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수유칼럼

이제, 깊은 땅 속에는 “불확실성”이 묻혀 있다.

- 신지영


– 3월 11일의 재해 이후 일어난 감수성의 변화 –

* 자연 재해는 땅 속 깊이 묻혀 있던 야만을 드러내고…

이틀 전 새벽 3시 54분. 후쿠시마현 하마토오리에서 리히트 규모 5강의 지진이 있었다. 크고 작은 지진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번 지진은 꽤 커서 도쿄도 리히트 규모 3 정도의 흔들림이 있었다. 자다 말고 온몸이 흔들려서 벌떡 일어나 TV를 켰다. 그때 머리를 스친 것은 쓰나미 뿐이 아니었다. “후쿠시마 원전은 괜찮을까!” 3월 11일에 일본 동북 지방에서 일어난 재해는, 자연과 과학에 대한 감각을 바꾸어 놓았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원전사고와 같은 인간재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은 땅 속 깊이 묻혀 있었던 과학의 야만성을 드러냈다. 우리가 오만하게 ‘안전’하다고 외쳐왔던 과학은 사실 자연의 일부였던 것이다.

서울에서 홍수가 났을 때 내 머리를 스친 것은 한국원전에 영향이 있거나 혹은 내가 모르는 오염물질이 역류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서울에서의 물폭탄은 대인지뢰를 드러냈다. 대인지뢰 설치는 한국 전쟁 때 미군이 중공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매설하면서 시작되어, 1961년 쿠바사태와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억지력의 일환으로 1988년까지 군부대 주변에 매설되었다. 서울에서의 천재지변은 땅 속 깊이 묻혀 있던 식민지 역사와 과학무기의 야만성을 드러냈다. 우리가 오만하게 ‘끝났다“고 생각해 왔던 식민지의 과거는 사실 언제든 폭발 가능한 과학무기를 품은 현재였던 것이다.

일본의 재해, 한국과 세계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천재지변은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천재(天災)는 인재(人災)이다. 원전 노동자나 삼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환경운동은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노동운동과 함께 이뤄져야 하며, 일상의 변혁까지 요구하고 있다. 형해화된 살풍경 속에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과학과 자연의 관계, 감추어지고 묻힌 과거의 차별과 고통과 다시금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만남은 과학과 자연과 음식과 예술과 지식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과 방향성을 요구하고 있다.

* ‘부흥’이 아닌 ‘복원’을 향해서: “피난할 권리”와 “폐기를 위한 기술”

