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농꾼, 반근대의 몽상

- 이계삼

잊기 전에 기록해두어야 할 영화가 있다. <땅의 여자들>이라는 다큐멘터리다.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는데, 주의 깊은 분들은 이미 봤을 것 같다. 나는 ‘너른마당’이라는 지역의 협동조직에서 하는 영화 모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각각 합천, 함안, 창녕으로 귀농해서 농민운동에 뛰어든 세 여인들의 이야기다. 뭔가 뭉클하고 큰 감동이 남았고, 무엇보다 내 인생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아 기록해 두고 싶다. 거기 나오는 세 여인 중에 두 사람이 나와 같은 91학번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 영화에 나오는 소희주 씨, 변은주 씨, 강선희 씨는 농사일을 하면서도 여성농민회, 민주노동당, 지역아동센터 활동을 거의 잠시도 쉬지 않는 활동가들이다. 고된 농사일은 말할 것도 없고 트럭 운전에 육아에 조직 일까지 척척 해내는 멋쟁이들이다. 함안 지수면의 소희주씨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마을 할머니들 어울려 노시는 사랑방에 가서 찜질팩 놓아드리고, 함께 트로트 부르며 어울리는 대목이 참 인상적이다. ‘어머이예~’하면서 촥촥 달라붙는 붙임성이 정겹다. 대학생 시절 농활 가서 한 보름씩 그렇게 지내보긴 했지만,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을 시골 마을에서 나이든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삶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데, 그런 일이 생활인 듯 자연스럽고 또 즐거운 것 같다. 농민회 서울 상경집회가 고속도로 진입로에서부터 막히자 길바닥에 드러누워 경찰한테 분통을 터뜨리다가도, 이내 고속도로를 점거한 농민들과 길바닥 노래자랑으로 판을 바꾸어 흥겹게 노는 모습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창녕의 변은주 씨는 시어머니가 무뚝뚝하시고 농민 운동하느라 바쁜 며느리를 탐탁하게 여기질 않아서 생긴 갈등이 고민이다. 그래도 지역 활동은 쉼 없이 해 와서 이제는 지역아동센터를 열기 위해 사회복지사 시험을 준비한다. 합천의 강선희 씨가 이 영화의 주인공 격인데, 이 분은 나도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 일제고사를 앞두고 경남 지역을 순회하며 강연을 다녔는데, 합천군 쌍책면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와서 갔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면단위에서 강의 요청이 와서 의아했는데, 조그만 공부방이 엄청 알차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이 곳 공부방 실무자가 바로 강선희 씨였다.

이 영화에서 소개된 강선희 씨의 사연은 정말 찡했다. 강선희 씨의 남편은 학생운동 시절에 만난 민주노동당 활동가였는데, 심한 당뇨를 앓고 있었다. 병세가 악화되는 와중에도 지난 총선에 민주노동당을 대표하여 후보로 출마했다. 쉽지 않은 결단이었고, 무엇보다 병석에 있는 남편의 바람이기도 했다. 시어머니도 며느리의 이런 활동을 응원해주었고, 아들을 대신해서 어머니가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선거 무렵에 몸이 급속히 나빠진 남편이 선거가 끝난 얼마 뒤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강선희 씨는 병든 남편을 간병하지 않고 선거에 뛰어든 못된 며느리가 되어 버렸다. 시어머니는 말을 잃었고, 아들이 죽고 나자 결국 시어머니는 며느리 곁을 떠나게 된다. 이 힘든 시간을 견디는 강선희 씨의 덤덤한 모습, 그 속에 자리했을 번민이 영화가 끝난 내내 마음 아팠다. 이제 강선희씨는 홀몸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농사일을 하며 공부방과 농민회 일을 재개한다.

