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시선 전쟁

- 박정수(수유너머R)

7월 19일 쥐 그래피티 항소심 공판이 있었습니다. 바뀐 공판 검사는 ‘왜 이런 똥 덩어리가 나한테 넘겨졌을까’ 하는 똥씹은 표정으로 모든 변론을 “서류로 대신한다”는 말만 하고, 우리만 실컷 떠들다 왔습니다. 집에 와 오랜만에 편지함에 쌓인 우편물을 거둬 봤더니 부산 영도 경찰서에서 출두명령서가 왔더군요. 1차 희망버스 때 불법집회에 참가가했다고 조사 받으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안 오나’ 했습니다. 쥐 포스터 피켓 들고 용역들 코앞에서 하루 종일 서 있었으니, 피켓에는 WE ARE WATCHING YOU! 라고 적었지만 정작 보는 건 채증 경찰이고, 나는 주민등록증 들고 서 있는 꼴이 된 거죠. WE ARE WATCHING YOU! 란 문구는 지난 G20 국회의장회의장을 따라 다니면서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취지로 새겨 넣은 것인데, 사진에 찍히는 순간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제가 저들의 감시에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뭐, 괜찮습니다만, 처음 피켓 시위할 때부터 이진경 샘이 그런 경고를 했었죠. 지금의 권력관계에서 저 문구는 권력자의 일망 감시를 환기시킬 뿐 내가 의도한 시선의 역전은 기대하기 힘들 거라고.

며칠 전 그 예언이 현실로 다가온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전화를 걸어와 쥐그림 피켓 시위와 관련해서 긴히 애기할 게 있다고 해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천안함, 연평도 사건과 관련해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후 죽 정부기관에 의해 도청과 해킹을 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자기한테 끊임없이 “우리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면서, 지난 ‘쥐와 벌’ 연극 때 상영한 미군관련 영상과 WE ARE WATCHING YOU라고 적힌 제 일인시위 피켓이 그 증거 중 하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졸지에 저는 정부의 하수인으로서 정부비판자를 감시하는 놈이 되고 만 것입니다. 시선의 권력관계를 역전시키기가 이렇게나 힘듭니다. 저들의 숨은 감시의도(WE ARE WATCHING YOU)를 전유하여 ‘그들’을 감시 대상으로, ‘우리’를 시선의 주체로 역전시키려는 제 의도가 아무리 기특해도 ‘우리’의 힘이 세지 않으면 저는 우스운 감시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심지어 그들의 시선을 대리하게 됩니다.

‘잡년행진’에 연대감을 느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잡년행진은 여성을 시선의 대상으로만 놓고 싶어 하는 남근권력과의 ‘시선 전쟁’을 선포하는 포탄이었습니다. ‘너네 이런 거 좋아하지? 이런 거 보면 막 꽂고 싶지?’ 라며 거리로 난입할 때 그건 항상 보고 싶을 때만, 보고 싶은 데서만, 보고 싶은 형태로만 보려는 수컷들을 무력하게 화나게 만드는 유인공격입니다. 그녀들은 자신을 노출시킴으로써 거기 들러붙어 있는 수컷들의 음탕한 시선까지 ‘아웃팅’ 시킨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만 익숙한 그 음울한 시선을 대낮의 광장에 끌어 놓고 ‘자, 그래, 어쩔래? 여기서도 한번 즐겨 보시지?’라고 조롱한 것입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무리지어 행진하면서. 그녀들은 디오니소스 제전의 마에나드들처럼 춤추면서 그걸 훔쳐보는 펜테우스들의 시선을 찢어발겼습니다.

공격이 있으면 반격이 뒤따르는 건 당연합니다. “저런 년들은 강간당해도 싸다”는 둥 “빤쓰가 이쁘다”는 둥 “너같이 못생긴 년은 안 먹는다”는 둥 이빨을 드러낸 수컷의 말들은 공중에 둘러싸인 미친개의 무력한 으르렁거림일 뿐입니다. 은밀한 공격일수록 위협적인 법, 잡년들이 춤을 주자마자 삥 둘러싸서 로우 앵글로 사진을 쏘아(shot) 대는 기자들은 민간복장을 한 전초병이었습니다. 시선의 예봉을 꺾어 잡년들을 한 순간에 쇼걸로 만들려는 직업 상 몸에 밴 ‘샷’이었죠. 잡년들의 몸을 아래에서 위로 훑고 지나가는 그들의 카메라는 대포였고, 남근이었습니다. 그들이 물어다 준 먹이감을 물어뜯는 건 도덕군자, 정신분석학자들입니다. “의도는 알겠는데, 천박하다”, “보라, 저 복장이 쇼걸의 복장과 뭐가 다른가?” “자기만족이라고? 웃기지 마. 모든 욕망은 타자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이야”