6월 11일의 대규모 집회 이후, 7월 동안 대규모 집회의 움직임은 내가 아는 한 없었다. 그러나 3개월에 걸친 대규모집회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는 지속적인 연구회, 강연, 소규모의 자원봉사, 영화상영, 전시회 등으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는 눈에 띠는 현상이 있다. 정치적 활동들이 과학적 지식과의 연계를 절실하게 필요로 함에 따라 재야의 과학 연구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다카키 학교( 高木学校, http://takasas.main.jp/)라는 곳이 있다. 대중 편에서 활동했던 고인이 된 과학자 다카키 진자부로(高木仁三郎)가 플루토늄의 위험성을 세계에 알린 업적을 인정받아 받은 상금과 성금을 합쳐, 대중을 위해 일할 과학자를 육성하기 위해 세운 학교이다. 멤버는 연령 성별 분야 불문하고 매우 다양하다. 그룹별로 조사 연구 발표활동을 한 뒤, 성과를 시민강좌나 보고집, 소책자 등을 통해서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다카키는 생전에 “과학자가 과학자일 수 있는 것은 사회가 그 시대의 과학에 위임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과학자 자신이 노력하는 것을 통해서”라고 하면서 대중의 “불안을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내가 이 학교의 이름을 들은 것은 히토츠바시 교직원 노조에서 마련한 <원전재해라는 경험-피해지의 지금과 우리들>이라는 강연회에서였다. 6월의 teach-in@히토츠바시의 연장선상에서 준비된 강연회에서 다카키 학교 출신인 수미다 쇼이치로(隅田聡一郎)씨는 <은페된 내부피폭>라는 강연을 했다. 그는 <세이피스 프로젝트(SAY-PeacePROJECT http://saypeace.org/)>의 사무국장을 하면서 <방사선 피폭에서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리플릿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어린이들의 피폭을 막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원전은 핵의 평화이용”이라는 논리부터 비판했다. 후쿠시마 원전은 40년이 지난 노화된 원전으로, 다량의 핵폐기물과 핵원료가 보존되어 있어서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현재의 피폭측량에서는 내부피폭의 위험성이 간과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에서는 피폭량을 엑스레이 촬영등과 비교하곤 하지만, 이는 ‘외부비폭’만 고려한 발상일 뿐이다. 피폭된 직후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방사능은 고에너지로 한번의 피폭에도 DNA가 파괴되거나 파괴된 세포가 분열함에 따라 유전자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병을 발생시킬 수 있다. 특히 세포분열이 활발한 어린이들은 “방사선 감수성”이 어른보다 훨씬 높아 체르노빌 지역의 어린이에게서는 갑상선암, 백혈병, 급작스런 노화 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방사능 피폭량 기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에서는 ICRP(국제방사선 보호위원회)의 기준에 근거하여 연간 100미리시벨트를 이하면 안전하다고 하지만, 일본정부는 이보다 낮은 수치를 적용하기도 한다. 더구나 ICRP의 기준은 물리적 모델에 근거한 것으로 세포분열이나 분자생물학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더욱 심각한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은 기준이다. 예를 들어 ECRP(구주 방사선리스크 위원회)는 “국소적으로라도 강한 방사선을 가까운 거리에서 오랜 시간 반복해서 쬐면, 저선량일지라도 위험성이 높다”고 표명하고 있다.

실제로 적은 양이라도 음식이나 호흡기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체내에 농축될 경우 심각한 내부피폭도 예상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후쿠시마에서는 내부 피폭량을 재기 시작했지만, 요오드 등이 이미 반감기를 지나 체내에 피해를 주었더라도 측정되지 않거나 감마선만을 재고 있어 베타선을 발산하는 세슘에 대해서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다. 앞으로 25년 후의 건강상태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셈이다. 그는 개별적인 피난을 지시해 가난한 사람들이 피난할 수 없게 된 상황이나 피폭의 위험성이 있음에도 안전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정부를 비판하면서 “피난할 권리”를 신청하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방사능 개발 기술이 아니라 “폐기 기술”이라는 말로 끝맺었다.

또 다른 강연자였던 가토 요스케(加藤洋介)는 미나미 소마시와 이와키시에 자원봉사를 한 경험을 이야기 했다. 현재 미나미 소마시로 들어가는 도로는 복구가 되어 있지 않고 방사능에 대한 위험성 때문에 자원봉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행정측은 피폭에 대한 대책없이 급히 ‘부흥’을 외치며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두 강연을 종합해 보면, 정치와 과학의 벡터가 “과거->현재”로가 아니라 “현재->과거”로 변화해야 할 지점에, 우리가 서 있음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해야(탈원전) 할까? 아니면 원자력 ‘폐기’를 위한 기술(반원전)을 모색해야 할까? 혹은 ‘부흥’을 위해 나아가야 할까? ‘복원’의 정치를 모색해야 할까? 나아갈 미래도 불명확하지만, 돌아갈 과거도 없다. 단지 정치와 과학의 협업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현재를 통해, 미래 뿐 아니라 과거를 새롭게 상상해야 할 상황에 봉착했다는 느낌! 이것이 3.11 이후 품게 된 새로운 감수성이다.

* 다큐 <10만년 후의 안전>1: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예측불가능하다는 점 뿐이다.