나는 너른마당 강당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처음에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리를 곧추세워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가 내 삶을 향해 뭔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함안, 합천, 창녕, 여기는 어떤 곳들인가. 밀양보다 훨씬 노령화된, 완연히 퇴락해 가는 농촌이다. 요즘 누가 저렇게 농사를 지으며 늙은 농민들과 함께 투쟁하고, 어울려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트럭에 어린 아이들 주렁주렁 싣고 공부방에 데려다 주고 농가 방문 다니고, 농민회 회의 다니고, 상경 투쟁 조직하고, 정말 누가 이렇게 살고 있단 말인가. 저들이야말로 러시아 정교회의 수행 전통에서 이야기하는 ‘유로지비’-거룩한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모인 ‘너른마당’만해도 농민회 활동가가 몇 있긴 하지만, 저렇게까지 고단한 나날을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저런 지역 현안이나 전국적인 사안들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그래서 극우 일변도의 지역 분위기를 가까스로 막아내는 균형추 노릇 정도는 하고 있다고 자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우리는 이 현실의 무엇을 버텨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삶 또한, 뭔가 이 현실의 중심에서 비껴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글로써 하기 좋은 말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하고,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고 있다. 내가 하는 만큼도 하지 않으려 하는, 안락의 구렁에서 허덕이는 시대의 공기를 한탄하며 힘든 척 생색을 낼 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세분의 삶을 보면서 과연 나는 이 시대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는 학생운동을 경험한 91학번들과 그 언저리 세대의 삶이 있다. 언젠가, 경북 예천의 농민운동가 김구일 형의 집을 방문하고 난 뒤에 오래도록 남았던 감동을 생각한다. 김구일 형과 형수 역시 안동대 학생운동권이었고, 졸업 뒤 귀향해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과 지역운동의 큰 일꾼이 되어 있었다. 재래식 똥뚜깐에서 퍼낸 장군을 지고 밭에 거름을 주는, 주변 어르신들의 질타를 받아가면서도 유기농의 영토를 조금씩 넓혀가는 대단한 농꾼이었다. 형의 토마토 밭에서 따 먹은 유기농 토마토는 비료를 치지 않아 밍밍하고 싱거웠다. 김구일 형과 그의 삶을 생각하면 그 밍밍한 맛이 지금도 되살아나는 것 같다. 내겐 그것이 진정한 삶의 한 미각적 구현으로 여겨졌는가 보다. 자극과 안락의 삶을 완전히 거스르는 농부의 삶, 갖은 첨가물과 비료에 기대지 않고 온전한 인간의 노동으로 일구어낸 본연의 맛, 끝내 우리가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영토….

우리 삶은 결국 근대라는 시간적 규정 속에 포섭당할 것이다. 이 세계의 대척점에는 분명 ‘농업’이 있다. ‘농업’을 상정하지 않는 그 어떤 기획이라도 이 시대의 핵심을 꿰뚫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녹색평론>을 읽으며, 때때로 그 매체에 글을 쓰면서 나 또한 ‘농(農)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한 나팔수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나 자신이 농의 가치를 몸으로 살아내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저들, 비슷한 시기에 ‘의식화’라는 물구나무서기 세례를 받았고, 그럼으로써 ‘거꾸로 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내 또래가 지금껏 20년 가까운 세월을 조금도 에둘러가지 않고 온전히 삶으로써 농의 가치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추측건대 NL 운동권 출신들이리라. 그들에게 학창시절 내가 품었던 일말의 경멸을 진심으로 반성한다. 저들이야말로 진짜 운동권이다. 지금 이 시대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상(思想)’이 아닐까 싶은데, 내가 보기엔 저들이야말로 사상의 존재들이다.

나는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농사와 철학을 배우는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내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장마 뒤끝의 우리 집 텃밭에는 지금 잡초가 무성하다. 쓸데없는 잡소리 걷어치우고 어여 집에 가서 텃밭의 풀부터 뽑아야겠다.

응답 1개

  1. tibayo85말하길

    아, < 땅의 여자들>이라는 타큐 꼭 봐야겠습니다. ‘주의력이 깊지’ 못해 아직 못봤거든요. 제 고향도 예천인데, 고향에 그런 분들이 계시다니, 근거 없는 죄책감에 가슴이 아립니다. NL에 대한 마지막 일갈, 가슴에 깊이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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