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지독하게 무의미한 전쟁의 지옥을 맛 보시라. – ‘휴전협정 후 12시간’ 이 60년간의 남북대치상황과 무엇이 다를까 –

- 황진미

<고지전>은 <의형제>로 흥행감독의 대열에 등극한 장훈 감독이 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한국전쟁 영화이다. 신하균, 고수가 주연을 맡고, <공동경비구역 JSA> <선덕여왕>의 박성연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니 화제작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의문이 든다. <고지전>은 그동안 한국전쟁영화와 어떤 차별점이 있기에 이정도 야심찬 기획의 블록버스터가 만들어진 걸까?

차별점의 한 가지는 <고지전>이 한국전쟁의 ‘시작’이 아닌 ‘끝’을 배경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게 뭐가 대수일까? 큰 차이가 있다. 전쟁의 시작에 주목하였을 때, 전쟁의 특수성과 역사성이 중요해진다. 이토록 예외적인 사건이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가 중요하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둘러싼 분분한 논의와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가치판단이 중요해진다. 인물들에게도 갑자기 닥친 전쟁 앞에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념적·실존적 고뇌가 주어진다. 그러나 끝이 배경이 되었을 때, 전쟁은 이미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다.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사건의 맥락보다 전쟁일반의 성격이 더 중요해진다. 주체도 변한다. 어디가, 혹은 무엇이 옳으냐의 가치판단보다 전장이라는 혹독한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기계로서의 본능이 더 중요해진다.

<고지전>은 그 점을 명확히 파고든다. 영화가 시작되면 1953년 서울에서 ‘북진통일’이라 쓴 맥빠진 가두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판문점에서는 2년 동안 휴전협상 중이다. 2년이라고? 1950년 발발 직후 파죽지세로 포항까지 밀려 내려가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석 달 만에 서울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북진해가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게 되었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모두 전쟁 시작 7개월만의 일이다. 다시 전쟁 이전의 군사분계선과 비슷한 곳에 전선이 고착된 후, 양측 모두 말로는 남조선해방과 북진통일을 외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더 이상의 진척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협상이 그러하듯, 밀고 당기는 힘은 협상 테이블이 아닌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다. 휴전선을 어디로 획정할지 논의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면, 전장의 군인들은 진짜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피터지게 싸워야 한다. 고지하나 능선하나를 놓고 양측이 뺏고 뺏기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70년대 TV 드라마 <전우>가 약간의 야외촬영을 곁들인 조악한 스튜디오 촬영으로 한국전쟁을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당시의 ‘전혀 스펙터클할 필요가 없는’ 고지전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판문점에서 휴전이 진행되는 동안, 남측 장교는 부역자 처리를 언급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적과의 동침>에서도 보았듯, 무고한 부역자들 많았다. 그런데 민간인이 아닌 최전선부대에 적과 내통한 자들이 있다는 첩보를 받고, 방첩대 신하균이 동부전선으로 온다. 상관살해에 대한 의문점과 전쟁초반 실종된 친구가 그곳에 있다는 제보와 함께. 의문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린다. <고지전>은 <공동경비구역 JSA>에 비해 미스터리의 활용이 약하고, 생사의 현장에서 적과 기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의 묘사가 투박한 편이다. <고지전>의 방점은 다른 곳에 있다.

<고지전>이 진정으로 주력하는 건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에서는 이념이나 승패가 아닌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존기계로서의 명령이 그들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휴전협정 후 12시간’이 보여주듯 전쟁의 지독한 무의미이다.

전쟁터에서 부대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명령을 내리는 상관을 살해하고 항명하는 것은 영화에서 거의 다루어진 적 없는 금기이지만, <고지전>은 이를 호들갑 떨지 않고 보여준다. 심지어 아군을 몰살하고 살아남은 전쟁영웅까지 나온다. 살아난 부대원들은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모두 죄의식을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다. 휴전협정 중의 교전도 그러하지만, 협정 후 모든 것이 끝났다며 서로 목례까지 나눈 이후의 12시간은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무의미를 선사한다. 영화는 대놓고 그 무의미를 관객에게 체험시킨다. 안개가 낀 고지에서 양측 군이 ‘전선야곡’을 부를 때, 진심으로 어떤 꼼수를 써서라도 이 전쟁을 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그런데 협정 이후의 이 지독하게 무의미한 전투가 지난 60년 간 남북이 꾸준히 해왔던 일들이 아닌가. 도끼만행사건, 서해교전, 연평도사건 등이 모두 아무런 승패도 명분도 없고, 그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인 소모적인 전투들이다. 전투뿐이 아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군비를 늘리고 긴장을 강화한 모든 짓들이 이 ‘휴전협정 후의 12시간’과 무엇이 다를까. 영화는 마지막에 인민군 장교의 입을 빌어 무의미를 확인 사살한다. 전쟁 초반에 “너희들이 지는 이유는 왜 싸우는지 모르기 때문”이라 말한 인민군 장교에게 신하균은 왜 싸우는지 묻는다. 일주일이면 전쟁 끝난다고 믿었던 인민군은 이념적 확신에 차있었지만, 무의미한 전투의 반복 속에 확신은 잊히고 관성만 남았다.

편지와 물품으로 교류한 남한군을 저격하고 무덤덤하게 남한군이 준 초콜렛을 먹는 김옥빈과 그녀를 대검으로 찌르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신하균 사이에 우리의 윤리가 놓여 있다. 서로를 타자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휴전협정 후 12시간’과 다를 바 없는 한반도는 지옥이 될 것이다. 통증도 느끼지 못한 채 떨어져나간 팔다리로 좀비처럼 걷던 이제훈과 “우린 이미 죽었지만, 이보다 더한 지옥이 없어 여전히 여기에 있는 것”이라던 고수의 대사는 이를 말해주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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