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상대의 죄를 입증하려면 나까지 홀딱 벗어야 하는 성폭행 법정이여!

- 황진미

[사건번호 2011 고합 689] 일명 고대의대 성추행 사건 1차 공판이 열린 2011년 7월 22일 10시30분 서초동 서관513호 법정은 방청객과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누런 죄수복을 입은 피고인 3명이 눈에 확 들어온다. 참, 피고인들은 한 달 넘게 구속되어 있는 상태였지. 역시 패션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3명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잔뜩 위축된 모습이다. 판사도 3명이다. 배준현 재판장 양 옆으로 배석한 두 명의 판사 중 한명이 여성이다. 검사도 여성이다. 변호인석엔 3명의 변호사가 앉아있다. 재판장은 피고인 3인에 대한 성명, 주민번호, 주소 등을 확인하고 변호인 이름도 피고인과 짝 맞춰 확인한다.

호화변호인단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이 사건에 처음엔 피고인 박씨, 한씨에 대한 변호인으로 유명로펌의 변호사 3명이 선임되고, 배씨의 변호인으로는 개인변호사 2명에 2개 유명로펌 소속의 5명의 변호사로 무려 7명의 변호사가 선임되었다. 20대 학생신분의 피고인들에게 총 10명의 변호인단이 꾸려졌으니, ‘반성은커녕 돈지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여론의 질타를 의식하였는지 박씨, 한씨의 변호를 맡은 3명이 모두 사임하였다. 배씨의 변호인 7명 중 4명도 사임하여 3명만 남았다. 박씨, 한씨는 잠시 국선변호인을 선임했다가 다시 새 변호사를 1명씩을 선임하였고, 이들이 법정에 출석하였다. 배씨의 변호인 3명 중 법정에는 1명만 출석하였다. 그런데 이 변호사 낯이 익다. 2009년 촛불집회 재판 당시, 야간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개념판사였고, 이후 신영철 대법관의 핍박을 받아 스스로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되었다는 박재영 변호사이다. 이분을 집단성추행사건 변호인으로 법정에서 뵙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최근에는 부산저축은행 변호인으로도 이름을 올렸다니, 나 같은 범인(凡人)으로서는 정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그저 판사일 때와 변호사일 때에 따라,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사명에 투철한 법조인으로 이해하면 되는 걸까.

# 저는 추행이 있었다는 것도 경찰서에 와서 알았습니다! Really?

잠시 딴 생각하는 사이 본 게임 시작. 검사, 공소사실을 읽는다. “2011년 5월…..펜션에서….잠이 든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가슴, 둔부…..등의 부위를 만지고……카메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새벽에 다시….가슴, 둔부…..등을 만지는 등을 한 혐의로 특수강제추행죄로 기소되었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는 아름답지 못한 사연) 재판장은 박씨의 변호사에게 공소사실을 인정하는지 묻는다. 변호사는 “공소사실과 증거일체를 인정하며 사죄한다”고 말한다. 박씨 역시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한다”고 말한다. 한씨의 변호인은 약간 토를 단다. 공소사실이 과장되었다고 말했다가, 판사가 재차 묻자 “공소사실은 인정하나 세부적인 경위가 과장되었다”고 부연한다. 판사가 “구체적으로 어디가 과장되었냐”고 다시 물으니 “피고인 공동행위” 부분이라고 짧게 답한다. 한씨는 약간 틀어진 분위기를 다독이려는 듯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살짝 울먹이듯 말한다. 흠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란 식이군. 하지만 다들 반성모드로만 나가면 관전 포인트가 사라지는데….살짝 걱정하려는 순간, 박재영 변호사가 말씀하신다. “배씨는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한씨가 박씨가 방에 들어갔을 때, 배씨는 차량에 있었으며, 가장 나중에 방에 들어가 보니 피해자의 웃옷이 벗겨져 위로 올라가 있어 내려주었을 뿐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고, 카메라로 촬영한 적도 없습니다.” 재판장이 배씨에게 사실인지 묻자 “3시 반쯤 잠이 들어 10시 반쯤 깬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추행이 있었다는 것도 경찰서에 와서 알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오~상당한 반전인데? 특히 추행사실도 경찰서에 와서야 알았다는 대목이 인상 깊다. 변호사는 피해자가 사건직후 친구들과 문자와 카카오 톡 등으로 논의를 할 때 ‘새벽에 한 것은 둘만 그런 거쟎아’ 등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는 피해자의 고소장과 진술서, 진술조서에 ‘부동의’ 한다는 점을 못 박았다.

