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 1. 생명이 지닌 가능성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수안아,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지만 이젠 네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그리고 어떤 일을 하며 살까를 상상을 해보는 것이 즐겁단다. 할아버지는 네가 섬세한 감정과 투명한 이성과 견고한 의지를 가진 성숙한 인간이 되어 네가 하고 싶은 하면서 그 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란다. 그리고 너도 행복하고 남들도 너처럼 행복하도록 도우며 사는 너를 상상하면 더욱 행복하단다. 그래서 수안아, 할아버지가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네가 비록 세 살이지만 이제부터 할아버지가 바라는 네 모습을 그려 보일 테니 네 맘에 들면 그대로 되거라.

네 모습을 그리기 전에 먼저 스무고개 하나. 이것은 옛날부터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물건입니다. 이것이 무엇일 까요. 그건 금은보석들이지요. 그렇지, 금은보석은 부피가 작고 무게가 적어도 아주 비싼 것들이지요. 그런데 이들이 왜 그리 비쌀까요. 그래요. 이들은 귀해서 아무나 가질 수 없고 쉽게 녹슬거나 부서지지 않아 이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 때문에 비싸죠. 그럼 보석들 중에서 가장 귀하고 값나가고 아름다운 것이 무얼까요? 그야 보석 중에 보석, 다이야몬드라고 하는 금강석이지요. 그렇고말고요. 그것은 귀해서 아무나 가질 수 없으며 그 아름다움과 단단함은 견줄 만한 것이 없으니까 가장 비싼 것이지요.

금강석이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잘 세공한 그걸 대낮에 목이나 귀에 걸면 햇빛을 받아 반짝이니 아무리 작아도 멀리서 알아본단다. 그냥 빛난다가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그야말로 찬란하게 수많은 색깔들이 내비친단다. 그 작은 것이 빛의 파장에 따라 굴절이 달라지고 굴절이 달라지면 색깔이 달라지는 프리즘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런 보석의 아름다움을 영롱하다거나 휘황찬란하다고 하잖니. 밤에도 아주 작은 빛을 받으면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여러 빛깔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낸단다.

게다가 그 단단함이라니. 강철을 자르는 톱니로 사용되고 유리를 자르는 칼에도 아주 작은 금강석이 박혀 있단다. 원시시대부터 여러 가지 보석을 세공하였지만 금강석은 너무 단단해서 15세기부터 세공이 시작되어 17세기에 16면체를 다듬을 수 있었고 오늘날에는 58면 이상을 세공할 수 있대. 다른 보석에 비하면 금강석은 최근에야 최고의 보석 지위에 오른 것은 너무 단단하여 보기 좋게 깎고 다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지.

금강석의 광채와 휘도와 화염, 그리고 그 단단함과 투명함 때문에 여러 가지 상징 의미가 생겼는데 왕관에 박아서 정복자의 권능을, 귀족의 고귀함, 처녀의 순결, 진리와 광명과 지혜를, 불사신 등을 뜻했단다. 원석은 돌맹이에 지나지 않고 아무리 아름답게 세공한 다이아몬드도 아주 작은 돌에 지나지 않지만 어떤 상징의미를 붙이느냐에 따라 그 다이아몬드로 상징되는 사물의 가치와 의미를 대신하게 되었단다. 내가 너의 영혼(인격)을 대신할만한 것을 찾다 보니 다이아몬드가 떠올랐고 그래서 이제 나에게는 그것은 아름답고 단단하며 빛나는 너의 영혼을 대신해주는 상징기호로써의 가치와 의미가 생겼구나.

성경의 누가 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백합화를 보라 실을 잣거나 천을 짜지 않지만 솔로몬이 꾸며 입은 옷도 이 꽃만큼 아름답지는 못하였다. 하물며 너희들이랴. 아버지께서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다. 고대에 이스라엘에서 대 제국을 이룬 솔로몬 왕이 자기의 부와 영광을 자랑하려고 몸에 아름다운 비단을 두르고 모자에서 옷과 허리띠와 칼과 방패 신발까지 얼마나 많은 보석을 박아 꾸몄겠니. 그러나 솔로몬이 제아무리 값진 비단과 금은보화로 꾸며도 비록 오늘 피고 내일 져서 아궁이에 던져질 풀꽃이지만 살아있는 한 떨기 꽃의 아름다움만은 못하다는 거야. 그렇지만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인간의 영혼보다 더 아름답고 귀할 수는 없다는 거야. 그러니 풀꽃을 길러내는 하느님이 어찌 인간을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이란다.