재해가 일어난 뒤 3개월 이상 지나면서 예술적인 전시회나 다큐 상영회 등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중 에서 보급한 마이클 마도르센의 다큐멘터리 <10만년 후의 안전>은 시사적이다. 이 다큐는 방사능 폐기물 지하 저장고 <온칼로>의 건설과정을 다루고 있다. 플루토늄의 경우 반감기가 2만 5000년이다. 따라서 <온칼로>는 500미터 아래에 개미굴과 같은 터널을 뚫어 10만년의 세월을 견디는 지하건축물을 짓는다는 야심찬 기획으로 시작한다. 방사능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기엔 해수오염의 위험이 우주에 버리기엔 발사단계에서 폭발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18억년간 변함없었던 핀란드 오지에 저장고를 건설하게 된 것이다. 감독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자 “우리의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10만년 후의 안전> 다큐멘터리 포스터

영화는 10만년 뒤의 ‘너’에게 말을 걸며 진행된다. “너는 우리의 문명을 뭐라고 생각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관객들은 우리가 불과 100년 후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온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방사능에 대해서 뿐 아니라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전혀 계산할 수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을 떠받쳐 온 것은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이다. 온칼로 프로젝트 또한 10만 년 뒤를 과학이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해 있다. 그 믿음은 하룻밤의 꿈 보다도 허약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예측가능한 과학에 대한 믿음을 너무 깊이 전제해 버렸고, 이제는 그 시작을 물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와 버렸다. 그 과정에서 과학 뿐 아니라 과학에 대한 믿음까지 만들어냈던 것이다. 따라서 과학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이미 과학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버린 듯하다. 예를 들어 전세계 방사능 폐기물량은 20만톤~30만톤 사이로 추정되고 더 늘어날 전망이다. 방사능의 위험성은 전쟁에 의한 피해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무색 무취 무촉감이다. 인간의 감지능력을 넘어선 유해물질이다.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 다루더라도 그것을 관리하는 인간이 필요하다. 즉 오염되는 사람이 꼭 발생하게 되어 있다. 첨단의 과학이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과학이다. 이 인간적인 과학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방사능이라는 불을 만든 인간의 손으로 방사능이라는 불을 폐기할 수밖에 없다. 최초에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던 것처럼.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 폐기를 위한 기술에 대해서도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이것,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뿐이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 온칼로는 인간없이 작동하면서 10만년을 견딜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건설중이다. 그야말로 과학의 예측불가능성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측불가능한 것이 있음을 속속들이 드러내야만 합니다.”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오랜 옛날 사람은 불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다른 생물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를 정복했다. 어느 날 새로운 불을 발견했다. 꺼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불이었다. 사람은 우주의 힘을 얻었다고 기뻐하며 빠져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새로운 불에 파괴력이 있음을 알아챘다. 대지와 생물을 불태워 죽일 수 있었다. 자신의 어린아이나 동물, 작물까지 재로 변했다. 사람들은 구원받길 바랐지만 구원은 없었다. 그리고 지구 깊숙이에 매장실을 만들었다. 불은 그 장소에서 인간이 모르는 영원한 잠에 든다.”

# 다큐 <10만년 후의 안전>2: “방사능”을 잊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온칼로>는 ‘숨겨진 장소’라는 뜻이다. 인간이 접근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장소이다. 온칼로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곳을 밀봉한 뒤에는 그 저장고의 존재를 인류가 잊고, 그 위에 생물이 자라고 사람들이 자손을 낳고 살아가길 바란다. 6만년 뒤에 빙하기가 올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때에는 모든 것이 소멸할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누군가 이 금기의 저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면? 따라서 인간은 10만년 이후의 인간들에게 이곳의 위험성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과 책임자들은 고민을 시작한다. 그 미래의 인류는 과연 방사능을 알고 있을까? 우리의 언어를 이해할까? 우리보다 더 진보한 문명일까 후퇴한 문명일까?

