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중국식 룰렛

- 홍진

내가 살고 있는 중국 대련의 개발구 지역은 30년 전만 해도 허허 벌판이었다고 하는데, 매년 변하는 도시의 뚜렷한 경계선이 급격한 난개발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답답한 잿빛 빌딩들을 벗어나 자전거를 타고 30분만 달리면, 갑자기 구멍가게 하나 없는 가난한 어촌 마을이 나타난다. 해안가에 산처럼 쌓인 조개껍데기 무덤에서 킁킁거리며 거친 삶의 비린내를 맡고, 저물어가는 해를 뒤로 뉘엿뉘엿 그물을 손질하는 늙은 어부들의 움직임을 훔쳐보다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퇴화하던 송과선(영화 <지옥인간>에 나오는 제 3의 눈)이 다시 꼬물거린다.

대련에서 살던 첫 해, 산책 삼아 몇 번 찾아갔던 단골 어촌 마을은 2년 전에 이미 사라졌다. 어디에나 새로 생기는 공사장 주변, 흙을 가득 실은 커다란 덤프트럭의 행렬을 보며 어촌 마을들은 어디로 갈까. 센트럴 파크의 오리들은 겨울에 호수가 얼면 실내 사육장으로 옮겨진다던데. 라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그냥 침을 퉤 뱉었다. 주말이면 재래장이 서던 정겨운 골목들도 당연히 함께 뒤엎어져 버렸다. 쓸쓸하게 아름다운 해변들은 대대적인 공사를 마치고 못생긴 시멘트 아파트 단지가 되거나, 좀 더 부자들을 위한 맨션의 전용 해변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며칠 전엔, 지난 3년간 계속 뚝닥거리더니 이제 얼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바닷가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층마다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급 맨션 단지가 바다 풍경을 터억하니 가리고 있었다. 극장에 갔는데 아프로 파마를 하고 긴 허리를 꼿꼿이 핀 남자가 앞자리에 앉은 것 같은 답답한 모양새다.

해변을 따라 수없이 늘어선 각 건설회사의 고급빌라들은 황당하게도 다들, 유럽식 저택을 흉내 내고 있다. 이오니아인지 코린튼지, 아무튼 그리스 건축에 등장했을법한 기둥들의 짭퉁 버젼과, 프랑스 궁궐에 있었을 법한 로코코 스타일의 화려한 분수. 게다가 위협적인 규모의 정문 앞에 커다란 입을 벌린 사자 동상까지. 유럽 건축 양식에 대한 조금의 이해도 없는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유럽의 귀족들이 살 법한 저택에 대한 조악한 이미지를 끄집어 내 구현해 놓은듯한 황망한 풍경이다.

새로 지어, 아직 분양조차 다 되지 않은 맨션 단지의 정문 앞 단상위에 번득이는 제복을 입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경비 아저씨 옆으로 나귀가 모는 수레를 끌고 지나가는 아저씨의 까맣게 탄 등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그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디자인의 건물들이 이미 자신의 목적을 충분히 구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애당초 미학적 목적 따위는 없었다. 단지, 으리으리해 보이는 여러가지 컨셉의 짜깁기를 통해 구현하고자 한 건축적 효과는 ‘불편함’ 이었던 것이다. 저택 앞을 지나갈 평민들은 불편해야 한다. 그러한 위축의 효과를 통해서만 분할선은 뚜렷해지고 저택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은 귀족으로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련엔 신흥 부자들이 많다고 한다. 수많은 벤츠와 아우디, BMW들이 차도를 쌩쌩 달린다. 대부분 갑자기 돈을 번 벼락부자들이다. 이제 부자를 넘어, 귀족이 되고 싶은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예쁜 해변들마다 울타리가 둘러쳐지고, 저택이 지어진다. 한편, 그 저택들의 건설과 조경을 위해 일하는 건, 많은 수의 농민공들이다. 모르긴 모르지만, 이제는 없어진 어촌마을에 살던 사람들도 많은 수 이미 타지에 가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내몰린 후 자신은 결코 살아보지 못할, 다 짓고 나면 근처를 얼씬거리는 것도 불편할 집을 짓는 동안, 그들은 기이한 풍경의 일부가 되어 벗은 웃통에 땀을 흘리며 자재를 나르고, 옹기종기 모여 삼원 짜리 밥을 먹는다. 우아한 곡선을 흉내 낸 담장 위로 살벌하게 전기가 흐르는 전기담장을 둘러치는 것도, 모든 건물의 벽에 번득이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도 검게 탄 마른 몸의 농민공들이다.

비교의 대상으로서의 평민을 요구하는 동시에, 감시카메라와 전기담장으로 그들을 분리하고 경계해야만 하는 데에 중국식 귀족-되기의 위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충분히 취향을 갈고 다듬은 미국이나 유럽의 진퉁 귀족들은, 이제 평민들의 시선 따위를 갈구하지 않으며 평민들은 감히 출입할 수도 없는 고급 주택지로 숨어들었지만, 이제 막 분할선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국에서는 그 선들의 경계를 따라 혼돈과 날 선 긴장감 또한 섞여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마을 옆에, 재래시장을 밀고 세운 짭퉁 베르사이유 궁전은 혁명을 부를지도 모른다.

커다란 다리가 꿰뚫고 지나간 한 작은 어촌마을은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어부들은 고급 승용차들이 달리는 다리 밑 샛길로 여전히 고기를 잡으러 간다. 어울리지 않는 오브제들을 모아 놓음으로써 얻는 미학적 효과를 그로테스크라고 하던가. 불편함을 강요하는 집에 행복을 가장하여 들어간 중국식 귀족들을 보며, 파스빈더 영화 <중국식 룰렛>의 그로테스크한 별장과 긴장감이 떠오른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