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착취

- 김민수(청년유니온)

*청년유니온 조합원의 사례가 1인칭으로 서술 된 내용입니다.

소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잘 통용되지 않지만, 소위 ‘운동권’들에게는 곧잘 회자 되는 표현이 있다. –착취. 계급사회에서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생산수단을 갖지 않은 직접 생산자로부터 그 노동의 성과를 무상으로 취득하는 것(헥..헥…)이라는 지리한 사전적 의미를 가진 이 표현이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럴싸한 표현이지만 현실 경제, 다시 말해 나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몰랐고, 소위 진보적인 인사들 사이에서 너무 무분별하게 남발되다 보니 표현의 강렬함과 호소력이 많이 떨어졌달까… 내가 착취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적나라하게 체득한 것은 얼마 전의 사건(?)에 기인한다.

나는 지난 몇 달간 나랏돈을 먹으며 일했다. 공무원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국가에서 기획과 예산이 나오고 사기업에서 집행하는 프로젝트 사업에 나의 노동력을 판매했다. 거창하게 묘사했지만 사실 간단한 사업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하는 당뇨예방 사업인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 안 난다. 어르신들 당뇨 조심하라고 나랏돈 들이는 사업인 거 같다. (당뇨병 환자의 비율이 높아지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혼났나?)

구체적인 사업 내용도 간단하다. 지역별로 위치한 각 병원에서 1주일 정도의 기간을 두고 당뇨 예방 캠페인을 진행한다. 병원마다 1명의 간호사와 1명의 보조인력이 들어가 병원 이용자들에게 무료로 신체치수 측정과 혈액 검사를 해주고 당뇨 예방을 위해 필요한 썰을 풀어준다. 캠페인 병원을 섭외하고, 그에 필요한 인원을 고용하고, 고용인원과 병원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은 – 보건복지부에서 사업권한을 위임받은 사기업체에서 맡는다.

나 또한 이 캠페인 사업을 맡은 기업에 고용되어 1주일에 한 번 꼴로 서울과 경기 북부지역의 병원들을 순회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일은 정말 간단하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간호사를 보조하여 환자의 신체를 측정해주고 간단한 기록업무 정도를 진행하였다. 이용자의 수도 많지 않고, 고정적으로 책정 된 월 급여도 적절하고, 게다가 밥값까지 챙겨 준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꿈의 직장이라는 표현에 근접한 사업이랄까. 역시 나랏돈 떨어지는 사업이다 보니 일하는 이들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진다.

본론보다 사족이 훨씬 길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 어쨌든 사건(?)은 그 다음이다. 잡혀 있는 병원 스케쥴이 바닥나고 잉여로운 휴식을 즐기던 어느 오후, 나를 채용한 기업채로부터 연락이 왔다.

“A 씨, 강남 지역 병원에 결원이 생겼어요. 미안하지만 이 병원 일 좀 도와줘요.”

다른 지역 병원에 결원이 생겼고, 마침 병원 스케쥴이 없는 나더러 ‘땜빵’을 하라는 가라사대이다. 땜빵 하면 그 기간만큼의 급여를 더 보전해 줄 기색도 아니고, 나긋한 휴식을 방해 받은 마뜩찮음으로 나는 쿨하게 거절했다. 이에 대한 기업체의 반응은 나름 가관이다.

“아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 쉽게 일하고 쉽게 돈 벌면서? 요즘 병원 스케쥴 잡히지 않아서 연달아 오래 쉬었잖아요. 다른 분들은 타 지역 병원 결원 나와서 연락하면 그동안 너무 오래 쉬어서 미안하다고 지원을 자처하는데. 정말 곤란하네요.”

풉. 인력 다 고용해놓고 병원 스케쥴 잡지 못해 사람들 놀게 한 게 내 탓인가? (어쨌든 이 사태는 세금 낭비이다.) 선박 수주를 못해서 정리해고 감행했다는 어느 중공업 회장 생각나서 배꼽이 빠지겠네. 이러다간 병원 섭외를 위하여 인구밀도가 높은 중국으로 당뇨 예방 캠페인을 이전하겠다는 소리 나오는건가? 그렇다고 땜빵한 기간만큼의 임금을 보전해 줄 것도 아니고. (어차피 고정월급으로 지급할테니.) 이렇게 밑도끝도 없이 자기중심적인 주장에는 조소만 보낼…

생각이었지만 기업체의 협박성 요구에 못 이겨 결국 타 지역 병원의 결원을 땜빵했다. 혹여나, 사업체의 미움을 사서, 다음 달 캠페인에서 제외되고, 결국 돈 없어서, 거리에 나앉게 되면, 손해보는 것은, 결국, 나 뿐이니까. 젠장.

사흘 정도의 땜빵을 감행한 달의 설레이는 월급이 얼마 전에 들어왔다. 역시나 추가적인 노동에 대한 임금이 보전되지 않은 고정급여가 들어 왔다. 괜한 뻘짓에 이용 당했다는 생각에 시무룩함이 범람하던 즈음, 돌연 새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아무 대가 없이 치른 추가적인 노동의 이익은 누가 가져가는거지?’

그렇다. 강남 지역 캠페인을 결근한 B 씨에게는 캠페인에 참여하지 못한 기간 동안의 급여가 여지없이 제외 된 채 지급되었다. 하지만 A(나)의 땜빵으로 인해 기업체에서 수행해야 할 캠페인은 모두 완수 되었고, 그에 따른 보수(보건복지부 예산)가 발생하였다. 그런데 나에겐 B의 몫을 제외한 나의 몫만이 주어졌다.

‘B의 몫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코난이나 김전일 급의 추리력도 필요없이 너무도 뻔한 극적 전개이다. 중간에서 누가 먹은거다. 노동상담팀장을 쪼아서 체불임금 구제신청 절차나 밟아야겠다. 이런 잡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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