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희망버스 좌담회 : 상상해봐, 희망버스 어디로 갈지(1)

- 은유

희망이란 말은 빛나지 않는다. 차라리 남루하다. 1차 희망버스는 빛나지 않았다. 탑승객 700명. 세상은 무심했다. 2차 희망버스는 1만 명이 몰려갔으나 차벽을 넘지 못했다. 3차 대회를 지나 4차 서울대회가 치러지는 동안 참가인원이 반으로 줄었고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슬로건은 희미하게 번졌다. 하지만 희망버스 그 후, 사람이 사람을 찾아가고 유머가 아픔을 퍼뜨리고 집회가 축제로 벌어지는 풍경은 익숙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1차, 2차, 3차, 4차 희망버스는 빛나지 않는다. ‘그 연관만이 빛난다’(김수영)고. 부산 앞바다 고공크레인 김진숙이라는 절망의 극점에서 전국으로 펼쳐진 희망의 이행, 그 연관은 빛나고 또 질기다. 여름 내내 반도의 땅을 달궜던 희망버스는 하늘 높은 가을날 강정마을에 평화비행기로 떴다. 희망은 평화를 순산했다.이렇듯 규모보다 강도, 속도보다 방향, 그리고 대의보다 감성에 주목할 때 ‘희망버스’는 하나의 사건이다. 희망버스 시동부터 주행까지. 그간의 여정을 되짚어보고 이후의 행보를 고민하는 좌담회가 신유아(문화연대활동가) 이진경(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이창근(쌍용차해고노동자) 조약골(평화활동가)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8월 30일 수유너머N에서 열렸다. 장장 세 시간에 걸친 열띤 대화 속으로.

내가 희망버스를 탄 까닭은

“1차 희망버스 전에 두 차례 영도에 갔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랑 한번, 영상 하는 친구들이랑 한번 가서 꽃그림 그리고 왔다. 검찰조사 받는데 그러더라. 희망버스에 쓸 음향시설 점검하러 미리 내려간 거 아니냐고.(웃음)”

사전모의가 아니라 평소생활이다. 문화연대 활동가 신유아는 노동과 문화를 접목한 활동을 펼친다. 문화적 소통방식으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장 만들기. 기륭전자와 유성기업 등에 그의 손길이 남아있다. 한진중공업도 같은 맥락에서 참여했다. 흑발의 긴 머리를 늘어뜨린 조약골은 제주 강정마을에 머문다. 올 초에는 신촌 두리반에 거주했다. 거점투쟁을 원칙으로 두리반, 영도조선소, 잡년행진, 강정마을, 희망버스 등 어디에나 나타난다 하여 ‘철새활동가’로 불리기도 한다.

“두리반 투쟁 막바지에 영도조선소에 예술가들이 다녀왔단 얘길 들었다. 직접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레이저태크 작업을 보고 감동받았다. 두리반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흐름을 보았고 확산시키고 싶었다. 희망버스는 또 달랐다. 두리반만 해도 인디음악가, 잉여들,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 젊은이들인데 희망버스는 그들을 포함해 연령대가 더 다양했다. 정말로 애정과 열정으로 뭉쳐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사회운동에 소극적이던 이들이 같이 풀어나가고 동참했다. 1차에서 느꼈던 에너지로 4차까지 갔다.”