그렇다면 정말로 사람이 금강석보다 아니 꽃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울까. 그렇단다. 수안아, 내게는 네가 금강석이나 어떤 꽃보다 더 귀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란다. 만약 네가 가진 것 중에서 금강석을 받더라도 내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게 뭐겠니. 너의 목숨이나 건강이 아니겠니, 그뿐만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건강이나 생명도 백합화나 금강석보다 더 귀하잖니? 아니, 사랑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누구의 생명이라도 네가 가지고 있는 금강석을 팔아 그 사람을 살릴 수만 있다면 수안이는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할 거야. 그러고 보니 생명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것은 없구나.

그렇다면 하버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답고 소중하기가 무엇 때문에 다 똑같다는 거야. 사람의 생명 속에 들어있는 가능성으로만 말하자면 똑같이 아름답고 소중하단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단위의 개체들이 지닌 가능성은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새로움에 대한 경험의 축적이란다. 지구상에서 아니 어쩌면 우주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적인 경험이 축적된 인간의 가능성과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이나 들꽃에 축적된 가능성이 비교가 되겠니.

그런데 겉으로 본다면 눈, 코, 귀, 입이나 팔, 다리 또는 오장 육부와 머리를 누가 더 많거나 적게 가진 것이 아니라 다 똑 같이 타고 나서 다 사람 노릇을 잘 해 내듯이 육체적인 가능성이 비슷해졌잖니. 이런 겉모습으로 속 모습을 미루어 본다면 속에 있는 정신적인 가능성도 필요한 기관과 지체를 갖추어 비슷하게 타고나서 다 나처럼 사람 구실을 할 만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니 어찌 다 똑같이 소중하지 않겠니.

그렇지만 타고난 소질은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그래, 다르지. 그런데 저마다 다를 뿐이지만 어떤 가능성(소질)이 다른 가능성보다 소중함하고 아름답기가 더하거나 덜한 것이 아니란다. 육체의 어떤 부분이 더 튼튼하고 민첩하게 타고나서 이를 잘 써서 운동이나 어떤 역할을 잘 해내듯이 정신의 어떤 부분을 더 튼튼하고 민첩하게 타고나서 이 가능성을 잘 살려 주어진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낼 수도 있을 게다. 육체적인 지구력이나 민첩성, 예술적 감수성이나 과학적 합리성, 또는 윤리적인 덕성, 또는 사회적인 포용성이나 경제적인 생산성 등 타고난 가능성이야 다르겠지만 사회생활에서 서로 다른 역할로 도우려고 타고난 것이니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낫거나 못한 것으로 비교하여 우열을 따져서는 안 되지. 사람이 모여 사는 데 남들의 가능성도 내 삶에 보탬이 되는 꼭 필요한 것이라면 결국은 남들의 가능성도 나를 위한 것이니까 서로가 서로의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돕고 또 실현된 가능성을 서로 존중해야 하지 않겠니.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육체나 정신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가능성에 차이가 나는데도 사람값이 같을까요. 아, 그렇구나. 그러나 원래는 오랫동안의 진화 과정에서 장애로 태어날 열성인 유전자는 거의 다 걸러졌으므로 거의 모든 사람들의 대부분의 유전자는 건강했었단다. 그러나 영양 상태나 질병이나 환경오염 등으로 그들의 부모의 생식 유전자가 손상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태어난 것이란다. 우리 사회 안에 그 누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대부분 그 부모의 유전자를 손상시킨 사회의 공동책임이야. 그러니까 모두가 함께 장애를 돌보아야지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단다. 더구나 장애인들은 장애인 것도 서러운데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차별을 당한다면 더욱 서러울 게다.

그런데 수안아, 이번엔 내가 묻자. 타고난 가능성만으로 볼 때 누구나 귀하고 가치가 있다면 현실에서도 누구나 다 똑같이 대접을 받을까. 법으로 정해진 자유와 권리는 누구나 똑같아요, 투표권도 누구나 똑같이 하나씩 나눠 갖구요. 그렇구나. 그런데 수안아, 법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정치적인 평등을 전부인 것으로 안다면 경제나 사회 문화적인 불평등을 못 보게 된단다. 현실에서 평등은 이상이고 사람대접이 시대마다 하는 일마다 다르니 사람은 누구나 어떤 모습으로든지 차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단다.

