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시골에도 사람이 산다.

- 김융희

가을 채소인 무 배추를 심어야 할 시기인데 오늘도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그런데 채소밭뿐만이 문제가 아니다. 호박이 한창 열릴 때인데 웃자란 잡초에 덮여 비실데고 있다. 그냥 두면 잡초에 묻혀 녹아 없어져 버릴 것이다. 비는 내리고, 해야할 일은 많은데, 도구는 기능이 불실하다. 너무 빽빽이 웃자란 풀로 예초기가 잘 작동을 못한다. 흐르는 땀이 내린 비와 범벅이 되어 내 모습이 마치 홈박 젖은 참새 꼴이다. 어데선가 고함이 들려오고 있다. 허리를 펴면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건너편 산자락에서 나에게 뭐라 질러댄 소리였다.

50대 부부인 듯 싶은 도시인 차림의 두 사람이 나를 향해 고함과 손짖을 계속하고 있다. 손에는 낫을 쥐고 있다. 멀지 않는 거리임에도 예초기의 굉음에 무슨 소린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벌초를 해달라는 부탁으로, 수고비를 주겠으니 꼭 좀 도와달라는 애원이었다. 너무 힘들어 그럴 여력이 없다고 했더니 자꾸 돈을 앞세워 애걸이다. 나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한참 후 그들을 바라보았더니 두 분이서 오손 도손 정담을 나누며 나란히 풀베기를 하고 있었다. 나의 매정한 거절이 새삼 미안스러워진다.

숲에 둘러 쌓여 크지 않는 봉분이 풀도 많이 자라지 않아 작업에 힘들지는 않겠다 싶었다. 작업중 문득 바라보았더니 작업과 성묘가 끝난 것 같다. 나도 마침 작업을 끝내야 할 때가 되어서 엔진을 껐다. 그리고 성묘를 마치고 돌아선 그들을 불렀다. 그런데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린다. 나의 거절이 너무 야박해 몹시 섭섭했나 보다. 어떻든 마음이 찜찜하다. 우리집 부근의 묘소에 벌초겸 미리 성묘를 온 그들에게 도움은커녕 간절한 부탁마저 거절해서 보냈으니 그들이 얼마나 섭섭했겠는가! 그들에게 커피라도 권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작업을 마치고 소리쳐 불렀는데도 쳐다보지도 않는 채 떠나버린 것이다.

나역시 찜찜하면서 마음에 역겨움이 없지는 않다. 오늘의 빌미는 그들의 행위였다. 멀리서 소리치며 부탁을 한 짖도 못마땅했지만, 돈을 주겠다는 말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도 불쾌했다. 그처럼 당당하게 돈이면 되겠지라는 태도가 몹시 불쾌했다. 이것이 촌놈의 열등감일련지 몰겠으나, 참 꼴불견이었다. 물론 부탁을 위해선 돈을 내세울 수 밖에, 다른 무슨 방법이 없지 않는가. 또한 돈은 좋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그리 했을 것이다. 그러나 표현의 방법이나 태도가 문제이다.

너그럽게 이해하면서 지혜롭게 넘겨야 함에도, 나는 오늘처럼 유사한 일들로 많은 불편을 겪는다. 시골 집들은 거의가 울타리 없는 집들이다. 경계가 명확치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낮선 외부인들이 함부로 집안에 들어온다. 특히 봄나물이 나는 계절이나 밤줍는 때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경험하기도 한다. 갑자기 낮선 사람이 불쑥 나타나면 놀래고 불쾌하다. 울타리가 없어도 울안임을 금방 알 수 있는데도 부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막아보지만 순수히 빗겨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된다고 막으면 꼭 이의를 달며 불평이다. 인심이 뭐 이러냐며 오히려 항의를 한 경우가 허다하다. 울안의 나물이나 밤이 탐나는 것이다.

주인이 없으면 집안의 채소를 걷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들의 시비로 고성이 오가며 다투는 경우도 없지 않다. 가능한 참아서 그렇지 좀 심하면 거의가 시비로 번진다. 조금 있으면 밤줍기 철인데 집안에 밤나무가 있어 벌써 걱정이다. 줍기를 포기하면 될 일이지만, 밤을 줍겠다고 들려 주인도 무시하며 아랑곳 없이 설치고, 함부로 집안 물건에까지 손데는 경우도 있어, 여간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한다. 집안 문턱까지도 아랑곳 없는 그들이 무슨 시골 인심이 이리 각박하냐며 오히려 섭섭해 한다. 그들은 시골 사람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막말도 서슴치 않는다. 도시인들의 기세가 참 대단하다.

오늘의 경우도 도리와 배려를 갖고 요청했더라면 그처럼 매정한 거절은 없었을 것이다. 돈 줄 터이니 내 부탁을 들어라. 다시 말하거니와 돈 예기만 않했더라도 나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으리라 변명하고 싶다. 그리고 모처럼 찾은 성묘라면 기껏 한 두 시간쯤의 작업을 힘들어 회피하기 보담은, 생전의 고인을 떠올리면서 오손 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벌초를 하는 정성이 바람직한 일, 나의 거절 의도는 그런 뜻도 없지 않다. 아마 그들에게는 내가 매우 섭섭했겠지만, 유택의 주인은 오히려 나를 고마워하리라 믿고 싶다.

산적된 해야할 일이 촉박한데도 짖궂은 비는 계속 세차다. 본의 아닌 무료로 인해, 오늘의 매정했던 내 심사가 쉬이 가시질 않는다. 봄나물 채취와 밤줍는 시기가 아니면 참으로 평화로움이 넘치는 우리 마을이요 내 집인데, 오늘 불청객의 뜬금없는 일로 찜찜해진 심사에 불평이 아닌 넋두리이다. 도시인들은 시골사람을 얕보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시골인들도 감정이 있는 지극한 사람이다. 이젠 저 장대비가 그치면 나의 넋두리도 더 이상 없을터인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