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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참, 세상이 가관이다.

- 김융희

참 가관이다. 무엇이?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이다. 특히 나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꼴들이 가히 가관이다. 함께 어울리며 그 사이에 끼어 부대끼는 우리들 또한, 참고 견디려니 힘겹고 서글퍼서 이 또한 가관이다. 이같은 푸념이 그저 주책 망나니의 망령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내키지 않는 구경거리를 한 두 가지만 들어볼까 한다. 물론 가히 볼 만함이 아닌, 꼴불견의 가관임을 전제하면서 말이다.

학생들의 무상 급식 문제로 지루한 논쟁이 계속되더니, 기어이 주민들의 찬반 투표를 했다. 투표로 이제는 끝나는가 싶었는데 전혀 천만에이다. 처음부터 관심 없는 일로, 먼 집 불구경하듯 지내온 나였기에, 전 후 내용을 전혀 모른다. 그저 우리 아이들 밥 먹이는 일로, 그 밥값을 받아야 하느냐, 아님 그냥 무상으로 하느냐,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리 문제가 되는지를,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었다.

서명 운동을 펼치며 열열한 화제의 현장도 보았지만, 그러나 관심 밖이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찬 반의 편가름이 뚜렸해지면서, 점점 가열의 도가 지나침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해결책을 찾아 빠른 수습을 바랄 뿐이었다. 그래 썩 내키지 않는 주민 투표도 지켜 보았다. 이제는 찬 반을 가르는 투표도 끝났다. 패자는 책임을 통감한다며 스스로 그 권좌를 물러났다. 이제는 정말 지긋 지긋한 싸움이 끝났겠지 싶었고, 진심으로 끝나기를 바랬다.

그런데 도대체 끝남이 아니라 점점 더 꼬여가는 것 같아 답답하다. 찬 반의 내용 조차도 필요가 없는 투표 자체를 부정하는 결정임에도, 양 편의 입장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결과에 관계없이 실제적으로는 시장의 승리다, 또는 실익도 있다,는 등… 전혀 알 수 없는 말이 계속 난무하면서 일은 점점 더 얼키는 꼴이다. 하긴 급식으로 인한 갈등의 문제는 지금까지의 표출된 내용과는 전혀 달라 본심을 감춘 것이다. 처음부터의 의도가 지극히 불순했음에 어찌 우리가 그들의 속내를 알며 쉽게 이해가 되겠는가.

정말로 지금 그토록 열을 내는 일이 우리 청소년들의 정과 웃음이 가득한 밥그릇을 위해 벌이고 있는 데서 오는 책임있는 어른으로써의 의견이요 갈등인가? 도대체가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덯게 마음을 달래며 이해를 구해야할지를 몰겠다. 우리 청소년들의 밥그릇을 놓고 부리는 지금 우리들의 어른으로써의 추태를 정말 모르는가? 어른으로 사는 지금 나는 심한 자괴지심으로 안타깝고 괴롭다. 어른들이여 정신을 차려 부끄러워하라.

그렇다면 서로 머리를 맞데어 허심탄회 진지한 의견 모색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어떻게 너는 틀렸다 나를 따르라, 아니 네가 잘못이니 내 뜻을 따라야 한다,며 상대편을 무시하고 자기에게 굴복하기만을 바랄 수 있겠는가. 명분과 돈을 내세우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명분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맞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지 않는가. 이번 싸움의 본질은 경제도 명분도 그 무엇도 전혀 아닌 분열 현상이다.

정말로 나라의 경제나 청소년들의 장래를 위한 배려라면 방법과 길은 많다고 생각된다. 자기의 힘만 믿고 인기를 위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거침없이 함부로 저지른 일은 없어야 한다. 가령 전혀 아닌 사람이 대단한 묘책이라도 있는 듯, 뜬금없이 대학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겠다는 선포가 겨우 국가의 지원보전이라는 이런 발상의 망발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이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매사 결정이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 정말 남을 배려하는 마음, 그래서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회풍토가 절실하다.

티비 뉴스에서, 눈을 감고도 못 볼 잔인한 화면이 보여졌다. 돌밭 사이에 죽은 듯 쳐박혀 있는 개새끼였다. 이어 클로즈 업 장면에 나는 참아 눈을 감고 말았다. 함몰된 머리통에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 몸의 어디도 성한 곳이 없이 피투성이였다. 짖어덴 개새끼가 얄밉다 못해 격분, 50번도 넘는 돌맹이질을 한 50대 남성을 붙잡았는데, 가해자는 경찰에 잡혀와서도 아직 분을 삭이지 못해, 벌금을 물면서라도 죽이고 싶었다며 당당했단다.

멘트는 계속되었다. 개새끼를 구출한 보호단체는 가해 범인의 무거운 처벌과 함께 함몰되고 피멍으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개의 치료를 위해 모금운동을 전개한다는 개새끼 한 마리에 대한 뉴우스치고는 꽤 길고 자세한 보도였다. 피투성이의 개새끼가 너무 안쓰러웠지만, 어쩐지 처벌을 위한 캠패인이나 치료를 위한 모금활동을 전개한다는 앵커의 보도가 씁쓸하다. 망령에게는 이런 것조차 가관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이다.

갑작스러운 사회질서의 붕괴와 도덕의 파괴, 문화의 갈등에서 오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지극한 당연지사도 늙은이에게는 거슬리는 것이 지천인 사회에 살고있는 우리들이다. 이처럼 복잡 다양한 사회일수록 남의 배려와 서로의 협력이 절실하다. 그런데 기회가 되고 꺼리가 있기만하면 사사 건건을 시비와 불평으로 분쟁을 일삼는 사회는 불행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일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과 같은 갈등의 문제이다.

여와 야, 노와 소, 여와 남, 사와 노, 도와 농, 중앙과 지방의 모든 곳에 화해와 협력으로도 벅찬 해야할 일은 태산인데, 골은 나날이 깊어만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번 급식문제도 없는 완전 해답을 바라는 무리에서 생긴, 본질을 벗어난 갈등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사회가 논리를 앞세운 셈보다는, 이성을 발휘하여 덕과 정이 통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가관으로 지켜보는 세상이 아니라 살맛나는 흐뭇함이 정담으로 넘치는 삶이 되기를 기원한다. 망령의 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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