사람이 모여 사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은 위에서 시키고 어떤 사람은 아래에서 따라야 하고,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 있는 사람보다 언제나 더 많은 몫을 차지하더구나. 사회가 준 역할에 따라 받는 대가가 다르므로 경제적인 능력의 차이가 생기게 마련인데 만원 가진 사람과 백만 원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들 사이에 상품을 선택하는 경제적인 권리가 백배나 차이난다는 것을 너도 알 수 있겠지. 그밖에 권력이나 재산이나 지식이나 미모나 언변에 따라 대접이 크게 달라진다는 걸 너도 겪어봤잖니.

네 엄마는 엄마, 아내, 교사, 친구, 딸, 누나. …….등의 역할들을 잘 해내니까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는 것 같다. 너도 자라서 그러길 바란다. 그러나 누구나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어 대접받고 사는 것은 아니지. 인간이 타고난 일반적인 가능성은 비슷하지만 특정한 가능성(소질)은 서로가 다르므로 인간이 분업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사회 속에서 살려고 한다면 그 특정한 가능성을 실현하여 서로에게 이바지하는 것이 옳잖니. 그런데도 자신만이 가진 특정 가능성을 제대로 찾지 못했거나 찾았어도 실현하는데 게을렀던 사람도 있을 게다. 그렇다면 가능성을 실현하기 행복하려고 자기의 삶을 결정하고 이끌어온 자신이 실현한 만큼 대접받는 것으로 책임을 지거나 보상을 받아야 마땅해.

그러나 능력에 따른 차별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가는 하는 문제는 정답이 없어서 사회적인 자산인 부와 권력과 명예를 나눌 때는 몫이 다른 당사자들끼리 편을 갈라 힘을 겨룬 결과로 결정될 매우 힘들고 민감한 문제란다. 물론 그 힘겨루기가 얼마나 공정하게 이루어지는지는 사회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전통마다 힘겨루기의 규칙에 따라 다르겠지. 사회적인 차별을 없애려면 가능성을 계발하는 과정에서 빈부에 따른 불공정성, 계발된 가능성이 하는 역할에 따른 불공정성, 권력이나 자본이나 언론의 영향력에 따른 불공정성, 편향적인 경계선을 긋는 기존 법률의 불공정성 등을 제거해야만 한단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의 불공정을 제거하는 일 자체가 기득권자의 보수적인 저항으로 아주 민감하고 까다로운 힘겨루기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확충하고 평등 사회를 건설하는 민주주의 실현이 사회마다 주어진 진정한 가능성의 실현이라는 과제이자 목표이지.

그러면 수안아, 하버지는 네가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아가길 바라겠니. 네가 가진 가능성을 실현해서 언제 어디서나 네게 주어진 역할들을 잘해내어 네게 기대를 가진 사람들에게 네 엄마처럼 환영받기를 바란단다. 그렇게 되는 것을 자아실현이라고 하잖니.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은 바로 남들이 가진 가능성을 실현하여 환영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란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사랑이 가장 큰 사랑이고 자식을 잘 기르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창조 행위란다. 농부가 가축이나 채소를 기를 때 그 씨앗이나 새끼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날마다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어려움을 잊고 기뻐한단다. 뭇 생명을 기르는 하나님도 엄마 아빠처럼 진화 과정을 통해 저마다 더 많은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애쓰시므로 작은 실현이라도 기뻐하실 게다. 하나님은 자식을 기르는 부모처럼 끝없이 이상으로 유혹하여 우리의 가능성을 넘어서도록 설득하고 계신단다. 그러니 너는 더 높은 수준의 경험으로 그 분의 기대를 만족시켜드려라.

수안아, 너를 키울 때 네 가능성이 시들지 않도록 너를 어떻게 키웠는지 네가 알아둘 게 있다. 네 엄마나 아빠는 진화 과정에서 하느님이 그랬듯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거나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도록 널 억누르지 않았단다. 그리고 네 엄마 아빠는 너에게 묻거나 설득해서 네 동의를 얻은 대로만 해주었지 네가 좋다는 것을 안 하거나 싫다는 것을 억지로 하지 않았단다.

이를테면 다른 아이들은 두 돌 지나면 다 대소변 가리는데 너는 그러지 못했어. 대소변 가리는데는 실수하게 마련이고 그러면 야단치게 마련인데 네가 스트레스 받을까봐 네가 세 살 넘어서도 기저귀를 채우고 네가 알아서 가릴 때까지 기다린 거란다. 왜 그랬겠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면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불만이 쌓이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억누르면 그 일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그 일에 만 매달리니 다른 경험들로 네 가능성을 실현할 기회를 잃기 때문이란다. 어떤 생명이든지 억눌린 쪽은 찌그러져서 그쪽 가능성은 시들게 마련이란다. 하느님의 바람처럼 자식을 기르는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바람은 자식이 가진 가능성을 실현하여 독립하고 언제 어디서나 자기 몫을 잘 해내서 대접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란다.

