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도가니>와<숨>

- 황진미

장애인시설의 실화를 다룬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한다. 광주 ‘인화학교’사건을 다룬 <도가니>와 김제 ‘기독교 영광의 집’ 사건을 모티브로 한 <숨>이 개봉할 예정이다. 두 영화는 장애인 시설의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삼지만, 접근법이 매우 다르다.

1. 광주 인화학교 사건과 <도가니>

인화학교는 청각장애 기숙학교로, 교장과 교직원들이 장애학생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이 가해졌다. 아이들은 침묵 속에 갇혔고, 교사들은 모른 척 했다. 가해자들은 지역 유지로, 이들과 연루된 교육청, 시청, 경찰 등은 재단을 감사하거나 조사하지 않았다. 2005년 일부교직원들이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제보하고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가 꾸려지면서 오랜 침묵의 카르텔이 깨졌다. <PD수첩>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고, 본격적인 수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재단은 임원을 해임하지 않았다. 해임을 촉구하는 대책위의 천막농성이 해를 넘기고, 등교거부와 천막수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학생들이 교장에게 계란과 밀가루를 던지는 일이 발생했다. 교장은 학생들을 폭행혐의로 고소하였고, (1991년 정원식 총리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여론은 악화되었다. 그러는 사이 재단은 성폭행혐의로 직위 해제되었던 교직원들을 복직시켰고, 대책위에 참여했던 교사와 보육사를 파면·해임했다. 2007년 법원은 교장과 행정실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였고, 평교사 한명만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학교로 돌아온 교장은 나중에 암으로 사망했고, 다른 가해자들은 현재까지 인화학교에 근무한다.

‘인화학교’ 사건이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즈음, 공지영의 르포소설 <도가니>가 나왔다. 소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어떤 권력의 메커니즘에 의해 일어나는지를 냉철하게 그렸다. 영화 <도가니>는 소설을 원작으로, 비교적 충실하게 사건을 고발하고, 진실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심경을 조명하였다. TV 인간극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외입양인의 문제를 그린 영화 <마이 파더>를 찍었던 황동혁 감독이 연출을 맡고, 끔찍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분투하는 교사와 인권센터간사 역할을 공유와 정유미가 맡았다. 영화의 시선은 직설적이고 계몽적이며, 장르영화의 기법 속에 선명한 구도와 문제의식을 담아냈다.

2. 김제 ‘기독교 영광의 집’ 사건과 <숨>

<숨>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이다. 극영화라기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질감의 화면에, 명쾌함이 아닌 애매함을 지향한다. 2007년 전주KBS와 전북장애인시설인권연대의 조사에 의해 김제 ‘기독교 영광의 집’의 성폭행과 횡령사건이 밝혀졌고, ‘TV패트롤’이란 프로그램에 3차례 방영되었다. 사건이 알려지기 전 ‘영광의 집’은 원생들끼리의 합동결혼식을 시켜주는 훈훈한 시설로 언론의 칭찬을 받았었다. 그러나 운영자인 목사가 지적장애여성을 15년간 성폭행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자궁적출수술까지 받게 한 사건이 알려진 후, 시설은 폐쇄되었고 피해여성은 쉼터로 보내졌다. 2009년 목사는 성폭행혐의로 징역 3년에, 부인인 원장은 횡령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처해졌다.

