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용역 이야기

- 박정수(수유너머R)

쥐 그래피티 송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새로운 송사가 걸렸습니다. 1차 희망버스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피의자 출석요구서가 날아오고 집에까지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용역깡패들 코 앞에서 온 종일 피켓 들고 있었으니 주민등록증 들고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문자 그대로 ‘코 앞’이라 그들의 콧방귀와 숨소리까지 다 들렸습니다. 유독 거친 욕설을 뱉어내는 넘이 있기에 면상 좀 보려고 뒤돌아 봤더니 의외로 애띤 얼굴이었습니다. 알바 구인 사이트를 보고 온 용역 중 하나로 보였습니다.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을 떨치려고 ‘위악’을 떨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불쌍하다는 눈빛을 던졌습니다. 물론, 돌아온 건 “뭘 봐! @#$%^&*야.”라는 욕설이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저짓’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부산지역분 한 명이 “내 동생이 조폭 출신 아잉교. 점마들도 안 된 기라요. 가난한 집에서 나 고등학교 때리치고 저 짓하다 중간보스 되믄 술집 하나 차릴 꿈으로 저러는 기지요. 자들 중 70% 이상은 알바하러 온 대학생 아니면 고등학생이라요. 자들한테는 티셔츠도 안 줘요. 검은 색 옷 입고 오라는 알바 공고 보고 온 거지예. 저 보믄 동의공전 티셔츠도 있어요.”라고 하더군요. 전쟁 같은 알바 인생에 양심과 정의를 기대한 나의 사치스러움이 부끄러웠습니다.

명동 마리에 용역깡패들이 들이닥쳐 농성자들을 소화기, 각목 등으로 줘 패던 날 아침, 또 그들 코앞에 앉았습니다. 간밤에 그 난리를 치고도 아침이 되자 실실 웃으며 농담을 던지고, 세입자한테 자기 가방 좀 찾아 달라고 지분거리는 넘도 있었습니다. 그 밤낮의 ‘간극’이 당혹스러웠습니다. 아무리 농성장에 연대하러 온 장애인들, 대학생들, 예술가들, 활동가들도 자기네들처럼 돈 받고 오거나 봉사점수 받으러 온 거라고 교육받았더라도, 저렇게나 생각이 없을까 의아했습니다. 아렌트의 말마따나 ‘악의 일상성’에 치가 떨렸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닌 듯했습니다. ‘악’도 생각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연대하러 온 김조광수 감독 말처럼 “천성이 악한 사람들이 있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저 사람이란 참 ‘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계처럼 맞물려 작동하는 사회적 기관으로서 사람은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심이니 도덕이니, 정의니 대의니 하는 단어들이 얼마나 관념적인 말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사람이란 그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에 매달려서, 시행사직원의 말마따나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런 존재에 불과합니다. 부수는 기계, 폭력기계가 있는가 하면, 거기에 깔려 죽지 않으려고, 더불어 살려고 발버둥치는 생명 기계만 있을 따름입니다. 경비회사 직원이든 알바용역이든 생의 의지로 때리고 생의 의지로 욕하고 생의 의지로 지분거리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 의지가 권력과 자본의 기계 부품인 것과 똑같이 농성자들의 생의 의지는 그것에 맞 부딛치는 공동체 기계의 에너지입니다.

이 두 기계가, 두 생의 의지가 적나라하게 충돌하여 힘겨루기를 하는 전쟁터에서, 용역깡패들 상당수가 마리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마리의 날라리들은 미친 듯이 기타를 치고 아무거나 드럼 삼아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도로변에서 연주하는 그들에게 마리 문 앞에서 하자고, 용역 깡패들 잠 못 자게 놀자고 했습니다. 저도 쇠막대기로 박자에 맞춰 셔터 문을 두들겼습니다. 잠 자던 넘 중 하나가 욕을 퍼부우면서 두들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잠 자지 마. 이 바퀴벌레 같은 놈들아” 하고는 계속 두들겼습니다. “어차피 너나 나나 다 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게 아니라, 맞부딪치고 있는 생의 기계로서 적나라하게 분노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도주의는 사치였습니다.

마리를 ‘점거’하고 있던 넘들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철수할 때 나는 매이를 안고 또다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문화제를 하던 농성자들에게 나는 “저들을 환송 해 줍시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떻게 환송(?)할까 잠시 망설이던 찰라, 누군가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야~” 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러자 다들 따라 했습니다. 이 기막히게 역설적인 노래 속에서 ‘적’과 ‘친구’는 야누스의 누 얼굴입니다. 물론, 용역깡패들이 ‘위대한’ 적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생에서 ‘배후는 없다’. ‘모두가 배후이자 말단이다.’ ‘인간은 없다’ ‘우리 모두가 생의 기계 작동자이다.’ ‘양심은 없다. 생의 의지만 있다’는 깨달음을 준 소중한 적입니다.

마리에서 일렬로 걸어 나오는 용역깡패들을 보며 나는 매이에게 “봐, 저기, 바퀴벌레 나온다.” 라고 소근거렸습니다. 앞에 섰던 경찰이 뒤돌아보며 깡패들 자극할까 걱정스러워선지, 애한테 못할 소리 한다는 한심스러움인지 신경질적인 시선을 보냈습니다. 매이는 “바퀴벌레? 우와~ 꼭 사람 같이 생겼다.” 라고 대구합니다. 나는 “응, 사람은 때로는 바퀴벌레로 변신하기도 해”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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