도덕적인 나라, 양심적인 시민만들기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진보주의자’들의 도덕적 시선은 ‘도덕은 권력의지의 무기’라는 니체의 말을 입증하듯 잡년들의 “천박한” 시위방법을 물고 늘어졌고, 한발 후방의 문화주의자들은 잡년들의 디오니소스적 전쟁을 ‘발랄하고 즐거운’ 문화행사로 해독(解毒) 시켰습니다. 그 옆에서 아이돌 그룹의 사진과 잡년들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자 뭐가 다른가? 결국 남성적 시선을 내면화한 거 아냐?’ 라는 결론을 내리는 텍스트 해석학자들은 잡년들의 ‘운동’을 ‘정지’된 이미지로 묶어 놓으려는 또 다른 반격자들입니다. 저는 쥐 그래피티 사건 때 이들 텍스트주의자들로부터 ‘그림 좋네. 메시지도 좋구’ 라는 지지를 받았지만 그런 텍스트 감정 속에서 그래피티 ‘행위’의 불온성이 망실된 것 같아 억울했던 적이 있습니다. 차라리 “새벽에 무리지어서 길거리를 쏘다니며 정부의 홍보포스터에 스프레이질을 하고 다니는 게 제정신 박힌 사람이 할 짓이냐?” 라는 공안검사의 말이 제 행위의 도발성을 간파한 것 같아 반가웠댔죠. 잡년들의 복장만 보고 그 길거리 난입의 공격성은 무시해 버리는 해석학자들과 ‘어이, 보기 좋은데!’ 라며 군침을 흘리는 수컷들의 차이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선전쟁의 전방과 후방이라는 위치 차이 말고는. 또한 잡년들의 “왜 꼴려? 건드리지 마. 내 몸이야”라는 말을 꼬투리 잡아 ‘몸을 사유화 한다’느니, ‘욕망의 타자성’을 모른다느니 하면서 심층심리학의 지식을 뽐내는 자들도 그 발화의 역학적 맥락을 무시한 시선공격자들입니다. 그들은 잡년들의 ‘생각’만 보려할 뿐 잡년들의 ‘운동’을 보려하지 않습니다. 이 마에나드, 잡년들의 행진대오는 현대차 비정규직 성희롱 사건을 항의하는 천막농성을 포괄했고, 홍대 거리에서는 브래지어를 엮어 만든 금기의 줄을 “꼬마야, 꼬마야” 하며 넘어 다녔습니다.

잡년행진은 수컷들과 벌리는 시선전쟁의 선전포고일 뿐입니다. 수컷들의 반격은 온갖 종류의 남근적 시선이 전장으로, 거리로, 공적 담론의 장으로 ‘아웃팅’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본격적인 전쟁은 이제부터입니다. 공격만이 최선의 방어임을 명심하고, 우방도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잡년 만세!

응답 4개

  1. 화무말하길

    나 이 글 퍼 가요~^^

  2. 말하길

    잡년 행진을 관심있게 지켜봤습니다. 어떤 면에서 유쾌하고, 또 도전적인 투쟁의 방법이었던 행진과는 별개로 이 글은 불편하기 짝이 없네요.

    행진을 하는 주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런 행진을 기획했다는 논설은 얼마든지 읽어줄 수 있지만, 행진을 둘러싼 여러 해석 방법을 놓고 당신들은 모두 틀렸고 폭력적이라고 주장하는 이 글이 설득할 수 있는 대상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 애기엄마말하길

      글쎄요. 제가 보기엔 이 글은 굉장히 중요한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살짝 충격을 먹었답니다. 시선의 역전이라는 정치성을 보지 못하거나 광화문에 난입하는 도발이 지닌 운동의 의미를 소거한 채 점잖은 텍스트 분석을 해대거나 문화주의로 희석해버리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은 정말 옳거든요! 해석가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를 잘 지적하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여하말하길

      행진과는 달리 이 글이 ‘폭력적’이라 불편하다는 말씀에 조금 의아합니다. 애기엄마 말씀대로 시선의 전복이나 운동성을 소거 내지 희석할 수 있는 해석에 대한 문제제기 같은데… 궁금해서 그러는데, 이 글에 대해 ‘폭력적’이라는 ‘단정’보다, 이 글의 문제제기=해석에 대해 좀 더 코멘트해주실래요? 석 님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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