이 버스를 타게 했다. 고인을 보내는 마지막 길에 흩날리던 희디흰 무명천과 생면부지의 사내가, 어떤 아이의 아버지였을 그가 그렇게 간다는 사실이 못내 참을 수 없어 터지던 울음의 기억.

9년이라는 긴 시간이 놓여있는데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었다. 꼭 같은 자리에 꼭 같은 이유로 한 사람이 올라가 있었고, 그 사람은 곧 2002년에 그 사내를 보내는 자리에서 추도사를 읊었던 사람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새털같은 시간을 살아왔는데 누군가에게는 흐르지 않는 시간이었다. 소환된 기억. 밑바닥에서 울리는 째깍거림. 그 째깍거림은 빚 독촉 같았다.

영도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엄마가 하는 가게에 가서 냉콩칼국수를 먹었다. 냉콩칼국수가 주는 시원함도, 오랜만에 푸근한 엄마의 손맛도,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향의 짭쪼름한 바다냄새도 허한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더 가시방석이었다. 나는 앉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어 엉거주춤 거리는 내 마음을 안고 서울로 돌아왔다. 부산에는 내 자리가 없었다. 연대를 외치며 투쟁을 외치며 눈물을 흘리며 부산에 있었지만 그곳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갚아야할 빚은 더 쌓인 것 같은데 갚을 길은 없었다. 그 알량한 1박2일의 시간으로 무엇을 어떻게 갚는다는 말인가.

이상하리만치 요리꼬리한 마음이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온 것은 공부방으로 출근하는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여기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있는 곳의 안락함 때문이 아니었다. 죄책감이나 빚진 마음이 사라진 때문도 아니었다.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크레인 밑에서 뿌리내린 그들이 있다면 여기 서울 노원구 상계동 공부방에 뿌리 내린 내가 있었다. 이 사실의 확인은 뿌리 없이 섣부르게 영글어가는 내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쉽게 당신의 고통을 내 것으로 하겠다고 열변하고 마는 내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들보다 더 비통한 듯이 말하고, 그들보다 더 괴로운 듯이 말하는 내 입의 가벼움 때문에 부끄러웠으리라. 그것은 나의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1. 수많은 소금꽃나무들.

「잎사귀도 없이 꽃만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아침 조회 시간에 사람들이 ‘나래비’를 죽 서 있으면 그들의 등짝엔 허연 소금꽃이 만개하곤 했다.
내 뒤에 선 누군가는 내 등짝을 또 그렇게 보며
“화이바 똑바로 써라. 안전화 끄내끼 단디 매라. 작업복 단추 매매 채아라.” 그 지엄하신 훈시를 귓등으로 흘리고 있었을 게다.
이른 봄 피어나기 시작해서 늦가을이 되어서야 서러이 지는 꽃.

<소금꽃나무> 김진숙」

나는 영도 한진중공업에서 수많은 소금꽃나무들을 보고 왔다. 85호 크레인 위의 소금꽃나무와 그 소금꽃나무를 바라보고 서 있는 수많은 소금꽃나무들. 서럽지만 차갑지 않은, 까슬까슬하지만 새하얀, 짭쪼름하지만 꼭 있어야할 소금을 달고 있는 꽃나무들. 모든 수식의 단어도 살아있는 그들의 진짜 얼굴 앞에서는 사라져버릴 정도로 가벼울 뿐이다.

산다는 것이 그냥 먹고 자고 숨 쉬는 일만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현실은 그들이 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한 존재의 살아있음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방법인가. 살기 위해 저항하고 버텨내고 발버둥을 친다. 그것이 죽음과 맞닿아 있더라도 곧 살아있음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85호 크레인에서 한 명의 사내가 죽었고, 그 뒤를 이어 같은 작업장의 도크 아래로 몸을 던져 또 한 명의 사내가 죽었다. 그 이전에도 같은 사업장의 한 사내가 취조실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의 사람들은 죽음과 떨어져있지 않다. 자신의 동료가, 선배가, 후배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들로 죽음을 맞이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삶의 기억이 생생한 만큼 그들의 죽음 또한 살아서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삶을 말하는 행위가 곧 죽음이었던 기억.

이 땅의 수많은 소금꽃나무들은 그냥 살지 않는다. 아직도 생생한 동료의 죽음을 마음에 품고, 스스로의 죽음을 한쪽에 놓아두어야만 생을 말할 수 있었다. 현실은 변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2. 매일의 패배와 매일의 저항.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외부의 적과 기나긴 싸움 끝에 이루어낸 승리였는지도 모른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정권과 자본에게서 얻어낸 최초의 승리. 하지만 그 최초의 승리 이후 수많은 노동자들은 수없이 패배한다.

“아씨, 저놈 때문에 내가 이러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미워서 죽겠드라. 이제 고마하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딱 그날 김주익이가 죽었다이가. 내사 그 마음 먹은 죄로, 두 번도 아니고 한 번 그런 생각했는 죄로, 사람들한테 말한 것도 아이고 속으로 그 마음 먹은 죄로…..”

눈물을 훔치던 한진중공업 노동자 아저씨. 그의 옆에서 나는 무색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앞에서 무슨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수없이 많은 투항과 자기 배반의 시간 속을 살았을 그들. 하지만 그 아저씨는 그 순간 그곳에 있었다. 그때의 가슴시린 죄책감을 안고. 그리고 지금도 그의 두 어깨에 무겁게 매달려있을 자식들을 마음에 품고. 그는 그렇게 수없이 흔들리며 그 자리에 있었다. 지금도 그런 말이 가슴속 불뚝불뚝 올라올지도 모른다. 고마하자고….하지만 그는 흔들리며 그 자리에 있다.