이진경은 2차 희망버스 탑승객이다. 반값등록금 집회현장에서 ‘희망버스’ 소식을 접하고 2차 희망버스를 예약했다. 당일 아침 편두통이 심해서 강의를 휴강하고 희망버스도 불참했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KTX를 타고 갔다. 봉래삼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4차 희망버스에 참가했다. 희망버스가 끌어 다니는 힘이 뭘까. 투쟁 안건은 대단히 좌파적인 주제인데 사람을 빨아들이는 양상은 새롭고 감각적이다. 사회학자로서 그는 희망버스로 명명되는 사건이 갖는 힘에 주목한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대변인 이창근은 현재 평조합원이다. ‘쌍차의 죽음’을 계기로 신유아, 송경동을 알았다. “마음 급한 사람끼리 만나지 않았나 싶다” 투쟁은 시간과, 시간은 죽음과 겨룬다. 김주익 열사가 129일 만에 고공 크레인에서 몸을 던졌다. 그곳을 ‘승리와 부활의 자리’로 만들고자 김진숙 지도위원이 올라갔고 계절이 두 번 바뀌던 즈음이다. 셋이 커피 마시면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129일이 다가온다. 누가 그 얘기하는 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간을 즐겁게 넘기자고 결의했다. 바로 전화를 걸어 기차를 알아봤다. 통으로 7-8량 빌려보자. 찔끔 가서 될 문제가 아니다. 압도해야 한다. 디데이는 5월 11일. 근데 기차 빌리는 게 안 된다더라.(웃음) 고공농성 150일에 맞춰 1차 희망버스를 띄웠다. 평택 수원 엮어서 같이 갔다. 쌍차 해고자들과 함께 하자. 한진에 빌붙어서 우리문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맞닿은 문제다. 조합원 상태마저도 똑같다. 일반인이 마음 아파서 참가하는 게 아니라 정리해고 당사자가 당사자를 연대하는 희망버스를 만들자. 그 결의를 쌍차가 먼저 하면 다른 데서 하리라 생각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했으나 무리였다. 그들의 삶은 희망버스와 분리되지 않았다. 첫 번째 안건은 자유발언이다. ‘희망버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창근, 신유아, 조약골, 이진경 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희망버스를 ‘에너지’로 감각했다. 어디든 누구든 접속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신통한 놀이로서의 운동. 웃음과 용기를 잃지 않는 삼삼한 우정의 연대. 우발성과 자발성과 전염성이 만들어낸 희망버스는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안건1: 희망버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창근 – 희망버스는 에너지다. 기본이 에너지이기 때문에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1차 700명, 2차 만 명, 3차 4차 몇 명이냐 규모의 문제로 설명하려 든다. 참여자들이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으로 모였을까? 아니다. 퀴어, 장애인, 학생 등 다양한 사람이고 이들의 고민, 넘고자 하는 바는 다르다. 이 사회 정치 경제 체계가 많은 이들의 열망을 담기에 불가능한 낡은 구조다. 이 껍데기를 벗어나려는 노력들이다.

언론은 숫자에 연연한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기에 계속 숫자를 묻는다. 어느 순간 우리도 숫자에 주목했다. 청계광장 모여서 어떤 주장, 외침을 했는지가 없고 인왕산에 몇 명 올라갔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참가인원이 늘고 줄고는 중요치 않다. 4차 희망버스의 핵심 슬로건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였다. 4차까지 희망버스의 주장이 발전하고 있다. 한국사회 모순이 집적된 곳 ‘서울’에서 열렸고 엄밀히 말하면 4차에서 김진숙과 정리해고는 빠졌다.

조직적인 관점에서 4차 희망버스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경찰의 원천봉쇄가 아니고……벌초였다. (좌중 폭소) 4차 희망버스 서울대회가 열린 8월 27일 28일은 추석을 앞둔 주말이라 벌초 가느라 사람들이 많이 빠졌다. 이런 얘길 기자한테 해도 안 믿더라. 진짜다. 앞으로 벌초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될 것이다. 벌초는 운동의 가장 큰 벽이다.

신유아 – 1차 희망버스의 성공 이유는 연대와 소통이다. 김진숙은 트위터로 소통했다. 1차 희망버스에 반응보인 사람들은 김진숙의 진정성에 대한 응답이다. 그간 단식, 삭발, 고공농성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치인들 단식은 며칠 하다가 명분 찾아 접겠지 예측한다. 김진숙은 129일 넘겼다. 동지가 죽고 나서 8년간 방에 불 때지 않았다는 일화가 알려지면서 사람들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운 좋게 희망버스가 떴고 시기적으로 잘 맞았다.

1차 때는 막히면 막히는 데서 돌파했다. 못 들어가는 건 생각도 못했다. 거기가 국가시설이고 뭐고 생각도 못하고 오로지 김진숙만 보고 갔다. 사람 보러 가는데 경찰이 왜 막아? 밀고 나갔다. 두려움이 없었다. 한진 아저씨들이 사다리를 내려주셨고 사람들이 우루루 담을 넘었다.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취지도 그거다. 집회-투쟁 하러 가는 거 아니다. 크레인 밑에서 우울해하면 위에서 더 우울하다. 그러니까 우리만의 판을 짜서 신나게 놀다 오자. 1차 때 해방감은 굳이 경찰 벽 뚫은 것도 아니고 싸움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흘러서 간 것이다.

