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선곡표

여름의 한 가운데

- 신현주(수유너머N)

‘이제 그만 쫌!’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끊임없이 비가 오는 날의 공기. 그리고 아주 강렬한 햇빛이 아니라 온몸을 둘러싼 열이 있는 공기.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모든 여름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시간을 흘려보낼 땐 무덤덤하게 나와 내 주위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이 생각난다.

내가 바라는 나 – 김종환, 유희열(Hwantastic Friends, 2009)

절제된 화성과 덤덤한 목소리가 슬픈 화성과 애절한 목소리가 더 외롭고 서늘하다.

이승환의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 3집 정규 앨범 “휴먼(타이틀은 ‘천일동안’)”에 수록된 ‘내가 바라는 나’는 그저 슬프게만 들린다. 하지만 이승환의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Hwantastic Friends에 수록된 ‘내가 바라는 나’는 유희열의 편곡과 넬의 김종환의 목소리로 조금 다른 더 가라앉은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음향와 김종환의 과잉된 감정을 모두 빼고 잦아드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아프게 들린다.

그대는 나즈막히 – 루시드 폴(레 미제라블, 2009)

겨울의 온기를 상상해 본다.
‘난 아무 말 못 하고 두터운 목도리를 말없이 벗어준 채 돌아서지만’

루시드 폴의 4집의 수록곡인 ‘그대는 나즈막히’는 언제든 날 떠나도 된다는 연인의 말에 그런 말 말라며 옆에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말없이 목도리를 벗어주는 가사의 로맨틱한 곡이다. 겨울의 예쁘게 떨어지는 눈과 따뜻한 가로등 불빛이 상상이 되는 잔잔한 기타와 드럼 소리가 참 좋은 곡이다. 겨울에 그리워하게 될 따뜻한 온기를 상상해 본다.

혼자만의 겨울 – 강수지(Ks’s First Single For You, 1995)

아무리 그래도 겨울 노래.

강수지 특유의 깨끗하고 맑은 음색은 하얀 눈을 떠올리게 한다. 종소리를 연상시키는 반주와 세련된 윤상의 곡은 겨울이면 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하지만 이 곡은 원곡을 넘어서는 리메이크는 아직 없었다. 요즘 겨울 하면 스키나 스노보드 또는 루미나리에 같은 화려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게 되지만 이 노래가 발표되었을 적의 조용히 내리는 눈과 동네 구석구석의 소형 레코드가게에서 흘러나와 길거리에 퍼지던 음악의 낭만적인 겨울을 추억해 본다.

응답 1개

  1. 방콕녀말하길

    창문 활짝 열어두고 들었어요.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이 방안에 앉아 컴퓨터화면만 바라보다 문득 생각나서 들어왔다 새 글을 발견하고 잠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음악에 빠져보았어요. 열린 창문으로 바람도 이따금씩 들어오고 매미소리도 싫지만은 않네요. 나즈막한 노래소리를 들으며 찬바람이 부는 겨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 더윈 참을만하게 느껴지네요. 하긴 어느새 입추도 지나갔다니….뜨거운 햇살도 얼마 안 남았네요. 선선한 선곡이었어요. 땡큐!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