<숨>의 감독은 당시 KBS의 자료를 토대로, 시설과 쉼터를 생생한 리얼리즘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영화는 고발이 아니라, 고발이 놓치는 지점에 주목한다. 수희는 뇌병변장애로, 언어장애와 약간의 지체장애가 있으며, 지적장애는 없다. 노동능력이 있는 수희는 청소나 빨래를 도맡아 한다. 그녀는 지적장애인 민수를 몰래 보일러실로 데려와, 여느 연인처럼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로 알몸을 비추어보며 성관계 한다. 수희는 과거에 목사에게 성추행당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민수의 아이를 임신하였다. 임신사실을 안 목사는 수희에게 민수와 결혼시켜 시설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수희는 희망에 부푼다. 그러나 원장의 아들이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하여 임신시킨 것을 알게 된 외부 사회복지관계자들이 시설에 들이닥치고, 임신한 수희를 ‘보호조치’한다. 영화는 <도가니>가 취하는 선악의 구도가 아니라, 판단 유보의 지점을 보여준다. 임신사실을 안 원장이 수희를 강제로 데려간 곳은 산부인과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웨딩숍이었다. 원장부부의 약속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우리는 오래 동안 같이 산 가족이고, 이 공동체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원장의 말은 표독스럽게 들리지만, 한편으론 진실처럼 느껴진다. 시설은 폭력적인 곳이지만, 그곳에서 수희는 ‘노동하는 주체’였다. 반면 쉼터는 극도로 친절하지만, 수희는 ‘보호대상’일 뿐이다. (시설에서 수희는 다른 사람을 목욕 시켰지만, 쉼터의 상담사는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는 수희를 끌고 가 목욕을 시킨다.) 쉼터의 상담사는 부드러운 어투이지만, 수희의 말을 듣지 않거나 듣고 싶은 데로 듣는다. 상담사는 수희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단정하며, 가해자를 계속 추궁한다. 말을 하는 도중 수희가 “안 할래”라고 하지만, 상담사는 성폭행 당시의 거부의사로 알아들을 뿐, 말을 그만하겠다는 뜻으로 듣지 못한다. 상담사는 언어장애가 있는 수희를 당연히 지적장애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적장애인의 경우 어린아이와 같은 무성적 존재로 취급한다. 장애여성은 성문제에서 오로지 성폭행의 피해자로만 사유될 뿐, 성적 욕망과 행위의 주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이는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사고할 때 흔히 빠지는 오류이자, <도가니> 등의 영화가 장애여성의 성폭력 피해문제를 이슈화할 때 놓치는 지점이다. 피해자성이 강조될수록,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핵심적 화두는 멀어진다. 장애여성은 모성의 권리 역시 무시된다. 장애여성은 보살핌의 대상이지 보살핌의 주체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모성이 배제된다. 수희가 인형을 껴안는 행위는 모성적 욕구의 표시이지만, 유아적 행위로 간주된다. 수희가 육아 책을 본다는 사실은 간과된 채, 상담사는 수희에게 어린아이를 대하는 말투로 아이는 입양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3. <도가니>와 <숨>의 관점의 차이

<숨>은 시설과 쉼터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수희의 뒤통수에 카메라를 밀착시킨 채 그녀의 눈높이와 시선으로 사건을 보여준다. 관객은 그녀가 본 만큼 알고, 그녀가 답답한 만큼 답답해하며, 시설과 쉼터의 태도가 똑같이 폭력적이란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성과이다. <도가니>와 비교해보면 차이점이 명확해진다. <도가니>는 시설을 악으로, 선생님과 인권활동가라는 외부세력을 선으로 배치한다. 절대 악의 폭력에 시달리는 무고한 장애인들과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외부인의 고군분투를, 외부인의 시점에서 그려나간다. 선명한 선악의 구도 속에서 관객은 착하고 잘생긴 비장애인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고, 장애인은 순결한 피해자로 객체화 된다. 물론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도 장애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뒤틀린 장애인의 몸과 시선을 일치시키며, 남루하지만 열정적인 그녀의 섹슈얼리티를 납득케 하고, 그녀가 일상적으로 겪는 소외를 경험케 함으로써 시설이나 쉼터나 동일한 폭력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숨>의 관람체험은 더 소중하다. ‘장애인-되기’를 통해 장애인의 주체성을 사고할 있는 흔치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수희의 마지막 대사와 표정에서 결기를 느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장애인과 눈을 맞추고 대화할 수 있는 첫 관문에 닿은 것이다. <숨>은 9월1일, <도가니>는 9월22일에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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