서울에 오니까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 희망버스 회의에 왔더라. 2차 때 영도 봉래삼거리에서 막혔다. 1차 때 즐거운 모습 보고 간 사람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3차는 다시 가서 싸우기로 했다. 더 많은 이들이 모였다. 85호 보이는 곳 어디든 괜찮다는 전략을 세웠다. 꼭 넘어가는 것만이 목표는 아니다. 김진숙 크레인이 보이는 곳까지 찾아갔고 1박2일 문화난장은 성공했다. 민주노총 주도의 조합운동 아닌 새로운 운동의 양상이 나타났다.

4차는 서울. 왜? 문제해결 된 게 없다. 이제는 이명박 말고 싸울만한 사람이 없었다. 서울로 가자. 이런 결정은 희망버스 기획단이 내리는 게 아니다. 각 지역에서 희망버스 조직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시기와 방법을 논의한다. 4차 직전 주말에 희망 시국대회가 열렸다. 에너지가 흩어졌다. 4차를 끝내고 생각했다. 이건 실패도 성공도 아니다. 인왕산에 현수막 내리기, 도심 행진하기, 물 대포 피하지 않기는 쾌감이 있는데 사회적 메시지 던지기는 약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약골 – 1,2,3,4차 희망버스에 참가했다. 희망버스 자체가 성공이나 실패를 떠나서 하나의 커다란 담론을 만들어냈다. 희망이라는 담론. 진부한 걸 밀어붙였고 그 이후로 희망 관련된 게 늘었다. 제주 강정마을은 희망버스 영향을 직접 받았다. 조직방식이나 분위기는 차용 하고 싶다고 해서 차용하는 건 아니다. 군사기지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제주 전역에서 평화버스가 강정마을로 가고 인천에서 평화크루즈도 가고 평화비행기가 뜨고 희망걷기가 생겼다.

또한 기존 운동과 달리 주변부 사람들이 나서서 행사 기획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자발적인 운동의 흐름이 생겼다. 자발성이란 판을 깔아주면 사람들이 와서 채워나가는 것이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미리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몰려가서 자기가 해왔던 방식으로 장을 벌인다. 희망버스가 억눌린 사람들이 목소리를 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이진경 – 희망버스는 역설이다. 절망의 지대에서 만들어진다. 희망이란 있지도 않은 것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절망을 직시할 때 눈을 돌리지 않고 그것과 대결할 때 희망이 생긴다. 희망버스는 운동의 매체다. 그것이 부산 한진중공업만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다. 4차 때 서울로 방향 바꾸면서 그 지역만의 투쟁이 아니고 탈영토화 됐다. 구심적으로 진행되던 것이 원심력으로 바뀌면서 전국으로 펼쳐졌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가보다 훨씬 중요하다.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해고 문제가 국지적인 데도 불구하고 전체 문제라고 보여준 것이다.

4차 희망버스 만민공동회는 좀 지루했다. 퇴로를 청계천 물길로 잡은 것은 독창적이었다. 인왕산 등반도 좋은 아이디어다. 인왕산에 못 올라가도 성공이다. 경찰은 인왕산을 에워싼다. 청와대를 상징하는 그 지점 표시, 거길 뚫고 가려고 도로 점거하고 뛰어다녔다. 일반 사람들은 운전하다 열 받으면 도대체 왜 그래? 관심을 갖는다. 인왕산을 둘러치는 순간 이미 저들은 공격을 당한 거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가 문제인가를 스스로 보여주었으니 올라가지 못해도 성공이다. 새로움과 다름에 대한 강박이 필요하다. 안 하던 짓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의무감으로도 시위대에 앉아있었지만 요즘 친구들은 못 참는다. ‘재미와 감성’이 자발적으로 대중을 참여하게 만드는 힘이다.

