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전문직

- 김민수(청년유니온)

낮에는 밥 빌어 먹으려고 커피숍에서 노가다 뛰고, 저녁에는 청년유니온 활동을 병행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 언론사 인터뷰를 덤탱이 쓰게 된다. 미디어와 언론은 청년들의 처절하고 비참한 현실에 대한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하다보니 청년유니온에 잦은 의뢰를 넣고, 유니온 안에서도 마땅한 케릭터가 없다보니 만만한 녀석을 재탕 삼탕 우려먹는 식이다. 최저임금 받는 커피숍 노동자라는 케릭터도 그 중 한 가지로 우려 먹히는 중이고… 불쌍한 청년으로 얼굴, 이름 팔리는 건 별 신경 안 쓰지만 출연료라도 챙겨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주 된 인터뷰 내용은 뻔하다.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냐, 최저임금 받으며 생활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냐, 밥은 먹고다니냐 (응?) … 그리고,

‘혹시 공부를 해서 (스펙을 쌓아서) 더 나은 직장을 가져보고 싶단 생각 안해요? 전문직이라던지… 좀 더 안정적인 직장 말이에요.’

사실 자주 듣는 질문도 아니고, 맥락 상 전문직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하게 쓰인 문장도 아니지만 기왕 말 나온 김에 전문직에 대한 삐딱한 고찰을 조금 떠들어 볼란다.

-우선, 전문직에 대한 사전적 설명이다.

[명사]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직업.

위의 명제에 부합하는 직업들을 몇 개 읊어보련다. 허준으로 빙의 -한의사? 학생들 학점 쥐락펴락하는 교수? 세테크의 지존 격 되시는 세무사? 박카스를 슈퍼에서도 판매할까 두려울 약사? 포스트 주커버그 IT기술자? 삼권분립의 카르텔 사법패밀리? …

좋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 직업은 대체 무엇인가? -다시 말해 ‘전문직’으로 분류할 수 없는 직업은 무엇인가?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면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잘게 쪼개면 가짓수가 3자리에 이를 음료와 베이커리의 레시피를 외우는 일은 이미 전문 지식의 영역이다. 밀려 오는 주문서를 해치우기 위해 암기 된 레시피를 구현하는 일은, -잘 모르는 사람이 곁에서 보아도 ‘전문기술’의 영역이다. 단체주문 들어 온 12개의 팥빙수를 약간의 팀워크와 결합하여 10분 안에 ‘제작’해서 나간다던지, 오른손으로 주문을 받고 왼손으로 스티밍을 구현하는 스킬은 분명,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하다.

편의점은 어떠한가. 초성발음만 듣고도 가짓수를 헤아릴 수 없는 담뱃값의 틈바구니를 헤집는 능력은 우선 짚고 넘어가자. 주문을 확인하고, 멤버쉽 카드의 소유 여부를 물으며, 정확한 양의 동전들을 엄선하여 거스름을 치르는 일련의 동작들을 통해 계산 대기줄을 줄이는 솜씨는, 아무나 와서 바코드 집는다고 해낼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언더 그라운드의 힙합퍼들을 연상 시키는 언어의 빠르기로 팝콘 판매에 임하는 영화관 직원, 그 단단하기가 돌을 연상시키는 아이스크림을 치대어 손목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담아내는 점원, 공장제 수공업의 정수를 보이며 패티와 빵을 조합하는 패스트푸드 직원, 한 번의 동선으로 10인분의 식기를 수거해오는 홀서빙 담당, 인간의 한계에 부딫치지 않기 위해 몸동작의 최소하를 구현하는 택배 상하차…

다시 한 번 묻는다. 이들 중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이는 누구인가?

꼴통들은 물론이거니와, 소위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큼 안다는 이들조차 ‘알바’ 혹은 ‘용돈벌이’로 폄하하기 십상인 저들은 모두 -전문직 종사자이다.

‘알바’와 ‘전문직’의 간극은 종이 한 장이라는 수식어도 과분하다. 이 땅에서 입에 풀칠하기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은, 스스로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대체 할 수 없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노동하는 모든 이들은 스스로의 전문성에 근거하여 ‘자존감’을 간직해야 함이 마땅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상투적인, 그러나 진리치가 매우 높은 화두를 다시 꺼낸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이 땅의 모든 노동이 존중받아야 함은 너무도 지당하다.

응답 3개

  1. 딜레마녀말하길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노동의 신성함이나 가치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직업이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전문직과의 비교자체에는 어폐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전문직과 단순노동과의 구분은 불필요해질테니까요. 카페에서나 편의점에서의 알바가 암기력이나 일에 대한 센스나 스킬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누구나 왠만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단기간에 배울수 있어서 전문직이라고 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전문직이 창출되려면 어떤 일에 대한 계통적인 체계나 공적인 책임과 더불어 권한이 있는 사회의 인정이 있기 때문에 부여된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노동이 일로서 존중되어야 마땅한 것처럼 그 노동을 하기 위해 투자하고 준비된 시간과 노력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전문직의 개념이 아닐지. 모든 일이 중요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2. 조르바말하길

    언젠가 어려운 이공계 지식을 동원해 일을 하는 친구와 ‘전문성’을 두고 비교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실제 그 자신이 지금 직장을 들어가기까지 공부한 영어 성적, 학과 공부를 통해 얻은 전공 지식을 통해 지금 일을 해나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글 쓰는 일을 하는 저에게는 전문직이라고 부를 수 있더라도 자신의 전문성이 저의 전문성보다 높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그 일에 해당하는 전문성을 가진다는 것에 십분 동감합니다. 그래도 사실 궁금한 것이, 각 직종마다 그 심화도가 다른 ‘전문성’이 임금 책정과 노동자 처우의 기준이 되는게 마땅한지 자꾸 헷갈립니다. 노력한만큼 더 얻고 더 대우받는게 당연하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그 친구 의견대로 전문성이 덜하다고 해서 더 낮은 처우를 받아도 된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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