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시위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

- 맹찬형(연합뉴스 제네바 특파원)

7월 21일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유엔 기자실에서 급한 기사들을 대충 마무리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려고 했지만,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다.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시위대가 기습적으로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 담장을 넘어서 구내에 진입해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자동으로 모든 문들이 차단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시위대가 기습적으로 진입했다는 곳에 가보았다. 평소 유엔 유럽본부 출입문 앞 광장의 명물인 부러진 의자(Broken Chair) 주변에서 중동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매일 개최하던 아랍 청년들과 유럽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 활동가 등 약 40여 명이 그날은 철문을 타고 넘어 들어와 수건만한 크기의 작은 깃발과 플래카드를 펴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권총을 찬 유엔 경비들이 4~5명 정도 눈에 띄기는 했지만, 아무도 시위대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무려 3시간 이상 시위대는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자신들의 주장을 목청껏 쏟아냈다.

한국 상황에 익숙한 나로서는 당연히 방패를 든 진압경찰이 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들이 자진해서 해산할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습시위로 출입문들이 자동으로 차단되면서 유엔 구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유엔 직원들과 각국 외교관들은 시위대가 해산하기를 기다리면서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잡담으로 시간을 때웠다. 모두가 불편을 느꼈지만, 불평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냈지만 도무지 해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기자실의 내 책상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옆자리에 있는 74살의 베테랑 기자 피에르에게 ‘이런 일이 자주 있느냐’고 물어봤다. 한국 같았으면 진작 진압경찰이 와서 강제 해산을 시켰을 것이라는 말도 보탰다.

피에르의 답변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있는 일이다. 기초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유엔으로서는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강제 해산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피에르는 “시위대는 크게 처벌받지 않겠지만, 경비 책임자는 아마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시위는 계속됐고, 약속이 있었던 나는 마냥 기다릴 처지가 아니어서 결국 2 미터 높이의 기자실 창문을 통해 잔디밭으로 뛰어내리는 퇴근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혹시나 현지 언론에 보도됐나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아예 언급이 없었다. 현지 기자들에겐 기사거리도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목요일 오후 유엔 구내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보면서 2010년 가을 서울에서 열렸던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행사장 주변의 과잉 경비 논란이 떠올랐다. 그때 현장에 배치됐던 수많은 경찰들이 지키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요즘도 여전히 서울에서는 진압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에 관한 기사들이 드물지 않다. ‘가스통 할배’들의 활극은 이미 식상한 수준이고 심지어 보수 민간단체들이 경찰들이 외면하는 사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에 대한 폭력을 행사했다는 보도가 있다.

물론 시위를 통해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정당한 주장을 하더라도 법규는 준수돼야 하는 게 맞다. 이는 중동 민주화에 대한 유엔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던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유엔 담장을 넘는 ‘불법’ 행위를 한 이들의 모습은 그 다음날부터 ‘부러진 의자’ 주변에서 보이지 않았다. 사전 신고한 집회 형식의 범위를 현저히 벗어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유엔본부 앞에서 집회를 열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있고 이를 어기면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러니 평화적인 방식으로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을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진압해야 할 이유와 실익이 과연 있는지 의문이다.

국가가 가진 물리적 힘을 과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이 의사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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