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법정르뽀. 장자연과 ‘조선일보 방사장’은 관련이 없는거야, 있는거야?

- 황진미

<사건번호 2011 고합 315> 이종걸의원이 조선일보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2009년 조선일보사는 이종걸의원이 국회대정부질문 도중, 장자연 리스트에 조선일보 방사장이 연루되었다고 실명 공개하여 회사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며 형사고발하였다. 명목은 명예훼손이나, 장자연 리스트와 조선일보 방사장의 관계를 묻는 흥미진진한 사건이다.

장자연 사건이라. 하도 의혹도 많고 카더라 통신도 많아, 어디까지가 공식 확인된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루머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왠지 다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복습. 2009년 3월 7일 장자연 사망하였다. 3월 8일 전 매니저 유장호는 그녀가 유력인사들에게 술시중과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친필문건이 있음을 미니홈피에 공개하였다. 3월 10일자 조선일보 박은주 엔터테인먼트 부장이 9일에 유장호를 만나 친필문건을 확인하였고, 서명과 주민번호와 지장이 찍혀있다는 기사를 썼다. 12일 경찰은 단순자살로 종결하였지만, 13일 KBS 9시 뉴스에 친필문건이 있다는 보도가 나갔다. 보도 후 경찰은 전면재조사 방침을 밝혔다. 인터넷에는 장자연 친필문건에 언급된 사람들의 명단이 돌았다. 친필문서에 ‘조선일보 방사장’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는 말이 쏟아졌다. 3월 17일 장자연의 오빠가 조선일보 방사장을 성매매특별법 위반혐의로 경찰에 고발하였다. 경찰은 4.3일 기자브리핑에서 실명 공개하겠다고 밝혔다가 몇 시간 후 입장을 철회하였다.

#‘조선일보 방사장’을 언급하면 무차별 고소고발

4월 6일 이종걸 국회의원이 국회대정부질문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장자연 리스트에 조선일보 방사장이 포함되어 있어 수사가 되지 않고 있으며, 조선일보의 압력으로 실명 보도되지 못하고 있다는데, 이를 아느냐”고 물었다. 조선일보는 즉각 경영기획실장 명의로 이종걸 의원에게 항의서한을 보냈다. “00일보 0사장은 아무 관련이 없으며, 실명거론으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니 즉시 사과하고 손해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종걸 의원실은 조선일보의 오만함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글을 포털 게시판과 홈페이지에 싣고, 조선일보 항의서한을 공개했다. 조선일보는 국회기자실에 “발언은 사실무근이며, 명예훼손에 해당되니, 보도자제를 요청한다”는 공지문을 돌리고, 포털에 이종구의원의 글에 임시차단조치를 요청하였다. 그밖의 포털 관련게시물 약 300건도 삭제요청하였다. 한 달 뒤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에 조선일보 방사장을 언급한 것이 문제 없다고 판결하여 복구조치되었다. 그러나 이미 발언 4일 만인 4월10일에 조선일보사는 이종걸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였다. 이와 별개로 조선일보사와 방상훈사장 명의로 각각 5억원씩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또 올해 이종걸의원이 국회본회의에서 자유발언 한것에 대해서도 명예훼손혐의와 20억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2009년 당시 <100분토론>의 면책특권에 관한 토론에서 ‘조선일보 방사장’을 거명한 이정희의원에게도 형사고발과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KBS, MBC, SBS, 서프라이즈, 프레시안 등 언론사와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대표와 안티조선 등의 단체에 대해서도 형사고발과 거액의 손해배상이 가해졌다.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경찰수사는 이루어졌지만, 4월23일 딱 한번 경찰이 방사장의 집무실로 찾아가 조선일보사 직원들이 많이 있는 가운데 35분만에 조사를 마쳤고, 다음날 ‘조선일보 방사장은 혐의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2009년 8월, 검찰은 방상훈 사장을 무혐의 불기소 처분 하면서, 장자연 문건에 ‘조선일보 방사장’이 기재된 것은 <스포츠조선>의 사장 하모씨를 오인하여 생긴 일임을 밝혔다. 조선일보는 2011년 의혹이 다시 확산되자 이를 크게 보도하였다. 2010년 11월 장자연의 현 매니저 김종승은 장자연에 대한 가혹행위로, 전 매니저 유장호는 김종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각각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선고받았다.