이튿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와중에 연대발언의 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한진중공업의 상황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을 사업장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 미국에 원정투쟁을 갔을 때 개사해서 부른 노래라며 “땡뻘”을 부르던 콜트콜텍 노동자들. 5년이 넘는 시간동안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천부당만부당한 짓을 저지른 것은 회사 측인데, 그들은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그것도 재치만점 땡뻘을 부르며. 인상깊었던 것은 그 노래를 부른 아저씨의 얼굴이었다. 재치있는 가사에 스스로 신이 나는 듯, 아이같이 해맑은 얼굴의 아저씨였다. 그 얼굴 뒤에 무엇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들이라고 본다. 쉽사리 생각할 수 없다. 쉽사리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어떤 시간이 그 5년을 채우고 있을지. 그 매일을 나는 모른다. 모르고 싶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보아도 생각해낼 수가 없다. 매일매일 무엇이 그들을 넘어뜨리고, 무엇이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무엇이 그들을 지금까지 오게 했는지.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은 가장 밑바닥의 노예이며 절망의 상태이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누구나 비정규직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그 생활상의 절망 앞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비정규직이 되지 않기 위해, 혹은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예의 상태로 살아가고자 한다. 혹은 그 자신보다 못한 노예들의 처지 앞에서 눈감고, 귀막고, 더 적극적으로 구사대가 되어 짓밟는데 동원되기도 한다.

층층이 주인과 노예로 나누어진 자본주의 한국사회 안에서 누군가의 노예이기를, 동시에 누군가의 주인이기를 거부한 이들은 매일 패배하고, 매일 절망하고, 매일 저항한다. 그러므로써 그들은 살아있다. 살아있는 그들은 고통을 피하는 우리들을 불편하게 한다. “사람들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느냐고 말할 때가 더 무섭다.” 라고 하는 어느 비정규직 농성장 노동자의 트윗. 함께 노예이기를 강요하는 또 다른 노예들. 하지만 깨어난 노예는 다시 잠들 수 없다. 그것 자체가 고통이지만 다시 잠들 수 없다.

내가 만난 소금꽃나무들은 사람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투사가 아니다. 어느 날 보니, 자신의 처지가 견딜 수가 없어 말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노예되기를 거부하고, 주인되기를 거부하며 사회가, 자본이 붙여준 이름을 거부하며 그렇게 자신을 사람으로 명명하는 자들이다. 자신으로 있고자 하는 것에 수반되는 고통에 온몸을 떨며, 아무도 모를 내면의 배반에 온몸을 떨며, 그렇게 흔들리는 상태로 서 있는 그들이다. 떨리는 서로의 진동을 느끼며 가장 앙상한 가지를 내밀어 서로의 몸에 맞닿은 채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다.

3. 절망은 허망이다. 희망이 그러하듯.

장밋빛 희망의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희망버스가 다녀간 후 사태는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청문회를 열기 위해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의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제 국가 권력의 위에 있는 재벌은 콧방귀로 응답하고선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날랐다. 청문회 이틀 전에 이루어진 행정대집행에서 공권력은 한진중공업의 용역 업체와 협력하여 노동자들을 끌어냈고, 행정대집행 직전에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회사와 극적 타결을 발표해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일부 반발 세력으로 만들어버렸다. 85호 크레인 밑에는 십여 명의 노동자만을 남겨두었고, 85호 크레인으로 통하는 전기도 끊고 밥도 끊고 용변통도 끊었다. 국가인권위가 개입해서 전기와 음식을 공급, 휴대전화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 종류만 허가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협의를 회사로부터 이끌어냈지만 전기는 여전히 공급되지 않고 있다. 깜깜한 어둠이다.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무력하다. 희망버스는 희망이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희망버스에 현실은 오히려 절망으로 화답한다. 우리의 어떤 시도가 전혀 먹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탄다면? 모르겠다. 과거에 성공했던 어떤 혁명도, 승리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현실은 우리가 무엇을 하건, 절망으로 화답한다. 매 순간. 혹은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서.

무력한 희망버스는 차라리 거짓말이다. 우리는 서로를 잊을 수 없기 때문에 희망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순진한 마음에, 영글지 못한 마음에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순간 느꼈을 때 그렇게 당혹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알겠다. 희망이라는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그것이 소금꽃나무들을 잊지 않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망하더라도 그 절망을 절망한다. 끊임없이 패배하면서도 그 패배를 패배하는 소금꽃나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장자가 말한 것이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괸, 거의 말라가는 물에서 괴로워하는 붕어는 서로 입에 침을 묻혀주며 습기를 나눈다”고. 그러나 그는 또 말한다. “차라리 강물 속에 있으면서 서로를 잊는 것이 낫다”고.
슬프게도 우리는 서로를 잊을 수 없다. 이리하여 나는 더욱더 사람을 속이는 일을 왕성하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사람을 속이고 싶다> 루쉰」

어떤 면에서 희망버스는 한 줄의 시이며, 한 장의 연서이다. 패배를 패배하고 절망을 절망하는 소금꽃나무들을 향한 한 장의 연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들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부르는 노래. 연서는 어차피 일종의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더 크게 웃는 거고, 그러니까 더 신나게 노래하는 거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오늘 부르는 이 노래는 서로를 잊지 못해 하는 것이다. 무력하다 할지라도 이 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유력한 어떤 것이 아니다. 무력한 사랑의 노래는 그것으로 그것의 자리를 할 뿐이다.

잊지 못해 끄적이는 한 줄의 트윗, 잊지 못해 오르는 희망버스, 잊지 못해 쓰는 완성하지 못한 한 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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