# 배씨는 한번 잠들면 깨지 못하는 사람이라오. 증인도 있소! So What?

재판장은 증거자료 채택에 관해 검사에게 발언기회를 준다. “디지털 카메라와 사진 영상 자료에 대한 CD를 제출하겠습니다. 피고인들의 카메라와 휴대폰의 메모리 칩 등을 분석한 결과 해당 시간에 21장을 촬영했다가 삭제된 흔적이 있으며, 복구를 시도하였지만 대부분 복구되지 않았고, 일부 복구된 사진이 있어 첨부합니다. 복구된 사진은 피해자의 속옷과 누워있던 모습과 맞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배씨의 변호인도 증거채택에 대한 발언기회를 얻었다. “증인신청을 하겠습니다. 김**, 이**, 송**, 이&&” 당사자들 밖에 없었을 사건에 대체 무슨 증인이지? 싶었는데, 재판장도 약간 얼굴을 찡그리며 묻는다. “뭐에 대한 증인이죠?” “평소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할 증인들입니다.” 이게 뭔 소리인가? 평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이게 그 악명 높은 재판정에서의 ‘2차 피해’ 에 해당된다는 ‘피해자 행실’에 관한 증언인가? 설마, 말로만 듣던 막장 재판을 목도하게 되는 건가 두근거리는 찰라, 재판장이 약간 갸웃하며 “뭘 묻겠다는 거죠?” 한다. 변호사는 “피고인 배씨의 잠버릇이 한번 잠이 들면 깨지 않는다는 것을 증언할 것입니다”라는 기대 밖의 대답을 한다. 재판장은 약간 짜증을 섞어 “김**, 이**, 송**, 이&&등이 다 누구지요?”하고 재차 묻는다. 변호사는 “같은 학교 친구들과 후배들입니다. 이 사건은 과장된 부분이 있습니다.” 증인 수가 많다며 재판장이 난색을 표하자 일단 김**, 이&&를 증인채택 해달라고 한다. “두 사람 간엔 무슨 차이가 있나요?” 하니 “남녀가 보는 게 다르다”는 알쏭달쏭한 답을 한다. 나머지 증인 채택에 대한 이유는 비공개라며 아주 작게 말한다. 진짜 뭘 끌어내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평소 한번 잠들면 깨지 않는 잠버릇이 있다는 점을 친구들이 증언해주면, 배씨는 옆에서 성추행이 일어나는지 칼부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내처 자고 있었음이 인정되어 무죄가 입증된단 논리일까?

변호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피해자가 지인들과 문자와 카카오 톡 등으로 주고받은 메시지 중 혐의사실에 유리한 일부만 제출하였다며, 통신사에 보관된 피해자의 문자메시지에 대한 사실조회를 요청하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들 전부가 통신사에 보관되어 있다가, 누군가 털면 다 볼 수 있단 말이지? 와우, 무서운 정보화 사회!) 아까 말한 ‘새벽에는 둘만…’등의 배씨에게 유리한 메시지를 더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고인도 아닌 피해자가 사건과 관계없는 사적인 문자메시지까지 성추행 피고인 측에게 옴팡 털리는 수모를 겪는 것이 과연 무방한 일일까? 상대의 죄를 입증하려면, 나까지 홀딱 벗어야 한단 말인데 이게 최선의 정의일까. 변호인은 피해자의 일정기간동안의 문자메시지 전부를 열람하여 피고인에게 유리할만한 문자들을 골라내고 재배치하여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성할지도 모른다. 박재영 변호사 진짜 발군이다!

# 배씨가 어머니와 주고받은 카카오 톡. 한씨의 DNA. Coming Soon!

검사의 증거 채택에 대한 발언이 이어진다. “배씨가 어머니와 주고받은 카카오 톡”을 증거로 제출합니다. 알려진 대로, 배씨는 어머니와 상담을 하였구나! 검사는 높낮이 없는 어투로 꽤 중요한 증거자료들을 스르륵 훑듯이 말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서 조사결과 피해자의 몸에서 콘돔성분은 발견되지 않았고, 한씨의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소변에서 약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어? DNA 검출이라면 이거 차원이 달라지는 문제 아닌가? 앞으로 더 공방이 있을 테니 지켜보자) 그러더니 화면을 켜고 증거를 보여준다. 화면에는 피해자의 속옷이 크게 비춰진다. 민망하다. 이어서 진료기록과 펜션의 모습이 비춰진다.

재판장은 증거채택에 대한 양측 발언이 끝나자 다음 공판에 대한 시간배분을 한다. 주심문과 반대심문을 몇 십분 씩 할지를 정하고, 피해자가 법정에 직접 출두하지 않고 다른 장소에 있으면서 비디오화면을 통해 심문에 답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공판장소를 정하였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비공개 비디오 심문이 이뤄질 것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평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할 증인들이 채택되고, 피해자의 문자메시지가 아무런 여과 없이 피고인 측에게 통째로 열람되며, 속옷 사진은 크게 전시되고, 이름과 추행과정이 반복적으로 말해지는 이번 공판을 통해 보듯이,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서 상대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발가벗겨져야 한다. 피해자가 의대동기로 사회적 지위가 대등한 편이고,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이번 사건의 공판조차 이러할진대, 대다수 다른 성폭력 사건의 재판이 어떻게 행해질지는 불문가지다. 성폭력 피해를 증언하러 법정에 섰다가 노래방 도우미였다는 이유로 판사에게 모욕을 당해 자살한 여성은 오죽했을까. <잡년행진>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 공판은 8월 16일 오후 2시 서관 418호.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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