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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루 (Life in a Day)

- 유정아(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지난주에 미술 전시회 소개로 말문을 열었으니, 오늘은 영화제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 압구정 CGV에서는 <시네마디지털서울(CINDI)>(8. 17~ 8. 23)이 열리고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미술을 생각하는 시간보다 영화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고, 미술 전시회에 가는 것보다 영화관에 가는 일이 더 설레인다. 특히 상영 몇 분 전에 불이 꺼지며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그 순간은, 마치 내 삶이 새로 막 펼쳐지려 하는 것처럼 두근거린다. 촌스럽기는.

http://www.cindi.or.kr/cindi2011/trailer.asp

특히 CINDI가 매번 가슴뛰는 설레임을 주었던 것은 모든 영화가 시작될 때마다 상영되는 트레일러 덕분이었다. 이번에는 태국의 설치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인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붉은 커튼이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붉은 커튼이 나부끼면서 조그맣게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면 마치 작은 시골 마을에 온 동네 사람이 모여 앉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영화를 구경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지직대는 소리는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가 한 여름 밤 먹던 참외, 수박과 같은 단맛을 생각나게 했다. 또 쏟아질 듯 징그럽게도 많이 떠 있던 밤하늘 별들도, 귀찮게 앵앵대던 모기들도 떠올랐다. 이토록 평범하기 그지없는 기억들도 가끔 그리워진다. 다소 모호한 표현이 허용된다면, 그냥 ‘아시아적 감성’이라 부르고 싶은 이 느낌… ‘디지털’을 표방하는 영화제에서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의 출현이라니.

영화제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일 중에 하나는 프로그램을 짜는 일이다. 워낙 다양하고 많은 수의 영화들이 한꺼번에 상영되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들을 효과적으로 선별해 시간표를 짜는 일이 중요하다. 마치 학부 때 공강시간을 고려하며 야무지게 전공과 교양 수업을 짜는 듯한 심사숙고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 소소한 기쁨을 만끽하면서 처음 본 영화는 스위스 감독의 애니메이션 <대니보이(Danny Boy)>였다. 머리없는 자들만 살아가는 도시에서, ‘머리있는’ 주인공은 결국 단두대의 칼을 스스로에게 떨군 뒤, 사랑을 찾아 나선다. 셋째 날 상영된 김기덕 감독의 자전적 영화 <아리랑>은 ‘서프라이즈’라는 특별 섹션의 작품이었다. 김기덕 감독의 ‘어떤’ 작품들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나인지라, <아리랑>을 보며 ‘신파와 원한’ 사이를 오가는 그의 깊은 한숨과 세속의 번뇌를 함께 겪었다.

<아리랑>의 많은 씬들은 ‘먹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끼니때마다 얼음을 녹여 쌀을 씻고 밥을 짓는다. 고추장에 비벼먹고, 생선을 구워 먹고, 라면을 끓여먹고, 간식으로 예쁜 단감도 먹고, 직접 만든 기계로 에스프레소도 끓여먹고… 마치 동굴에서 겨울을 나는 고슴도치가 겨울을 보내듯이, 외부를 향해 가시를 잔뜩 세운 채, 하루 종일 먹거리를 준비하면서 홀로 추운 겨울을 보낸다. 영화의 많은 장면에서 그가 미학적 사색을 했다면, 난 이 영화를 ‘가짜’라고 느꼈을 것이다. 홀로 많은 시간을 보내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에는 가장 원초적 본능에 충실해 진다는 것을. 물론 어느 순간은 그것조차 귀찮아지지만… 철학적 사색? 그건 본능적 욕구를 채우고 난 다음의 일이다.

그 다음에는 ‘나쁜’ 생각들과 싸워야 한다. <아리랑>의 주인공도 그렇게 끼니를 때우고 나면 이제 ‘생각’들과 마주하게 된다. 잊었다 여겼던 고통의 시간이 엄습해 온다. 그리고는 마침내 시작되는 자기 고백의 시간, 매우 ‘인간적인’ 신파의 극단! 그는 술 마시고 나서 누구나 하는, 정말 그저 그런 넋두리를 해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아리랑’을 부른다. (여기서 잠시, 그가 ‘아리랑’을 부르는 목소리에 반했다는 것을 고백해두자. 어쩜 그리 목소리가 구성진지) 그러나 그의 영화가 흥미로웠던 것은 단지 그의 한서린 자기고백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에는 다수의 시선들의 교차가 일어나면서 한을 토해내는 김기덕과 그걸 바라보며 질문하는 김기덕, 그 장면을 모니터로 바라보며 키득거리는 김기덕, 또 다시 그 모든걸 관객이 바라보도록 카메라를 세워둔 (현실의) 김기덕이 존재한다. 이 모든 시선들이 공존하는 그 순간, 마치 시간의 흐름이 서로 교차하듯이 모호한 자장을 일으킨다. 자기 고백을 하는 그 순간조차 영화적 장면을 고민했을, 감독의 복잡하며 영리한 속셈도 짐작해 보았다. 이는 문득 ‘죽음’을 떠올리게 했는데, 비단 자살이라는 영화의 결말 때문이 아니라, 마치 내생의 그가 현생을 바라보듯, 혹은 이 모든 장면을 전생의 그가 바라보듯 기이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정지한 시간, 혹은 재배열되며 교차되는 기묘한 시간의 흐름.

<어느 하루(Life in a Day)>라는 영화는 기획과 제작방식에서 새로움을 주는 작품이다. <블레이드 러너>를 연출했었던 리들리 스콧이 총감독을 맡은 이 작품은 UCC 장편 다큐멘터리인데, 전세계 네티즌들에게 2010년 7월 24일 하루동안 자신들의 일상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려 달라고 한 후, 이렇게 모인 80,000개 이상의 비디오를 다시 편집해서 한 편의 영화로 완성한 것이다. 이 하루 동안 전 세계인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내용은 충분히 짐작가능한 장면들이다. 속한 문화, 생활 수준에 따라 살아가는 각각의 모습들은 다양해도 공통적으로 그들은 먹고 마시고 똥싸고, 아이들을 키우고 미래를 근심한다. 기쁘고 슬프고 즐거워하고 아파한다. 올라가는 감독 이름들의 수만 해도 엄청나다. 그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면서 동시에 그걸 제작하는 감독들이다.

그걸 보면서 ‘디지털’ 세상을 느꼈다. 김기덕 감독이 자전적 얘기를 촬영, 편집을 홀로 도맡으며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디지털’ 세계가 가져다준 혜택이었다. 미처 보지는 못했으나,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만 따로 보여주는 섹션도 마련되어 있었다. 미술과 영화의 경계가 사라져가는 것은 물론, 제작과 감상의 경계가 모호해져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디지털이 우리에게 열어주는 환상적인 신천지의 세계. 카메라는 또 하나의 눈이 되어 때로는 몰카와 CCTV로, 우리 생활에 침입해 들어오고, 때로는 그 어떤 이미지도 보여줄 수 없었던 새로운 미학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디지털 세상의 선물을 이용할 방법을 궁리하는 즐거운 상상과 함께 이를 근심하는 새로운 세계의 윤리인 것 같다.

*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 동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응답 3개

  1. 유정아말하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 배무늬말하길

    연재가 끝난다니 아쉽네요. 좋은 글 감사했습니다.

  3. 말하길

    ‘아리랑’ 보셨군요. 부럽…그동안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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