수안아, 네 엄마나 아빠가 너에게 공치사를 들으려고 너를 얼마나 공들여 키웠는지 자랑하지는 않았을 게다. 그러나 나는 안다. 네가 받은 사랑의 빚이 크고, 많고, 무겁다는 것을. 내가 빚이라고 말한 것 때문에 마치 너에게 되갚을 것을 바라고 너를 키운 것처럼 네게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네 엄마와 아빠는 다만 네가 크는 즐거움 즉 가능성이 실현되는 즐거움으로 이미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받은 사랑의 무게를 따지자면 너는 네 가능성 실현으로 너만 행복해지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단다.

자연적인 자원에 그 사회의 구성원의 노동으로 함께 생산한 부와, 투표로 결정권을 구성원에게서 위임받은 권력과, 구성원이 알아줘서 생기는 명예는 원래 구성원의 것이란다. 이것들은 관리하고 처분하는 결정권을 구성원에게서 위임을 받은 사회적 자산이야. 이것을 잘 관리하면서 구성원이 고루 갖도록 결정해달라고 위임 받은 결정권자는 구성원의 신임을 등지고 자기 몫을 크게 결정하여 민주주의는 끝없는 배임을 당해왔고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아직도 저 멀리 있어.

한 동안(1980~2010) 자유라는 이름으로 경쟁의 자유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이 지배했었지만 기득권을 이용하여 자기 몫을 더욱 크게 만드는 더욱 불평등한 세계를 만들었을 뿐이란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들을 모두 없애고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자유를 극대화시켜야 투자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서 경제가 발전하여 사회 전체의 부가 커지고 커진 부가 흘러넘쳐야 모두가 잘 산다고 주장하였지만 빈부의 격차가 아주 심해져셔 네 이것을 알만한 때는 한 물 간 불공정한 이데오르기가 되어있을 게다.

수안아, 차별 많은 불공정한 세상이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당한 대접이나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있게 마련이란다. 그런데 네가 이들이 합당한 대접과 대가를 받도록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억울함을 함께 외쳐 알리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함께 풀어간다면 엄마 아빠는 너를 키운 커다란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걸 할아버지가 어찌 아느냐고? 네 엄마 아빠가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음을 알기 때문에 나는 네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있단다. 너는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가능성을 실현하여 더욱 가치 있는 일을 하며 기쁘게 살도록 돕는 일로 네가 받은 사랑을 갚는다기보다는 엄마와 아빠를 기쁘게 할 수도 있단다.

수안아, 네가 만약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지려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면 너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하머니 하버지는 물론 하느님도 네가 아주 자랑스럽고 기뻐서 열심히 응원할 거란다. 그리고 하느님이 다음 세상의 여행에서는 이 세상에서 초과하여 실현한 가능성을 보태주셔서 생명을 더 잘 살리는 더 많은 일을 하도록 기회를 주실 것이다. 하버지는 인간이 자아를 실현하여 만족할 때까지 끝없는 여행을 하도록 하느님이 기회를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단다.

수안아, 어떤 생명이든지 잘 살아보려고 태어난 것을 너도 알지? 그런데 인간에게 특별히 더 많은 가능성을 주신 것은 그 가능성만큼 자신과 이웃과 나아가 다른 생명들까지 더 잘 살게 하는 책임도 함께 주신 것이란다. 만약에 주어진 가능성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다시 말하면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차츰 잊혀져(퇴화하여) 다음 세상에는 더 어렵게 살 수도 있단다. 쓰지 않는 능력은 퇴화하고 잘 쓰는 능력은 진화한다는 법칙을 너도 알지? 유신론적인 진화론은 보다 잘 살리려는 더 높은 수준의 경험을 향한 진화의 방향을 신이 추동하고 있다고 믿는단다. 그러니 생명을 보다 더 잘 살리는 데에 따르는 고난을 잘 살리는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수안이는 성인이나 누릴 수 있는 정말로 가장 큰 행복을 누리는 것이지. 그렇게 성인의 경지에 이르다면 하느님의 창조 작업을 정말 많이 도와드릴 수도 있을 거야.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