그들의 의견은 두개로 나뉜다. 하나는 핵폐기물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언어가 아닌 해골 표시나 뭉크의 <절규>와 같은 그림으로 표시하고 저장고 속에 도서관을 두어 자세한 설명을 전달하는 것이다. 반면 아무런 표시도 해선 안된다는 의견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간다. 그러한 경고문구가 인간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이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피라미드를 파헤쳤듯이, 인간이 수많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방사능 물질을 개발하고 사용해 왔듯이. 인간의 호기심.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의 실존적 근거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미래에 전달해야만 하는 메시지는 “그곳에 가지 말라”도 아니고 “그곳은 위험하다”도 아니다. 오직 “그것을 잊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인류가 미래의 인류를 위해 할 것은 오직 “망각을 위한 숨겨진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노래하듯이, 이제 땅 속에는 보물이 있지 않다. 지구의 땅 속 깊이에는 핵폐기물이, 인간의 호기심이, 파괴의 불이, 불확실성이 잠들어 있다. 이 현실은 신화와 전설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바꾼다. 어쩌면 보물과 금기에 대한 전설이나 신화란 이렇게 예측불가능한 인간의 호기심에 대한 경고가 아니었을까? 거꾸로 핵폐기물이 10만년 이후 공포스런 보물이 될 가능성은 없는가? 마치 우리시대에 발굴된 피라미드처럼. 호기심 덩어리에다 예측불가능한 인간에게 보물이란 드문 것, 금지된 것, 감춰진 것이다. 금기와 호기심의 미묘한 콘트라스트 속에서 보물과 신화와 전설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문명은, 우리의 호기심은, 그야말로 최악의 보물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미 발생한 방사능 폐기물을 유해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10만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 유해함과 무해함의 기준도 불과 인간의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만든 인간의 유해한 과학조차도 앞으로 100년 이상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라늄의 양은 한정되어 있고 폐기물의 처리방법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작 10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원자력 에너지를 위해서 10만년의 미래를 불안 속에 밀어 넣다니! 10만년 이후의 인류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핵연료 폐기물관리회사 과학편집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상으로 돌아가 우리들보다 좋은 세계를 만들어 주세요”

* 집단지성은 집단적 감수성의 변화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일본에서는 현재 정치와 과학이 시민레벨에서 결합하고 있다. 이는 집단적 감수성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징후를 일 코먼즈라는 활동가와 젊은 아티스트가 함께 기획한 「아토믹 사이트(アトミックサイト)」전에서 느꼈다. 이 전시는 대중감성의 조직방식이 미래적이다. 전시 포스터에는 몇 가지 주의 표시가 있는데 이것이 우리의 표현욕구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입장 무료, 지원금 없음, 전관 냉방 없음, 정부를 신용하지 않기 때문에 1W도 절전하지 않습니다, 미디어를 신용하지 않기 때문에 매스컴 선전 안합니다, 카메라 비디오 촬영 및 U-STREAM(트위터 생방송)배포, 모두 가능합니다”

<아토믹사이트> 전시장 전체 모습

<아토믹 사이트 전시> 중 서브컬쳐

전시장소는 전기차단용 고무장갑 고무장화를 생산하던 공장을 개조한 것이다. 고무장갑 등은 전기 전력 노동자가 보수나 점검을 할 때 몸을 지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장비이다. 회사 이름은 주식회사 죠우토 제작소( (株)城東製作所). 도쿄 전력이 원전을 시작한 전후 부흥기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가동된 공장으로 일본의 각종 대표적인 전력 전기회사에서 사용되었다. 이 장비들은 전기 전력 노동자들의 안전을 전혀 지켜주지 못했음이 명확해졌지만.

전시장에는 공장처럼 큰 선풍기가 돌아가고, 창고와 연결되는 야외 통로엔 데모 영상이 반영되는 비디오와 죽은 새, 멈춘 시계, 인형 등으로 장식된 신전이 있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개비가 돌거나 디스플레이가 변형되곤 해서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 신전에는 전후 일본에서 사용된 간호복을 입은 여성 마네킹이 잔뜩 늘어서 있고, 어린아이들의 죽음이나 장애아를 상징하는 듯한 바람개비에 태어나서 미안하다는 문구 등이 적혀 있었다.