신유아 – 대추리부터 용산투쟁까지 조약골이랑 인연이 깊다. 우리는 ‘집회는 축제여야 한다’고 말한다. 촛불집회와 전혀 다르다. 어떤 장이 마련되면 사람들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걸 갖고 온다. 와서 시키는 걸 하는 게 아니다. 이게 핵심이다. 그런 방식의 참여가 용산투쟁에 약간 있었다. 희망버스에서 자발성이 커졌다. 밥도 가져오고 잠도 잔다. 뭘 해달라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여기서 무엇을 할지 고민한다.

용산의 경우, 슬픈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해주겠다며 고민하고 오는데 희망버스에 오는 사람들은 뭘 나눌 것인가 고민하고 온다. 희망버스는 시스템만 갖추면 된다. 조약골에게도 말했다. “부산 친구들하고 연락해봐.” 그러면 밤새 놀 수 있는 프로그램 짜온다. 작가들은 “우리 거기서 시낭송 하려는데 괜찮아요?” 물어보는 식이다.

이창근 – 신유아 동지가 말하는 새로움은 엄밀히 말하면 이미 금속노조가 시도했던 것들이다. 사람들이 몰랐을 뿐이지 부산까지 걷기, 버스 등 지금까지 장기투쟁 동지들이 했던 방법이다. 새로운 게 없다. 다만 여기에 마음을 담았다. 이게 핵심이다. 운동의 다른 방식이나 형식을 궁리하는 시간에, 그동안 시도했던 걸 돌아보고 거기서 뭘 놓치고 있는지 찾는 게 중요하다. 20년 동안 투쟁했던 방법은 옳은 방법이다.

우리가 늘 시도했던 방법은 가장 그나마 적합했기에 차용했던 게 아닌가. 여기에 마음을 담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지난번에 유성기업에 가서 그런 느낌 받았다. 용역이 펜스 안에 철조망 치고 서 있다. 금속노조 대오가 1500명이 왔다. 조끼 입고. 그런데 40분 지나니까 딴 짓 하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 얘기하더라. 나중에는 누가 용역인지 모르겠더라. (일동 웃음) 민주노총에 용역이 있고 사측에도 용역이 있구나. 이 지점이 매우 아프게 보인다.

이진경 – 예전 것도 다른 것과 연결시키면 새로워진다. 그간 운동하면서 발명했던 수많은 것들 묻혀버린 것들이 새로운 맥락에서 결합했을 때 잠재력을 찾아주는 거다. 반복 되더라도 다르게 반복된다. 그건 다른 거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다. 노동운동이 되돌아왔다고 말하는데 같은 방식으로 되돌아온 걸까? 똑같은 주제가 언급되더라도 같은 게 아니다. 희망버스에 실려서 되돌아온 비정규 문제는 이전과 같지 않다.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지 못했던 문제를 새로움의 감각으로 되살려냈다. 휘말리게 만드는 ‘매혹의 힘’이 컸다. 희망버스는 굉장히 중요한 걸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이슈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 맑스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라고 말했다. 희망버스는 ‘어떻게’의 문제로 질문방식을 바꾸도록 만들어준 사안이다. 어떻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이점으로 만들 수 있을까, 강력한 현실적 힘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운동도 성공한다. 어떤 주제도 사람을 잡아끄는 힘으로 만들 수 있다.

안건2: 희망버스 노동운동의 귀환, 반복과 차이

이날 좌담회 사회를 맡은 박정수(수유너머R)는 1차 희망버스 참가 계기를 터놓았다. 한 후배가 울면서 희망버스에 꼭 가라고 당부했는데 ”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하면 그게 무슨 일이든 가야했다”는 것. 이에 이진경은 “운동이 대의 땜에 한다고 생각하지만 감각이고 감성의 영역”이라며 “대의가 뭔가는 중요치 않고 울면서 가는 것, 바빠 죽겠는데 머리통이 깨지도록 아픈데 가는 것, 이것이 센세이션의 정치학이다”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안건으로 넘어갔다. 희망버스의 쟁점은 노동문제다. 크레인 위의 김진숙은 우리사회 확산되는 삶의 불안정성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여기에 배우 김여진의 등장하여 눈물로 호소했다. 김진숙의 유머가 불씨를 지폈다. 눈물과 웃음이라는 감성바이러스 덕분에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사회로 확산되었다. 희망버스는 다른 운동과 결합한 ‘노동운동의 귀환’인가. 과연 희망버스를 통해 삶의 불안정성 문제가 확산됐을까.