# 수사가 잘못되었음이 밝혀지고, 은폐된 사실들이 조사되어야 합니다!

2011년 7월 25일, 1차 공판이 벌어지는 법정은 방청객으로 꽉 들어차, 바닥에 앉거나 선 사람들이 즐비했다. 유상재 재판장과 배석판사들도 약간 놀라는 분위기였다. “다들 어디서 오신 분들이세요?” 판사가 물으니, “우리는 이종걸의원을 지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렁차게 대답한다. 3선의원이니 지지자가 왜 없겠는가? 둘러보니 지역구에서 온 분들도 있었고, ‘언소주’나 안티조선 사람들도 꽤 많이 보였다.

검사는 기소요지 설명을 화면으로 프레젠테이션 하였다.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3월 장자연 사망, 유장호의 문건폭로, 언론의 문건 확인 보도, 경찰의 수사착수, 8월 방상훈 사장 경찰의 무혐의 처분까지 날짜별로 짚어 내려갔다. “09년 3월에서 4월, 근거 없는 루머확산으로 언론은 실명보도를 자제하며 ‘유력 언론사 대표’등으로 대체해왔는데, 이종걸의원이 대정부질문도중 ‘조선일보 방사장’이라고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실명 거론하여….조선일보 경영기획실장 명의로 항의서한을 발송하였으나…..인터넷에 게시하고 댓글을 방치하여…..허위사실임에도 퍼 날라지고 비난 댓글이 폭주…….성상납과 술접대를 기정사실화하여, 신뢰가 생명인 언론사의 명예를 훼손… 5달의 경찰수사 결과 방상훈 사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밝혀졌고….피해자의 소명요구와 사실 확인 없이 인터넷 등에 반복적으로 개시하여 허위사실임을 인지하고도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훼손에 해당됩니다.”

이에 이종걸의원이 직접 답변한다. “장자연의 유서에 조선일보 방사장이 많이 거론되었고, 당시 취재기자 대부분은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대정부질문당시 거대한 권력 앞에 수사와 실명보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한 국회의원으로서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자연 오빠의 고소로 조선일보 방사장은 이미 수사의 초점이 되어있었고, ‘조선’과 ‘방’이라는 글자만 없었을 뿐, ‘유력언론사의 사주’, ‘거대언론사의 사장’등으로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검경수사가 오락가락하여 경찰작용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대해 행안부장관에게 대정부질문을 하면서, ‘00일보 0사장’이라고 칭한다면, 질문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 공개되다시피 한 조선일보 방사장의 술접대와 성접대 사실을 접한 저로서는 방사장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수사기관에 물어볼 수도 없어 가깝게 지내던 언론사 기자를 통해 문건을 보았고,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 기자가 누구인지 검찰이 알려 달라 하였지만, 본인이 원치 않아 밝힐 수 없습니다. 제가 본 문건이 원본인지 사본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아마 사본인 듯 하며, 당시 보기만 했을 뿐 보관하고 있지 않습니다…문건의 진위여부는…재판과정을 통해 밝혀질 것입니다…경찰과 검찰은 00의 황제라고 알려진 권력 앞에 무너졌습니다.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부디 공정한 재판이 되어서, 수사 작용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지고, 정당한 사법 권력이 바로잡아지고, 은폐된 사실들이 조사되어야 합니다. 죽음과 젊은 영혼 앞에 떳떳해져야 합니다.” 큰소리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판사는 신성한 법정에서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변호사는 ‘이종걸의원에 대한 방어뿐 아니라, 지금까지 법이 해결하지 못한 의혹을 해소하는 법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검찰은 허위사실의 적시이고, 방사장과의 관련이 없음이 수사결과 밝혀졌다고 말했는데, 4월23일 한차례 방사장의 집무실에서 30분간 조사하고 종결한 것이 충분한 수사인지, 국민의 입장에서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며 보강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판사는 요지를 4가지로 요약했다. 1. 면책특권의 범위, 2.허위사실의 유포인가 단순한 의견 제시인가, 3. 허위사실에 대한 인식과 구체적 적시가 있는지, 4. 공적관심사와 국민의 알권리차원에서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되는지 이다. 판사는 휴정을 선언하였다. 항의서한을 보낸 강효상 당시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장과 직원 최모 기자의 증인심문이 이어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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