후쿠시마에서 온 흙 위에서 5.64시벨트를 가리키는 방사능 측량기

<아토믹 사이트> 전시 통로에 있는 신전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것은 인간의 감각이 감지할 수 없는 방사능 수치, 일상 생활 속에 파고든 방사능에 대한 감수성, 감추어진 방사능 개발의 반세기 등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전시를 열정적으로 설명해주는 스탭 덕분에 방사능 측량기를 들고 여러 곳의 방사능 수치를 재볼 수 있었다. 평범한 흙에서는 0.6~1.0 미리시벨트를 기록하던 기계가 후쿠시마에서 가져온 밀봉된 흙 위에 갖다 대자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엄청난 경고음을 쏟아냈다. 수치는 5.6미리시벨트. 창고로 가니 일본의 만화, 소설, 음악 등의 서브 컬쳐가 방사능을 어떻게 형상화했는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반원전 운동의 흐름도 함께 늘어놓았다. 아키라 등의 익숙한 만화를 비롯, <심슨 가족>의 심슨도 원자력 발전소 노동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원전 기타>라는 작품은 방사능이 검출될 때마다 기타줄이 튕겨져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그 외에도 ‘절전’을 외치는 국가 캠페인에 대해서 절전이 반원전이나 탈원전과 직접 연결되지 않음을 보여준 작품도 눈에 띠었다. “끝나지 않는 이상한 일상을 직시”할 수 있었다. 이 전시는 일상과 감각의 레벨로부터 반원전이나 탈원전의 감수성을 느끼게 하려는 시도였다.

Kraftwerk가 부른 를 기억하는지?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될 당시에는 방사능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없었다.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을 겪으면서 방사능에 대해 비판적인 가사가 포함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반핵노래로 감동을 주었다. 과학은 예술에 변화를 야기하지만, 예술이 그 과학에 대한 감수성을 자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 우리 내부의 과학과 “지하”의 깊이.

이광수는 <무정(1917)>에서 플랫폼의 열차소리와 일본인들의 게다(일본전통 나막신) 소리를 듣고 그것이야말로 문명의 소리라고 흥분한다. 조선에는 아직 그 소리가 없지만 앞으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1917년의 이광수에게는 자연에 직선의 길을 뚫는 열차와 식민자의 발자국인 게다소리가 ‘문명의 소리’였다. 이처럼 일본과 한국과 같은 동양권에서 문명과 과학은 ‘외부에서 들어온 신기한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문명에 대한 동양의 열등감과 분함 만큼이나 그것들은 동양인들의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해 진보를 향해 내달리게 해왔다. 반면, 그것은 “외부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과학과 문명에 따르는 피해와 책임은 ‘외부’에게로 미뤄지기도 했다. 나쁜 것은 외부일 뿐 우리가 아니란 논리였다. 그러나 이광수가 열광했던 문명의 소리는 일본의 자연재해 속 원전사고, 한국의 홍수 속 대인지뢰라는 형태로 우리 속에 묻혀 있던 야만성을 드러냈다. 과학과 문명의 야만은 이 땅 깊숙이 묻혀 우리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외부에서 온 것들과 함께 미래를 만들며 과거를 수선해, 음식과 예술과 신화와 전설과 마을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때에 봉착했다.

이번 재해 이후, 적어도 일본에서는 자연과 음식과 공기와 공동체의 시공간과 예술에서, 예측할 수 없는 과학의 불안이 깊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정치와 과학, 예술과 과학의 밀접한 관계는 대중지성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감수성으로 전환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도쿄가 아닌 지역에서 단지 ‘외부’의 활동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래서 역시 나는 그 마을에 가봐야겠다고, 온칼로의 깊이로, 지하 깊숙이 내려가 봐야겠다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것이다.

응답 2개

  1. 낙타말하길

    오! 이경씨 오랜만. ^^ 환경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예요.
    좋은 활동 많이 많이 하시고 가끔 이야기 들려 주세요!

  2. 이경말하길

    글 잘 읽었습니다. 일본이 어떤 분위기인지 몇몇 사이트를 번역기로 돌려가면서 드문드문 보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친구들과 녹평 읽기를 계속 하고 있는데요 8월부터는 기존에 진행하던 세미나를 하되 일본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시작하기로했어요. 이 글과 링크 시켜놓은 곳들 많이 참고할게요.
    일본을 갈까 말까 하고 있는데 방사능의 불안감때문에 계속 주저하게 되네요.. 도쿄에 계신 것 같은데 건강 잘 챙기시구요!

댓글 남기기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