신유아 – 삶의 불안정성은 희망버스 이전부터 이미 너무 많이 산재돼 있다. 김진숙을 계기로 노동문제가 나의 문제임을 인식했다. 촛불과 다른 점이, 촛불은 광우병이 피부에 와 닿았지만 정리해고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는 알면서도 내 문제로 인식이 안 되는 경우, 인식해도 싸워야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문제로 생각한다. 뉴스를 봐도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제는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뭔가 던져졌을 때 다가가는 거다.

이창근 – 김여진이 노동현안에 대한 색깔을 뺀 첫 주자다. 희망버스라고 하는 물줄기가 콸콸 나오는데 마중물 누가 부었는지, 몇 바가지나 부었는지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보면 김여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초반에는 김여진과 김진숙이 대립했다. 절친이 아니었다. 홍대 노동자 파업을 김여진이 해결하는 과정에서 김진숙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김여진에 대한 개인감정이 아니라 민주노총을 향한 질타이다. 배우 한명이 정리하는데 당신들은 뭐하냐는 말이다. 어쨌든 김여진으로 인해 하나의 장막이 걷이고 매주 영도에 오는 ‘김진숙 폐인’까지 생겨났다.

한진노동자 중에 해고당하지 않아도 싸우는 동지들 100여명도 싸움의 근거다. “부산용어로 의리, 운동용어로 연대”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아무 것도 안 했다고들 하는데 그리 보지 않는다. 공지영 작가가 쌍차에 500만원 기부하니까 금속노조 비판하더라. 공지영 작가 돈 내는 데 너네는 뭐하는가 말한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파업과 정리해고자 생계비에 50억을 썼다. 금속노조가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온 게 아니다. 한 개인을 욕하는 것과 한 개인을 추앙하는 것으로 변하는 상황은 없다. 자기 역할을 갖고 가는 거다.

이진경 – 희망버스 탄 사람들이 비정규직을 자기문제화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꼭 자기문제여야만 운동을 한다는 건 옛날 생각이다. 두리반 점거할 때 자기문제여서 한 게 아니다. 마음이 동하면 내 문제 아니어도 한다. 자기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고 돈과 시간을 무릅쓰고 희망버스에 가도록 한 힘이 중요하다.

희망버스에 복합적 요소 섞여있다. 상반되는 측면이다. 김진숙 목숨 걸고 있는 상황의 비장함과 진짜 죽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김진숙이 1월 6일 올라갔는데 다섯 달 가까이 가도록 모르다가 김여진 트위터로 쭉 퍼졌다. 외부세력이 가야한다, 당사자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가 관심 가져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여진의 트위터 코멘트는 감성적이다. 크레인 아래서 연설한 동영상 보는데 눈물이 펑펑 나더라.

또 한 가지는 김진숙이 심각한 얼굴이 아니라 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트도 그린다. 스스로도 “내가 여기 와서 별짓 다해본다”고 말한다. 유머가 있다. 쌍차는 너무 비장하기만 했다. 목숨이 걸린 내전이니까 두려움이 생기고 가까이 갈 엄두가 안 난다. 근데 여기는 농담과 유머와 일상이 섞이니까 김여진 까지 결합하면서 블랙홀이 됐다. 대중의 흐름 빨아들였다. 진지함은 무거워지기 쉽다. 유머가 있을 때 여유와 여백이 생기고 새로운 걸 찾아낼 수 있다.

신유아 – 희망버스 스태프가 쓰는 ‘깔깔깔’ 모자를 처음에 다 반대했다.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아저씨들이 다 싫어했다. 그런데도 무조건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2차 3차 희망버스 때는 “고깔모자 어딨냐”고 다 찾더라. 완전 품귀현상이다.(웃음)

박정수 – ‘김진숙 트위터’에서 본 내용이다. 누가 구테타와 혁명의 차이를 물었다. 김진숙이 대답하기를, “구테타는 밤에 하는 것이고 혁명은 낮에 하는 것이다. 지금은 밤이다. 가서 자라.” (일동 폭소)

2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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